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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Jun 22. 2021

파견라떼

용산참사, 100가지 예술행동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추모의 물결로 이어져 사람들의 발걸음은 광화문과 시청으로 옮겨졌고 용산참사의 기억은 수그러들고 있었다. 5개월간의 투쟁은 지치고 힘겨웠다. 때로는 서로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고 화를 내며 싸우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 똑같은 고통을 겪는다 해도 사사로울 수 있는 것에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그것으로 인해 고성이 오갈 수도 있었다. 내적 갈등과 외적 현실 속에서 그렇게 서로들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있었고 세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긴 투쟁의 민낯이었다. 용산참사를 상기 시키고 진실을 알리고, 그리고 정권이 인정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했다.    

  

6월 항쟁의 아픈 기억의 날이 다가오면서 상황실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제안을 했다. 6월10일은 용산참사가 발생한지 140일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이렇게 어떤 날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에 행동을 조직하는 일이 상황실의 기본적인 일이 됐고, 용산참사 한 달되는 날, 50일되는 날, 100일 되는 날…. 용산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정권의 입막음이 계속 될수록 숫자는 늘어만 가고 숫자에 의미를 만들어 내는 일은 계속됐다.  



예술가 한 명이 한가지씩의 예술행동을 해보자. 100가지 예술행동. 용산 참사현장에 함께했던 예술가들은 물론 모든 예술가가 함께 용산참사를 기억하고 기록하자는 제안이었다.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공연과 춤이 이어지고, 텃밭도 만들고, 벼룩시장 나눔 장터, 음식 만들기, 바닥 그림 그리기, 펜스에 그림 그리기, 사진관에서 사진 찍기, 시낭송과 캐리커처 그리기, 판화 찍기 및 티셔츠판매, 현수막 전시 등 참사현장 주변으로 문화예술인들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오가는 시민에게 참사현장을 돌아보며 용산참사의 진실을 재개발정책의 문제 등을 설명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북적거리는 용산 참사현장의 하루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용산 참사현장이 철거 지역이다 보니 폐자재와 쓰레기가 많았고 작가들은 이런 것을 모아 작품으로 만들고 시민과 소통했다. 나에게도 매일매일 긴 시간을 채울 일이 필요했고 스스로 주문을 걸었다. 주변에 날아다니는 스티로폼 조각들을 주워 꽃을 만들었다. 100개만 만들자며 시작했다. 칼로 스티로폼을 깎아 만든 꽃은 나 스스로에게 위안이기도 했고 쓰레기가 아니라는 저항이기도 했다. 깎아 만든 꽃은 하나하나 남일당(용산참사 현장 건물) 펜스에 붙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철거용역의 감시를 받았고, 가끔은 다가와 뭐하는 거냐고 협박하는 말을 듣기도 했다.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꽃 붙이는 거라고 쏘아붙였지만, 사실 심장이 쫀득거리고는 했다. 하루에 몇 개씩 붙여나간 꽃은 6월10일 100가지 예술행동 중에 하나로 완성된 100개를 다 붙였다. 그리고 하얀 추모의 꽃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100가지 예술행동의 날’, 지나가던 용역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지만 늘 있는 일이니 별 걱정 없이 진행했다. 그 순간 용역대장이 눈을 부릅뜨고 나타나서는 용역들에게 펜스의 꽃을 뜯으라고 했다. 무슨 짓이냐고 저항하는 사람에게 용역대장은 말했다. ‘이 펜스는 우리 꺼다. 니들이 뭔데 우리 물건에 손을 대냐’는 거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몰려왔고 뜯어내는 용역과 이를 물리치려는 사람이 한순간에 뒤엉켜버렸다. 용역은 의기양양 모든 꽃을 뜯고 돌아갔다. 용역의 더러운 몸뚱아리와 괴력에 밀려 결국 꽃이 뜯겨나간 펜스는 처참하기만 했다.   



유독 남일당 참사현장에 민감했던 용역은 한바탕 승리했다는 자부심으로 더 이상 현장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인의 예술행동에 딴지걸지는 않았다. 파견미술팀은 종이에 돌아가신 5분의 영정이미지를 붙이고 스텐실 작업을 준비했다. 준비된 판을 들고 용산참사 주변 모든 펜스에 스프레이 락카를 들고 다니며 작업을 했다. 한 분 한 분 얼굴을 찍을 때마다 참사현장 곳곳은 힘을 받는 모습이었다. 사진가들은 용산사진관을 운영했다. 영정이 찍힌 펜스를 배경으로, 처참히 뜯긴 남일당 펜스를 배경으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유가족도 웃고, 용산 참사현장에 살고계신 문정현 신부님도 웃고, 용역에게 두들겨 맞기도 하고 험한 협박을 받았던 철거민들도 웃고 있었다. 웃음을 잃어버린 것 같은 사람의 얼굴에 작은 희망의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뜯겨나간 꽃을 다시 주워 모았다. 지난 몇 달간의 작업이 내동댕이쳐지고 버려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고 철거용역의 잔인한 짓거리를 묵인하기도 싫었다. 탄압은 또 다른 저항을 만드는 것이기에 버려진 꽃을 다시 살려내기로 했다. 6.10항쟁의 정신이기도 하다. 부서진 꽃을 최대한 살리고 꽃마다 꽃대를 만들었다. 용산참사 140일의 문화예술행동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꽃을 날리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그리고 레아(고 이상림 씨의 가게가 있던 건물)기자회견 마지막에 건물에 오른 작가들은 층층이 올라가 꽃을 던졌다. 새롭게 시작하자는 다짐의 자리였고 용산참사의 길고 긴 싸움에 다시 용기를 내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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