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유아 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화연대 May 17. 2021

붉은 장미는 피의 색이다

故이선호 추모문화제

2021년 4월 22일 오후 4시10분 평택항 부두에서 용역회사 지시에 따라 컨테이너 바닥에 있던 이물질 청소작업을 하다가 300㎏가량의 개방형 컨테이너(FRC)의 뒷부분 날개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23).



구의역 김군, 태안화력 발전소 김용균 그리고 평택항의 이선호. 끝없이 이어지는 죽음들. 매일 7명이 산재사고로 죽어가는 대한민국. 기업의 이익이, 자본의 이윤이 이 모든 죽음을 묵살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겠습니까. (중대재해처벌)법이 왜 누더기가 됐겠습니까. 당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그 법을 정하는 국회의원, 정치인들이, 자기 형제자매들이 다 그런 기업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기업 눈치만 봐서 그런 것 아닙니까. 최소 징역 3년, 5년부터 하한선 두고, 정확히 회사 사장이 처벌을 받게 하면 아마 하루아침에 본인이 안전관리·감독자를 하려고 할 겁니다. 근데 왜? 법이 물러서 그렇죠. 정치인들이 자기 죽을 법을 안 만드니까 그렇죠. 노동자를 위하는 정치인이 어디 있습니까. 정치판에만 들어가면 다 이상하게 변하지 않습니까.”(시사저널-고 이선호의 아버지 이재훈의 인터뷰)   


서울에서 추모제를 준비하기로 했다. 딱 3일안에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한다.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유가족의 마음이다. 용산참사 당시 처음 몇 주간 참사현장에는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슬픔을 머금은 유가족에게 음악은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즐거움이라는 공연문화에 대한 인식이 스스로를 가두는 모양새였다. 음악은 심신의 안정과 위로를 주는 소통형식이다. 음악은 의사전달과 주장을 이야기하는 매개역할을 한다. 그러하기에 모든 기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노동운동가, 인권활동가, 문화활동가 몇몇이 급하게 의견을 모아내고 기획초안을 마련했다. 발언과 영상과 공연과 마무리행동으로 기본구성을 하고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급하게 섭외를 했다. 다들 마음은 하나였다. 누구하나 정성스럽지 않은 이들이 없었고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며 준비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추모공연을 요청한다. 워낙에 어려운 자리인지라 요청을 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마음인데 되려 미안하고 고맙다고 이야기한다. 추모제라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최상의 시스템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공연자에게도 추모제에 오는 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음향으로 연대하는 친구에게 제안을 했다. 함께 할 수 있게 요청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거꾸로 받았다.      

 

“고인의 아버님이 참석하셨네요. 짐작이 안 될 부모님의 심정. 어떤 정신으로 버티고 계실까요. 추모의 목소리, 자본과 정권을 향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게 조용히 마음을 다해 음향으로 함께 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입니다.”(음향 조현민)   



이제 마지막으로 마음을 모으는 행동을 고민해야한다. 추모제는 일반적으로 하얀 국화를 사용하지만 이번 기획은 젊음, 청춘, 청년, 노동자라는 키워드에 방점을 찍었다. 붉은 장미는 피의 색이고, 젊음을 상징하고, 계절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짓눌린 젊은 피를 보여주고 싶었다. 컨테이너에 눌려버린 청춘. 그리고 그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고 우리 모두의 분노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모형 컨테이너를 만들고 검은색과 회색으로 칠을 했다. 그 사이에 한 송이 장미를 끼워 넣었다. 추모제 마지막에 참석자 모두는 이선호가 되어 모형 컨테이너에 스스로를 꽂아 넣고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함과 분노가 사라지는 그 날까지 함께하기로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다.     



추모제가 모두 끝난 후 이선호의 아버지 이재훈은 모형 컨테이너 맨 바닥에 깔린 장미 한 송이를 꺼내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 맨 위쪽에 옮겼다. 아버지는 “살아 있어라...”는 말을 조용히 되 뇌이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2022년 시행된다. 하지만 법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관이다. 기업주를 살리는 법으로 보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인데 정작 기업 처벌을 못하는 법.    


경영책임자 책임을 안전보건담당이사 책임으로

발주처 책임은 하청업체 책임으로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배제

5인 이상~49인 사업장은 2년간 유예.

50인 이상 사업장만 해당   

 

오늘, 하청업체 노동자에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없는 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용균을 세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