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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Sep 07. 2021

찰칵 연대

기록을 기억하는 내일을 위해

멀리 행진단의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 줌을 당겨 이리 찍고 저리 찍고

점점 가까워지는 행진단의 얼굴이 보이고

한 사람 한 사람 셔터를 누르며 표정을 담는다.

어! 셔터 소리가 안 들리고 손이 허전하다


카메라가 손에 없다.

급한 마음에 카메라를 찾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카메라는 없다.

뜬 눈으로 집안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는 나를 본다... 꿈이다.

3일째 같은 꿈을 꾼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후유증 같은 건가...


사진 정택용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지부는 행진을 결의하고 세종시 고용노동부앞에서 청와대까지  "문재인대통령, 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와 만납시다!"를 외치며 9박10일간 쉬지 않고 걸었다.


대선시기. 정부와 정치권은 권력 잡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언론의 카메라도 모두 여기에 쏠려있다.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대통령이 누구든 국민의 소리를 먼저 들으려 하지 않고, 먼저 찾아보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힘은 허상이며 그 권력은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총액임금제. 정규직 조합원들과의 갈등에는 ‘공공기관은 정해진 예산 안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공공기관 총액임금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비정규직인 고객센터지부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면 임금총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눠 먹기식 임금제도가 준 문제를 엉뚱한 곳에 화풀이 하듯 헌법이 보장한 투쟁을 방해하고 폄훼하는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움이 절로 나온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와 공기업의 직접고용을 외칠 때, 정규직 노조는 총액임금제 폐지 투쟁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공동의 상생과 국가시스템의 오류를 함께 지적하고 투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어쭙잖게 생각해 본다. 내가 이상적인 말만하고 있는 건가?


공기업의 업무위탁 문제는 전문성보다 경쟁에 초점을 맞춘다. 얼마나 많은 콜 수를 얼마나 저렴한 가격에 맞출 지가 수탁업체 평가기준이다. 또한 수탁업체는 노동자에게 갈 자본을 중간착취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이런 현실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외침은 이기적인 외침인가?


난 노동자들의 외침에 함께 소리치기를 선택했다. 다양한 방식의 외침이 있겠지만 나의 선택은 사진이었다. 사진은 역사를 기억하기에 좋은 재료다. 고객센터 노동자투쟁의 기록은 공기업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역사적 순간으로 남게 될 것이다.


사진은 또한 투쟁당사자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나와 내 동지의 모습을 보며 힘을 얻고, 우리의 모습이 SNS를 통해 보여 연대를 이끌어 낼 수도 있다. 사진은 다시 2차 가공이 되어 포스터나 소식지로 만들어 홍보 효과를 내기도 하고, 영상이나 다큐의 재료로 쓰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속적이면서도 다소 집착스러운 촬영을 시작했다.

행진에 참여한 40여명의 조합원 한 명 한 명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으니 셔터가 쉴 틈이 없었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도 태양이 뜨겁게 달아오른 날에도 걷고 또 걷는 이들은 앞만 보고 걷는다.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함께 걷는 이들은 서로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거리두기 4단계는 1인 간격 70미터를 요구했다. 어떤 조합원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걸었고, 어떤 조합원은 분노하며 걸었다. 서로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시간들이 그렇게 흐른다. 힘들고 지쳐갈 때 외로움이 몰려온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바로 이런 순간 내 옆의 동지가 함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행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함께 모일 시간이 없다. 코로나19는 모두가 같은 공간에 모이지 못하게 한다. 밥도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잔다. 빠르게 하루의 사진을 정리해서 행진단 소통 SNS방에 올린다. 앞만 보고 걷던 나와 내 동지의 모습, 내가 걸어온 길의 풍경, 부풀어 터진 동지의 발가락, 지쳐 쓰러져 자는 친구의 모습, 경찰의 터무니없는 채증과 통제.... 걸으며 볼 수 없는 것들을 공유한다.


마지막 날,

추억을 엮어준 것에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나의 연대는 우리의 투쟁이 어떤 과정 속에 만들어졌고, 이런 과정이 어떻게 승리로 이어졌는지 세상에 알리고 싶음이다. 결국엔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기억하는 내일을 위해 나의 찰칵 연대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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