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아 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화연대 May 08. 2021

김용균을 세우다

4.28 세계산재추방의 날 고 김용균 추모조형물 제막식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노동악법 없애고!

불법파견 책임자 혼내고!

정규직 전환은 직접고용으로!     

나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2018년 12월 11일,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석탄 운송설비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이 사고가 나기 열흘 전,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캠페인에 참가해 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 속 문장이다. 그리고 사진은 그의 영정사진이 되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어쩌면 언론사 한 귀퉁이 작게 보도되고 말았을지도 모를 청년의 죽음은 이 사진으로 사회적 의제가 되었고 불감증에 무감했던 사람에게 대한민국의 노동현실을 실감케 해주었다.      


사진은 그림이 되고, 조형물이 되고, 다양한 이미지로 재구성 되어 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 한국서부발전의 죽음 은폐시도와 사고수습 과정을 규탄하고 철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수립, 배상, 위험업무의 외주 금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비정규직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유가족의 외침을 외화 시키는 도구가 되어 시민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김용균을 그린 그림은 SNS를 통해 죽음을 알리는 도구가 되었고, 거리 투쟁에 피켓이 되었고, 집회를 진행하는 무대 배경막이 되었고, 행진에 선두에서 시민들과 만나는 마중물이 되기도 했다.      


파견미술팀은 사진 속 용균이를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시민대책위의 요청으로 처음 김용균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상징조형물, 촛불조형물, 부활도 및 영정이미지, 묘지를 지키는 조형물 그리고 마지막 태안 한국서부발전 앞 추모조형물을 만들었다.     


용균이를 그림으로 그린 것은 누구라도 자유롭게 그림을 사용하여 세상에 더 큰 알림으로 공유되길 원해서였고 용균이로 상징되는 조형물은 이 시대 청년노동자의 삶의 무게를 짊어진 가방 속에 담아 거리를 누비며 사람들과 소통하길 원해서였다. 그리고 용균이의 바람처럼 노동현실을 바꾸자는 염원의 촛불나무를 만들어 광화문 분향소에 설치하였고 이 촛불나무에는 훨훨 날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기를 소망하는 작은 새가 앉아 있다.       


               

김용균 죽음이후 58일간의 투쟁은 2019년 2월 5일 유가족이 요구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공식사과를 정부와 여당이 수용한 후에야 마무리되었고 62일 만인 2019년 2월 9일 용균이는 마석모란공원에 안치되었다.      

용균이 어머니 김미숙은 용균이의 무덤에 밝은 용균이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고, 문득 그가 마지막으로 한국서부발전 공장 안에서 찍힌 사진 속 자전거탄 용균이가 활짝 웃는 모습이 생각났다. 용균이의 장례식에 쓰였던 ‘부활도’ 속 그림 용균이가 너무 안 닮아서 속상했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신경 쓰인 탓일까. 형태 고민도 있었지만 닮은 얼굴에 대한 부담도 엄청 컸다. 자신의 무덤위에서 안전을 상징하는 노란 자전거를 올라탄 모습에 어머니는 한 없이 눈물을 흐렸다. 시간이 흐르고 어머니는 무덤 위 용균 얼굴이 나이든 용균이라며 꼭 용균이 아버지랑 닮았다고 아쉬워 하셨다.   


                              

사고 발생 후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김용균 산재사고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고, 당정 협의로 발표한 개선책은 지금도 완료되지 않았다. 그나마 2019년 2월 5일 합의 이후 건립하기로 했던 추모조형물이 2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야 세워지게 되었다.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2년 동안 계속되었다. 처음 한국서부발전에 답사 갔을 때 사측관계자의 요구는 명확했다. 조형물이 눈에 안 보이는 곳, 구석진 곳에 세우기를 요청했고 그것은 일부 정규직노조의 반발 때문이라고 사측관계자는 말했다. 추모조형물 디자인을 제시하자 사측은 받을 수 없다며 크기는 1미터 이내로 작아야 하고 형태는 추모비 형태여야 한다며 우리가 제시한 디자인에 대한 거절의사를 밝혔다. 크기도, 형태도, 설치장소도 모두 사측이 원하는 방식이 아니면 받을 수 없다는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 후에도 몇 번 더 사측과 만나는 자리가 있었지만 의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허락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님에도 사측의 검열은 협의 내용 불이행으로 밖에 볼 수 없었다. 협의는 맴돌았다.    

