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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Apr 28. 2020

시민력은 친구다

시민력을 찾아서 ①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이사장 하장호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꾸어 갑니다. 시민들은 언제나 자기 삶의 가치를 표현하고 소통하며, 사회적 감각을 진화시키고 갈등을 해결할 잠재적인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국가와 자본에 동원되는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변화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힘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시민력을 찾아서> 프로젝트를 통해서 시민력을 위해 활동하고 협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시민력을 찾아서> 첫번째 인터뷰어로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하장호 이사장을 만났다. 하장호는 꽃다지 기획자,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활동가, 전태일재단 기획국장 등 다양한 광역 단위 문화운동을 해왔고, 현재도 예술인소셜유니온 활동을 비롯해 문화연대 집행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한편, 2014년부터 공유성북원탁회의 및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등을 통해 활발하게 지역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선 하장호의 다양한 활동 중 지역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지역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온 미아리고개 하부공간 ‘미인도’에서 그를 만났다.


협동조합 고개엔마을 이사장 하장호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를 거쳐왔다.
맨 처음 시민들의 사회 참여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중학생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쯤 전교조가 처음 만들어졌는데, 우리 담임이 극렬분자였다(웃음). 전교조 사태로 선생님이 해고되는 걸 보며 불합리하다고 느끼며, 내가 사는 세상이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다르다는 삐걱거림이 생겨났다.

광고를 기획하는 화려한 삶을 꿈꾸며 대학에 들어가 보니, 나와 비슷한 불편함을 지닌 사람이 이만큼이나 있더라. 그들과 어울리며 여러 활동을 하다가 졸업을 앞둔 무렵, 우연찮은 기회에 학교 노래패 후배들 공연에서 기타 반주자로 함께했다. 함께 공연을 기획하고 음악을 창작하는 과정을 겪으며, 학생운동을 통해서 하려고 했던 이야기와 감정을 다른 관점에서 얘기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문화예술은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게 할 수 있는 힘이 녹아있다. 사회운동의 한계를 문화예술로 돌파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광역단위 활동 뿐만 아니라, 성북을 기반으로 지역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지역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4년에 친구의 소개로 성북으로 이사하면서부터다. 무슨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해왔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친구를 사귀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성북에선 일 외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많았는데, 친구들이 생기고 친구들과 여러 일을 도모하다 보니 생활하는 것 자체가 지역활동이 되었다.


이전에는 민중이니 시민이니 하는 게 손에 닿지 않는 추상화된 존재 같은 느낌이었고,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살아가는 지에 대한 감각이 떨어졌다. 그런데 지역활동을 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얘기해왔던 민중이니 시민이란 개념과 주변 사람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서울 성북구 미아리고개 하부공간에 위치한 ‘미인도’ 전경


지난 6년간 공유성북원탁회의 활동을 비롯해
예술마을만들기 활동 등 다양한 지역활동을 해왔다.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사실 지금도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웃음). 그런데 처음과 달리 지금은 주목받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단순히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는 것 보다, 사람들이 마주치고 만날 수 있는 범위 즉 생활권 내의 사람들이 미인도의 가치를 공유하고 공간을 잘 활용하게 하는 게 내 관심사다.
많이 알려진다고 꼭 좋은 게 아니다. 공간은 한정적이기에, 너무 많은 사람이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쓰기 어려워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나.

실제로 이화마을 벽화도 외부인에게 너무 알려져,
지역 주민이 큰 불편을 겪었다고 들었다.
예술가와 기획자가 주민성을 갖지 않고,
외재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로 보인다.
지역활동을 하며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어떤 운영철학을 가져야 할까?

지역활동의 본질은 좋은 아이디어나 참신한 활동에 있지 않다. 예술가들이 가진 참신한 아이디어와 혁신적인 삶을 바라보는 태도들도 좋지만, 지역에선 낯선 것들에 대한 경계가 있다. 나는 지역 주민과의 공감 능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역활동가는 공급자가 아니라 스스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다른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미인도에서 열리는 마을시장 ’고개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처음에 기획했을 땐, 개울장과 늘장 멤버 등 문화기획을 해본 사람들이 많았다. 처음엔 프로그램도 다양했고, 새로운 기획과 실험이 많았다. 아트마켓 나가는 세련된 물품 만드는 공방분들을 섭외했다. 그런데 딱 1년 만에 우리가 되게 멋지고 새롭다고 느끼는 것과 지역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에 사이에 간극이 크다는 걸 느꼈다.


주말 오후에 미아리고개 주변을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필요한 게 뭘까 한참 고민하며 관찰하고 직접 말도 걸어보았다. 사람들이 찾아오게 할 수 있는 그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주말에 마음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게 있어야 한다는 생각했다. 예를 들어, 동네에 젊은 부부들이 많이 사는데 아이들 놀이터가 없더라. 그래서 어린이들이 맘껏 놀 수 있는 놀이터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모였다. 그리고 ‘꼬마극장’이란 이름의 어린이 공연을 기획했다.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 즐길 수 있지만, 동네에서 보기 힘들었던 공연들이다.


이렇게 접근하며 실천하다보니 찾는 분들이 많아졌다. 미리 연락이 와서 다음 공연은 언제냐 연락이 오기도 했다. 우리가 관점을 바꾸며 얻게 된 좋은 경험이다.


