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근현대 생활사의 진열장
‘양키시장’

by 문화연대

나는 1983년에 동두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쭉 살고 있다. 내 또래, 그리고 전 세대를 걸쳐 유년시절을 동두천에서 보낸 사람들은 저마다 미군의 전투식량인 시레이션 Meal, Ready to Eat'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다. 50년대에서 90년대까지 동두천에 사는 아이들에게 씨레이션은 오리온이나 해태에서 나오는 과자 선물세트처럼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존재였다. 가족 중 누군가가 미군이거나,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으면 손쉽게 부대에서 씨레이션을 가져올 수 있었고, 구해다 줄 사람이 없으면 '양키시장'에 가서 몇 천 원을 내고 씨레이션 한 봉지를 사 가곤 했다. 시레이션에 대한 추억은 동두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소설가 황석영의 한 산문집에는 시레이션을 ‘천국의 선물’로 표현한 구절이 있다.


“나의 유년 시절은 전쟁 기간이었다. 아니 태어나서 얼마 후에 해방이 되어 미군이 들어왔으니 미제 먹을 것에 대한 선망과 추억이 어린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었다. 환상적인 갖가지 색깔의 드롭스가 그렇고, 묘향 향내 나는 젤리에 형용할 수 없이 혀끝을 사로잡던 초콜릿이며 추잉껌이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골고루 들어 있던 시레이션은 천국의 선물이었다.”

*황석영 『황석영의 밥도둑』 25쪽에서 인용. 글항아리.2016


아이들에게 씨레이션이 인기였다면 주부 사이에선 ‘미제 그릇’이 히트 상품이었다. 2020년 케이블 방송 인기 예능프로그램에서 동두천 출신의 배우가 고향에 사는 이모 댁을 방문하여 밥을 먹고 이야기 나누는 내용이 방영된 적 있다. 방송 중 동두천에서 미제 그릇이 어느 정도 위상을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는 장면이 나온다. 조카가 좋아하는 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한 이모는 특별한 상차림을 위해 아끼는 접시를 꺼냈는데, 그게 바로 “무려 40년이 된 예쁜 미제 접시”였다. 그러자 방송 진행자는 방긋 웃으면서 ‘동두천하면 미제’라고 멘트를 날렸다. 시레이션과 마찬가지로 미제 접시도 양키시장에서 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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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시장의 인문적 가치: 미국의 부와 문화의 상징 ‘미제’

해방기에 미국은 한국의 해방을 가져다준 우방이자 경제 원조를 제공한,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중심이 되는 국가로 인식되었다. 한국전쟁이 휴전되자 미국은 한국사회에 생존의 불안을 기댈 기둥 혹은 배움의 청사진을 상징하는 나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감정의 대상은 ‘미국적인 모든 것’ 특히 구체적인 사물인 ‘미제’에 유효하게 발현되고 확산되었다. 실제로 1950년대 서울 용산에 주둔한 미군부대 피엑스에서 점원이었던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보면 당시 미제가 지닌 상징을 잘 파악할 수 있다.


“PX 물건 하면 곧 고급의 사치품을 의미했다. 럭키스트라이크와 카멜 담배, 밀키웨이 초콜릿, 럭스 비누, 나비스코 비스킷, 참스 캔디, 폰즈 크림, 콜게이트 치약, 그런 미제 물건들이 좌판에 반짝반짝하고 알록달록하게 모여 있는 것만 봐도 즐거운 눈요기가 되었고,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무조건적인 동경을 불러일으켰다. 구질구질한 시장 속의 난데없는 꽃밭 같은 이 작은 좌판들이 곧 미국의 부와 문화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박완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세계사, 2012), p.202~203 중에서


