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
미국의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억만장자 2천365명의 재산은 불과 1년 사이에 8조400억 달러(9천97조원)에서 12조3천900억 달러(1경4천19조 원)로 54% 늘어났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전 세계 억만장자의 재산이 50% 넘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재산 1위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가 57% 증가한 1천780억 달러였고, 프랑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의 베르나르 아르노와 그 가족이 114% 늘어난 1천626억 달러로 2위를 차지했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1천621억 달러로 3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20위권 억만장자의 재산은 1년 새 68% 증가한 1조8천300억 달러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한국의 2019년 국내총생산(GDP) 1조6천463억 달러보다도 큰 규모다.
이 자료에서 빌 게이츠는 1천265억 달러로 4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슈퍼 리치’(super-rich)이자,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로서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 정보기술 시대를 선도해 온 ‘과학기술 전문가’이며,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통해 다양한 기부 사업을 펼치는 ‘자선가’이기도 하다. 그런 빌 게이츠가 올 초에『빌 게이츠,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How to Avoid a Climate Disaster)이라는 기후위기 관련 책을 출간했다. 지난 2월 한국에서도 출판된 이 책은 지금까지 기후위기 관련 베스트셀러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연하다. 평범하기만 한 우리들로서는 막막하기만 한 기후위기 시대에 세계적인 슈퍼 리치, 과학기술 전문가, 자선가의 생각과 대안이 궁금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기후위기를 둘러 싼 다양한 내용들이 (동의 여부를 떠나서) 매우 명쾌하고 선명하게 정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는 “기후변화와 관련하여 당신이 기억해야 할 숫자가 두 개 있다. 하나는 510억이고 다른 하나는 제로(0)다”라고 명쾌하게 시작한다. ‘510억’은 우리가 매년 510억 톤의 온실가스를 대기권에 배출하기 때문이고, ‘제로’는 달성해야 할 목표다. 그는 이를 위해 “①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 제로를 달성해야 한다, ②태양광과 풍력 등 이미 보유한 수단들을 더 빨리, 그리고 더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③나머지 목표 달성에 필요한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하고 출시해야 한다”라는 세 가지 달성 목표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제시한다. 그리고 빌 게이츠가 제시하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은 ‘아이디어와 혁신’이다.
빌 게이츠는 우리가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①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나 큰지 알고 싶다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인 510억 톤의 몇 퍼센트인지를 생각하라, ②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다섯 가지 활동(무엇인가를 만들고, 기르고, 전기를 생산하고, 움직이고, 시원하고 따뜻하게 하는 일)에 대해 각각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③얼마나 많은 전력을 말하는 걸까(킬로와트=집, 기가와트=중간 크기의 도시 수백 기가와트=크고 부유한 나라), ④얼마나 큰 공간이 필요할지를 생각하라, ⑤그린 프리미엄을 염두에 두고, 중간소득 나라들도 충분히 감당할 만큼 저렴한지 질문하라”가 바로 그것이다. 이어서 그는 전기 생산(연간 배출량 510억 톤의 27%), 제조(31%), 사육과 재배(19%), 교통과 운송(16%), 냉방과 난방(7%)에 대해 각각의 상황을 검토한다.
빌 게이츠는 정부 정책의 중요성과 방향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투자 갭을 메꾸고, 온실가스 배출을 비싸게 만들고, 불필요한 장벽을 허물며, 뒤쳐지지 말고, 공정한 경제구조의 전환을 계획하며, 쉬운 일만 하지 말고, 기술‧정책‧시장을 모두 잡는 일석삼조를 노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①10년 내 청정에너지 및 기후변화 관련 연구 개발비 다섯 배 증액, ②고위험-고보상(high-risk, high-reward) 연구 개발에 투자, ③연구 개발을 가장 큰 니즈와 연계, ④시작 단계부터 기업과 협업 관계 구축”을 제시한다.
이 과정에서 빌 게이츠는 탄소 발생 없는 전기 생산 방식 중 하나로 차세대 원자력발전 기술의 장점을 언급한다. “원자력발전은 밤낮과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며, 지구상 어디에도나 작동할 수 있고, 대규모로 생산이 가능하면서도 유일하게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에너지원”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 담고 있는 빌 게이츠의 원자력 발전 기술에 대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입장은 현재 국내외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며 화석연료 문명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 온 제러미 리프킨은 “새로운 기술로 원전을 짓는다고 해도 이미 ‘균등화 발전비용’이 태양광과 풍력보다 훨씬 비싸고 비용도 많이 든다”며 “미래세대에는 원전을 짓지 않을 것이고 이미 일부 큰 기업들은 문을 닫았다”고 지적한다. 재생에너지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는데, 빌 게이츠가 이를 잘못 읽고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균등화 발전비용이란 발전설비를 설치하고 운영할 때 전력시장에서 최소한으로 받아야 하는 수익을 말한다.(서울신문, <‘원전 지지’ 빌 게이츠, 이번엔 틀렸다 ... 리프킨의 경고>, 2021년 3월 31일)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교 기후변화 특임교수 역시 빌 게이츠의 ‘탄소 배출 없는 핵발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는 “핵발전 위험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안전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핵발전은 세대 간 착취를 발생하며”(수 만년 동안 방사능 폐기물 배출),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도 핵발전 시장의 수요가 줄어들고”(핵발전 비용은 지난 10년간 26% 상승, 태양광과 풍력 발전 비용은 각각 89%와 70% 하락) 있다는 근거를 통해 핵발전이 아닌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조천호 교수는 “빌 게이츠가 자신의 회사인 테라파워(TerraPower)를 통해 안전하다고 주장하는 소형 차세대 원자로를 설계하였다고 한다”며 “2019년 1056억 달러 자산을 가지고 있는 빌 게이츠조차도 막대한 납세자 자금 없이는 그 핵발전소를 건설할 수 없는가 보다”고 비판한다. 빌 게이츠가 테라파워의 원자로 기술을 시범 운영하기 위해 앞으로 10년 동안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도록 의회를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다.(한겨레신문, <빌 게이츠의 ‘탄소 배출 없는 핵발전론’에 대한 반론>, 2021년 3월 4일)
빌 게이츠는 ‘획기적 에너지 연합’(Breakthrough Energy)이라는 투자 펀드를 발족해 청정에너지를 비롯한 기후 관련 기술의 상용화를 지원하는 등 기후재앙을 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에 투자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같은 세계적인 슈퍼 리치가 기후위기의 시대에 ‘기후재앙’을 스스로 호명하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혁신’에 적극적으로 투자한다는 점은 분명 의미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이 책에서 제시한 경로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문제인식은 자선가로서” 접근하고, “해결책은 과학기술자로서” 기술에 대한 낙관주의를 통해 모색하며, “결과에 대해서는 기업가이자 슈퍼리치로서”의 구체적인 이해관계에 머물러 있다는 의구심과 직면하게 된다. 과연 빌 게이츠라는 낙타가 기후위기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
기후위기 앞 도서관
이미 도착한 기후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독서와 실천적 책 읽기를 모색합니다.
글쓴이 : 이원재 _ 문화연대 기후위기운동모임 ‘Still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