 

결국 약속이행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행동이 서울과 태안에서 이어졌다. 국정감사를 위해 활동하던 산자부 일부 의원들도 상황을 알고 사안이 해결되도록 현장을 찾고 움직였다. 이런 목소리와 행동이 이어지면서 2020년 11월 10일, 한국서부발전은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건립을 위한 추진계획을 마련하고 이행하기로 확약했다.      


2년여 간 현장 답사, 관계자 미팅, 유가족 미팅을 반복하며 파견미술팀은 여러 차례 디자인을 수정했다. 그 과정에서 서부발전 내에 소문이 퍼졌다. 7미터 높이의 거대 조형물이 세워진다며 서부발전 내 일부 정규직 노조조합원들의 반발이 커졌다. 이들은 회사 앞 정문에서 추모조형물 설치반대 집회를 하기도했다. 하지만 이 소문의 진실은 추모조형물 설치를 위한 공간 조성시 사측에서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였다. 바닥면적 가로세로 7미터 이내 공간에 조형물 설치 및 주변환경 조성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와전되어 버린 것이다.     


처음 디자인은 비구상형태의 조형물에 자전거탄 용균이가 하늘을 향하는 모습이었다. 여러 번의 조율 끝에 동상형태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유는 사측이 젤 두려워했던 것이 동상형태의 조형물이었기 때문이다. 용균 어머니 김미숙은 추모조형물 제작에 많은 의견을 주었다. 즈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얼굴이 닮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얼굴제작은 사실적 묘사가 필요했다. 용균이 어릴 적 사진부터 최근 사진들까지 수십 장의 사진을 살펴보고 디자인을 시작했다. 몸은 과장과 단순화로 힘을 드러내기로 했다. 제작에 들어가고 이틀째 되는 날 김미숙 어머니가 작업실에 오셨다. 어머니가 오시기 전 날 파견미술팀은 기도하며 작업을 했다. “용균아 제발 나와라~~” 얼굴이 안 닮아서 어머니가 내 아들이 아니라고 하시면 어쩌나 조심스러웠다. 처음 작품을 본 어머니는 한 참을 들여다보더니 “용균이 같아요” 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안도감에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용균이의 추모 조형물이 용균이만을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간곡함을 거절할 수도 없었기에 얼굴은 구상형태로 사실적 묘사를 했고 몸은 구상과 비구상의 중간 어디쯤에 가까운 형태로 과장과 축소로 인한 의미 확대를 고민하며 제작되었다. 그리고 이 조형물은 4월 28일 세계산재추방의 날에 맞추어 설치하기로 했다.      

                     

추모조형물이나 추모 공간은 누가 어떤 이유로 마련하는가는 중요하다.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추모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추모조형물을 세우려는 것은 산업재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싶고,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지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면서 '3시간마다 죽는다는 1명의 노동자'라는 숫자가 아니라, 꿈이 있고 숨결이 있었던 사람을 떠올려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김용균재단 권미정)     


 

OECD 산재사망률 1위 국가. 지난달 평택항에서 일하던 이선호 노동자가 300키로가 넘는 컨테이너에 깔려 사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김용균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산업안전법 개정내용은 직업병 발생 위험이 큰 도금과 수은, 납, 카드뮴 등의 위험작업의 사내 도급을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공 김군의 사망사고도, 컨베이너 벨트에 끼어 사고가 난 김용균의 사망사고도, 평택항 컨테이너에 깔린 이선호의 사망사고도 책임질 수 없는 산업안전법이다. 뉴스에 나오지 않는 수없이 많은 하청 노동자의 죽음. 대한민국은 지금 하루 평균 7명이 이름도 없이 산재사고로 죽어간다.  

    

기업을 처벌하고 책임을 방기할 수 없도록 국가는 기업처벌법을 만들어야한다는 산재피해 유가족들의 눈물 속 외침들이 모여 2020년 1월 8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만들어졌다. 산업안전법이 그러하듯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반쪽자리 법에 불과하다. 법이 만들어 진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하는 건가. 김용균은 이 억울한 죽음들의 마침표여야 하지만 쉼표도 되지 못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전태일 일기장 낭독회를 마무리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