한국의 근대화는 이른바 ‘미군PX 자본주의’를 제외하고 서술될 수 없을 만큼 이른바 미제는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시 상황에서 한국에게 미국의 지원이 선택사항이 아니었던 것처럼, 미제가 표상하는 미국 이미지의 매혹은 전시 한국인들로서는 거부하기 힘든 힘이자 꿈꾸지 않을 수 없는 부유함이었다. 미제를 향한 한국인들의 동경은 곧 욕망으로 뒤집힌 채 강력한 물신화를 낳기도 했다. 박완서는 미군 PX를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이런 이국적인 활기와, 정신을 혼미하게 하는 천박의 근원지”라고 부르기도 했다.『나목』,『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등등 미군부대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박완서 작가의 전기적 작품을 보면 미국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 사이의 낙차에서 모멸감을 토로하는 부분이 자주 나온다.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전시 여성 가장의 미군 PX 경험」을 연구한 신수정은 “이 모멸감은 이후 박완서 소설에 나타나는 미국적인 것에 대한 객관적 통찰과 통렬한 비판의 근원”으로 설명한다.


동두천 양키시장의 과거와 현재

양키시장은 미군기지가 주둔하는 지역에 공통적으로 형성된 미군 물건을 암거래하는 상점이 밀집된 상권을 뜻한다. ‘양키’가 미군을 비하하는 용어여서 명칭을 순화하여 블랙마켓으로 부르기도 한다. 언제부터 양키시장이라고 불렸는지 알 방법은 없지만 1950년대 미군부대가 배경인 문학 작품을 보면 대부분 양키시장으로 지칭한다. 미군기지가 위치한 도시에는 예외 없이 PX에서 흘러나오는 상품들로 암시장이 형성됐다. 동두천의 미군 주둔 60년사를 연구한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군은 중대단위 이상의 부대가 주둔하는 전국 120개소 지역에 PX를 운영하였는데 총 취급품의 60%가 부정 유출됐고, 그 가치는 당시 가격으로 300억 원 이상이었다고 한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동두천은 전국 가장 큰 규모의 미군기지가 주둔하던 지역이었다. 그리하여 미군물품이 큰 인기를 누리던 1980년대만 해도 서울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을 비롯하여 인천 부평과 동인천 등지에서 거래됐던 미군 물건의 공급처가 대부분 동두천 양키시장이었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생연2동에 위치해 있다. 경원선이 다녔던 동두천역(현 전철1호선 동두천중앙역)에서 도보로 5분, 예전 동두천버스터미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을 만큼 접근성이 뛰어난 곳이다. 1990년대만 해도 100여 미터 되는 시장길 양쪽으로 20개의 상점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다. 60~70년대 이곳은 미군이 내다 팔거나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품들로 가득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이라 미제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물건을 사고자 찾아온 내국인들로 시장은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국내 과자 시장이 크게 확장되고, 시중에서도 수입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씨레이션은 물론 양키시장에서 파는 물건의 인기가 크게 사라지게 된다. 온라인 쇼핑몰이 유통계를 장악하고, 코스트코 같은 대형 수입 마켓이 생기면서 양키시장의 상권은 전례 없는 위기에 빠지게 된다. 2010년대 후반 대중적으로 캠핑이 인기를 끌면서 미군용품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이 많아져 잠시 활기가 생기긴 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하여 심각한 고비를 맞이하고 있다. 현재 양키시장에 남은 상점은 8개 안팎이다.

동두천 양키시장은 2019년에 동두천시에서 도시재생 뉴딜사업 1순위 대상지로 선정되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경기도나 인천광역시처럼 미군주둔과 함께 시작된 근현대사를 간직한 광역자치단체에서 최근 미군기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생활사가 지닌 인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기지를 둘러싸고 번성했던 클럽, 미군을 대상으로 치수를 재고 옷을 만들던 양복점, 미군 입맛에 맞춰 개발된 바비큐, 부대찌개처럼 기지생활권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상점들, 그리고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인 ‘미군PX 자본주의’를 만든 양키시장이 지닌 인문적 가치가 재조명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록작업은 아직 아무도 하지 않는다. 누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지. 늦어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양키시장 기록 활동을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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