기후위기, 경제발전이라는 거짓말에 대한 명백한 증거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by 문화연대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이 보다 더 솔직한 책 제목이 있을까. 제목 그대로 C. 더글러스 러미스의『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지구적 차원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풍요롭지 못한가”에 대한 짧고 명쾌한 해설서다. 러미스는 이 책을 통해 앞으로도 우리의 풍요는 경제성장에 달려있지 않다고 충고한다. 기후위기 담론조차 유행이 되고 있는 요즘, 대부분의 논자들이 기후위기 문제를 둘러 싼 가장 현실적이고 불편한 주제인 ‘탈성장’, ‘제로성장’에 대해서는 말끝을 흐리는 것과 달리, 러미스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경제는 발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고방식을 버리자”고 단언한다. 물론 이 책은 기후위기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이 책은 21년 전(2000년)에 일본에서 출판된 책이다. 하지만 러미스는 기후위기가 유행처럼 번지기 오래 전부터 인류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에는 ‘경제발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혹은 사고방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통찰하고 있었다.



기후위기앞도서관5-1.jpg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C. 더글러스 러미스, 김종철‧최성현 옮김, 녹색평론사, 2002)


러미스는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의 시작점으로 1949년 1월 20일에 발표된 트루먼 미국 대통령 취임 연설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를 지목한다. 당시 트루먼은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60)는 내용의 새로운 정책을 발표한다. 지금은 이 정책이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 획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기 어렵지만, 트루먼이 썼던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용어 자체가 그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러미스는 “‘발전’(development)이라는 언어 자체가 트루먼의 연설에 의해 바뀌고, 다시 만들어진 말”(61)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발전은 처음으로 국가정책이 되었고(미국의 국가정책이 되었고 얼마 뒤 유엔의 정책이 되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발전을 당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61)라는 사실이다. 트루먼에 의해 재개념화된 발전(경제발전론 혹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를 통해 지구에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은 선진국들의 경제발전정책 대상이 됐다. 서양의 경제제도에 들어있지 않는 나라는 모두 ‘미개발’ 국가로 불리게 된 것이다.


러미스는 “이것은 지구의 모든 것을 바꾼다. 지구 위의 모든 문화, 사회, 경제, 삶의 방식, 자연 등 모든 것을 바꾸는 정책이기 때문”(65)이라고 강조한다. ‘미개발’의 공통점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 아니라 자기네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즉 유럽이나 미국의 경제제도에 들어와 있지 않은 그 ‘결여’다.(66) 언어의 역사에서 말하면 ‘미개발’이란 ‘야만’이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67) 이제 ‘발전’은 지구적 차원에서 ‘야만’이란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시대에 미국을 위한 새로운 말이 된다. 경제발전 이데올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을 통해 식민지를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시대”, “미국 헤게모니가 시작되던 시대”,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형성된 시기”, “전쟁 이후 새로운 초국적 자본운동(새로운 투자 대상과 장소)이 필요한 시기” 등 역사적 단계에서 탄생한 새로운 제국주의 혹은 초국적 자본의 산물이다.


서구 중심의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에 대한 러미스의 분석은 기후위기 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를 준다. 지구적 차원의 역사적 단계에서 제국주의와 자본운동의 필요성에 따라 등장한 발전주의는 지구라는 행성과 모든 인류의 삶을 기후위기 시대로 초대했다. 아니, 몰아넣었다. 중요한 것은 기후위기의 시대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여전히 경제발전론, 소득증대론과 같은 발전주의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다. 대다수 인류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는 부동산, 주식, 경제성장, 국가경쟁력 등의 경제발전론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에서 경제발전 이데올로기는 이제 절대적 신앙에 가깝다. 러미스는 이 책의 제목을 선정한 이유에 대해 “경제발전론 = 소득증대론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있는 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그 밖의 다른 테마에 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5)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러미스가 다루고 싶고, 우리가 다루어야 할 “다른 테마”는 경제뿐만이 아니라 민주주의, 생태문화, 평화, 지속가능한 삶 등 다양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국주의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강요된 ‘경제발전’이라는 신화 혹은 거짓말로부터 과감하게 벗어나야 할 때다. 기후위기는 발전주의라는 허위의식의 결과물이자 가장 강력한 증거다.



기후위기 앞 도서관

이미 도착한 기후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독서와 실천적 책 읽기를 모색합니다.

글쓴이 : 이원재 _ 문화연대 기후위기운동모임 ‘Still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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