미인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동네 어린이들


지역활동에 다양한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원을 마련하고 분배하기 위한 원칙들이 있나?


지역에서 활동하다보면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다. 자원과 기회란 한정적이다. 특히 문화예술계는 공공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고, 이 때문에 서로 경쟁하는 정글처럼 되어버렸다.


공유성북원탁회의에선 일부러 관련 논의를 하지 않았다. 지금도 공유성북원탁회의는 거버넌스의 네트워크로서 갈등을 조정하고 상의하는 구조이지, 직접 지원사업을 받거나 수행하진 않는다. 공유성북원탁회의는 워킹그룹 형태로 여러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에서 일하는 구조로 운영하고 있다. 각 워킹그룹마저도 예산이나 특정 사업을 갖고 출발하진 않았다. 6개월 가량 아무 것도 안 하고 산책 다니며 도시락 먹으며 이야기나누고 교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업을 하면서 원칙을 세운 게 있다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적절하고 공정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호혜성의 원칙으로, 당장 개인의 이익만 좇는 게 아니라 타인이나 공동체의 이익이 내게도 이득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예술마을만들기’ 활동에선 지원예산을 놓고 공동으로 협의한다. 자신이 속한 워킹그룹에서 예산을 많이 가져가기보다, 새로 만들어지는 예술마을만들기 그룹이 잘 자리를 잡고 활동토대를 만드는 게  장기적으로 내 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문화재단 등 행정 파트너도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우리도 이를 고려해서 예산을 짠다. 이를 통해 지역 안에서 활동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경제적 기반과 토대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의 힘’ 덕에 호혜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장의 보상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계속 모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지역에서 살아가는 친구들이 가진 상실감이나 삶의 위기가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되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여러 단체에 소속되어 활동해왔지만, 생존의 조건으로 보자면 늘 위기 상황이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이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고민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을 통해 서로 상실감을 가진 존재로서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성북에 와서 가장 좋았던 건, 내가 굶어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다. 성북에 이사오기 전까지 내 삶의 위기는 온전히 나만의 문제였다. 내가 굶더라도 누가 나에게 아무 댓대가 없이 밥을 사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단체 활동을 하며, 스스로 힘든 시간을 견뎌와야 했다.


그런데 성북에서 그 시간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내가 버텨냄으로써 그 사람들도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났던 사람들이 지역 안에서 성장하며,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들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보잘것없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우리가, 서로 의지하고 성장하며 살 수 있는 땅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이 있었기에, 성장할 수 있었다고 했다.
한편, 연령대와 활동 배경이 다른 활동가가 모일 때,
평등하게 발언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딱히 답을 갖고 있다고 말씀드리긴 힘들다. 우선 성북 지역에선 서로를 이름이 아니라 별명으로 부른다. 단순히 재미나 유머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상대의 호칭과 언어 습관이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을 최대한 공개하고 있다. 협동조합 고개엔마을에선 특정 사업을 할지 이사장이 혼자 정하지 않고, 전체회의에서 결정한다. 그리고 기획안을 쓰더라도 최소 두세명이 참여해, 일의 책임과 역할을 나눈다.


이렇게 실천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렇게 편하고 평등한 분위기라고 자신할 수 없다. 어느 모임이든 주도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이 우선권을 가지게 마련이며, 나이에 따른 권력관계가 어느 정도 작동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선언만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가 권력관계가 작동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의식하고, 관계에서 수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공유성북원탁회의에서는 성북동 플라타너스나무 사건,
동구학원 정상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활동 등 지역과 밀접한 사안 이외에
경의선 공유지 활동,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활동 등
사회적 연대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지역 바깥으로 활동 의제를 확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광역 단위 활동을 해야한다는 가치적인 전제를 깔고 지역활동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다보면 타인이 나에게 다른 존재일 수 있다는 느낌이 확장되고, 우리 사회 시민으로서 내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 관심과 참여로 연결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관계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구축한다는 감각들을 갖게되면, 얼핏 지나쳤을 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니까.


코로나19로 문화예술계가 침체기다. 무슨 활동을 준비하고 있나?

개개인이 삶에서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 그래도 누군가 날 지원해주고 사업이 굴러가지 않아도, 함께하는 친구들이 옆에 있다는 희망이 있다. 


한편, 지원사업들에 종속되어있는 구조가 멈춰, 자생적인 토대를 마련할 기회 같기도 하다. 구조적 위기 속에서도 삶을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지역 펀드나 지역 은행 같은 공동의 재원 마련을 비롯해, 협동조합 등 조직적 구조도 적극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코로나19를 경험하니 더 늦출 수 없겠단 생각이다.

어느덧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하장호에게 ‘시민력’은 무엇인가?

시민력은 ‘친구’다. 내 옆에 있는 동료와 친구들이 다름 아닌 ‘시민’이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시민력을 키워가는 과정이란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때 시민력을 키운다는 말은 능력을 올린다는 뜻이라기보다, 공통의 감각들을 확장해간다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민주주의를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토대에서 인식해왔는데, 지역에서 활동하며 민주주의가 삶에서 작동하는 힘이라고 느끼고 있다. 어떤 태도를 갖고, 어떤 관계를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경제적이고 정책적인 이해를 뛰어넘는, 인간으로서 공통적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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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4. 8. 박이현∙이두찬. 시민자치문화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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