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 신기후체제의 정치』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 신기후체제의 정치』는 미셀 칼롱(Michel Calon), 존 로(John Law) 등과 더불어 과학사회학 분야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의 대표적 이론가인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기후위기’에 대한 책이다.
이 책에서 라투르는 ‘물질성’(physicality)에 주목하는데, 물질성의 의미가 “기후위기뿐 아니라 바이러스의 출현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이는 “기후변화와 바이러스의 출현 모두 사회적이든 문화적이든지 간에 인간의 활동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이다.
라투르가 이 책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개념은 지구과학에서 말하는 ‘임계영역’(Critical Zones)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순히 인간사의 배경으로만 인식되던 육지에 대한 정의는 임계영역의 개념 덕분에 완전히 바뀌었다”라고 설명하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경험하는 지구는 사실상 놀랍게도 얇은 생물막(biofilm)”이라고 새롭게 문제설정 한다. 이를 통해 라투르는 “착륙지를 바꾼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곳에 위치함을 의미”한다고 주장하는데, 이 책의 원제를 “어디에 착륙할 것인가?”라고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라투르는 이 책에서 가이아 이론을 통해 지구는 “‘이상적’이고 ‘섭리적’인 조건”이 아니라 “오랜 세월 생명체 자체의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제한다. 그는 “가이아는 ‘자연’을 철저히 대체할 개념”이며 “가이아 안에서 인간인 것은 ‘자연’에서 또는 그 밖에서 인간인 것과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지구가 일종의 자율조절 총체(ensemble)이며, 자율조절은 생명체의 활동으로 세세대대 거쳐 부여된다는 발상을 사람들이 완전히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이제 사람들은 지구의 모습이 다른 생명의 형태에 의해, 즉 ‘산업화된 인간’(industrialized humans)에 의해 깨질 수 있음을 이해한다”고 분석한다.
또한 라투르는 지구라는 행성을 비롯하여 “공간은 갈등, 법, 기술로 벡터화 되는 곳이지, 실체가 ‘위치될’ 수 있는 ‘내부’의 독립적이고 추상적인 격자판이 절대 아니”라고 강조한다. 라투르는 이를 코로나 팬데믹과 연계하며 “팬데믹의 가장 두드러진 효과는 추상적인 공간 개념의 실종”이라고 제시한다.
라투르는 이런 맥락 속에서 “2016년 11월 8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모티브로
삼아, 이미 여러 논자가 주목했던 세 가지 현상”과 그 연관성을 파악하여 “엄청난 정치적 잠재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여기서 세 가지 현상이란 ①1990년대 초,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상징되는 공산주의의 몰락 이후 역사의 종말이 시작되었으며, ②‘글로벌화’란 용어를 갈수록 경멸하게 만든 탈규제의 형태(불평등의 폭증)가 부상했고, ③기후변화의 실제 자체를 부정하려는 체계적인 시도가 시작되었다(여기서 ‘기후’는 넓은 의미에서 인간과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 사이의 관계)는 것이다.
라투르는 “세 현상을 동일한 역사적 상황의 증상으로 보자”고 제안하며, 결과적으로 엘리트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번영할 세계, 그 공동의 지평선을 향해 역사가 나아갈 거라 믿고 행동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결정”함으로써 “함께 나눌 공동 세계(common world)의 부재”를 낳았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그는 “기후변화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문제를 전면에, 핵심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면 지난 50년간의 정치에 관해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가설”이라고 제시한다. “공통의 지향점을 잃은 상황에 저항하기 위해 우리는 땅(earth)으로 내려와야”하며 “어딘가에 착륙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형에 위치가 표시된 지도”이며, 이는 “공공 생활(public life)의 정동(affect) 뿐만 아니라 그 중요성(stake)도 재정의 되는 지형”을 의미한다.
또한 라투르는 ‘브렉시트’, ‘트럼프의 당선’, ‘이주의 재개와 연장 그리고 확대’, ‘파리 기후 협약’이라는 네 가지 역사적 사건을 제시하고, 이 사건들을 경유하며 “기후 문제는 지정학적 이슈의 핵심이며 불의, 불평등의 문제와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됐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 사건들은 모두 “이주의 위기를 일상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땅을 박탈 당하는 시련에서 나오는 증상”이라고 분석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주, 불평등의 폭발적인 증가, 신기후체계, 이것들은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의 위험”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으로 다가가며 라투르는 “가열된 활동(heated activity)의 의미가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생명체가 생화학적이고 지질화학적인 현상의 적극적인 참여자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과학에 굳건히 기반을 두는 가운데, 자신과 얽혀 있는 인과관계 전반에 걸쳐 행동, 생기, 행위력이 배분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라투르는 이러한 노력의 방법론으로 임계영역 이론에 기반하여 ‘대지’(“‘자연’과는 확연히 구분되며 전체 행성이 아니라 임계영역이라는 얇은 생물막”)을 통한 접근을 제안한다. 그는 “대지를 통해서만 임계영역의 과학으로 밝혀지는 행위자들의 연합된 행동을 이해할 수 있”으며 “대지는 ‘인간 세계’ 또는 ‘사회’만큼이나 ‘자연’과도 다른 세계를 그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세 가지 모두 정치적 실체이지만 같은 식의 토지 점유나 ‘토지 수탈행위’의 결과를 낳지는 않”기 때문이다.
라투르는 “자연에서 대지도 관심을 바꾸면, 기후 위협이 나타난 이후 정치적 입장을 얼어붙게 하고 이른바 사회 투쟁과 생태 투쟁 사이의 연대를 위태롭게 했던 ‘단절’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며, “이 두 투쟁 사이의 새로운 관계 정립은 생산 시스템(system of production)에 초점을 둔 분석에서 생성 시스템(system of engendering)에 집중한 분석으로서의 전환과 연관”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전자는 자유가 후자는 의존성이 주요 원칙이며, 전자는 인간에게 중심적 역할을 부여하고 후자에서 인간은 분산된 역할 중 하나다. 그리고 운동(변화)의 원인을 찾기 위해 전자는 메커니즘을, 후자에서는 발생(genesis)을 분석해야 한다. 라투르에 따르면 “생성 시스템은 자원을 사용해서, 인간을 위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대지의 것들(terrestrials)’의 생성에 –인간만이 아니라 대지의 모든 것들의 생성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이것은 상호의존성을 일으키는 일에 기초”한다.
라투르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가로서 “신기후체제가 문제 삼는 것은 인간의 중심적 위치가 아니라 그 구성, 존재, 형체, 한마디로 운명”이라며 “이런 것들을 수정하려면, 인간의 관심사에 대한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오늘날 상황이 변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후변화가 자연에 대한 관념과 인간에 대한 관념 양쪽 모두를 선로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이라며 “마치 외부가 있는 것처럼!” 사유해 온 인간 중심주의 자체를 해체하고자 한다. 라투르는 “신기후체제의 이슈는 바로 우리가 어디에 기대어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으며 “탈중심화가 안건에 들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둘레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라투르는 “인간들(humans)에 대해 말하기를 그만두고 그 대신에 대지의 것들 즉 땅에 속한 것들(the Earthbound)을 언급하여, ‘human’의 어원인 ‘흙’(humus), 다시 말하자면 퇴비(compost)의 속성을 역설해야 할 때(대지는 특정 종을 지칭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피력한다.
라투르는 이 책의 결론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고 물으며 “먼저 대안적 서술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는 “우리를 위해 지구에 있는 것들을 센티미터마다, 존재마다, 사람마다,
목록을 만들고 검사하고 측량”하는 정치적 실천이며, 이를 위해서는 “거주지를 ‘대지의 것’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기거하는 곳이라고 정의하고 다른 어떤 ‘대지의 것들’이 거기에 함께 기거하는지 물어보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철저히 찾아서 계급의 정의를 확대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기휘위기에 대한 라투르의 접근은 여러 측면에서 날카롭고 독창적이고 흥미롭다. 하지만 과연 그의 이론과 주장이 신기후체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라투르 스스로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는) “함께 나눌 공동 세계(common world)의 부재”에 대한 정치적, 개입적, 대안적 효과가 있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특히 “대지의 것들”을 통한 정치적, 실천적 전략들은 매우 실질적인 차원의 물질성, 구체성, 상호보완성에 기반하고 있음(“우리를 위해 지구에 있는 것들을 센티미터마다, 존재마다, 사람마다, 목록을 만들고 검사하고 측량”)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론적 상징성과 추상도가 높다는 역설에 빠진 듯하다.
비록 라투르가 이 책을 통해 기후위기 시대의 현실 정치와 운동의 구체적 실천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할지라도, 새로운 기후위기 체제에 대한 의미 있는 분석과 개념적 상상력을 크게 증폭시켜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라투르의 추상성에 투덜거리기보다는,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 스스로 현실의 기후위기 운동을 “대안적 서술”로 재구성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하다.
기후위기 앞 도서관
이미 도착한 기후위기의 시대, 기후위기에 함께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독서와 실천적 책 읽기를 모색합니다.
글쓴이 : 이원재 _ 문화연대 기후위기운동모임 ‘Still A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