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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화연대 Oct 25. 2022

파견라떼

포클레인의 변신은 무죄!  기륭전자분회투쟁 1895일 그리고..



 2005년 시작된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의 투쟁은 2010년 11월 1일 “1895일의 투쟁을 끝으로 정규직 복직을 회사와 합의하며 기나긴 거리의 투쟁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이 모른다. 합의 내용에는 1년 6개월 이후 공장정비를 한 뒤 복직을 한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1년 6개월의 복직시점 유예기간을 더 둔다고 되어 있다. 최장 3년간 유예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3년 5월 2일 출근은 했지만 출근 첫날 텅 빈 사무실에는 책상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생산설비가 갖춰질 때까지 대기출근 장소라고 했다. 하루, 이틀, 몇 달이 지나도록 일은커녕 감시의 대상이 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2013년 텅 빈 회사에서 다시 358일을 싸웠고 그 사이 사장은 야반도주를 했다. 복직의 꿈은 그냥 꿈으로 남은 것이다. 투쟁의 결말은 다시 투쟁이었고 지금까지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부당해고. 노조결성. 6년여 간의 긴 투쟁. 노사합의. 다시 투쟁. 그리고 법정공방의 지난한 시간. 이 긴 투쟁의 한 모퉁이에 파견미술팀도 함께 있었다.  파견미술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훨씬 이전부터다.     


2008년 5월 20일 ‘기륭 투쟁 1000일 문화인 행동의 날’ 천막미술관을 만들기로 했다. 농성장과 미술관 사이에 고 구본주 작가의 <비스킷 나눠먹기> 긴 의자가 설치됐고, 농성 컨테이너 앞에는 비정규철폐 기원 탑으로 <우리는 일하고 싶다>가 설치됐다. 고뇌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농성하는 노동자들의 힘겨움을 대변하는 듯했다.    

천막미술관도 차렸다. 미술관 배경으로 설치된 노래가사들은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55일간 현장 파업을 할 때 조별로 노래가사 바꿔 부르기를 하면서 작성된 선전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선전판 배경을 뒤로 작업복이 걸려있고, 그간의 투쟁을 보여주는 사진이 빨래 줄에 걸려있다. 이때만 해도 투쟁의 시간이 그렇게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천막미술관은 이후로도 몇 번 변신했다. 낡고 허름한 미술관과 농성장은 오가는 시민에게 불편함을 주었고, 투쟁 당사자 입장에서도 낡음이 주는 느낌처럼 사람들이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농성장을 만들고 투쟁하는 사람의 대부분이 농성장에 대한 고민이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래서인지 새롭고 깨끗하게 그리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형식과 내용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 구본주 작가의 <비스킷 나눠먹기> 긴 의자는 기륭투쟁과 함께 긴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쉼터의 공간으로, 때로는 눈물과 하소연의 공간으로, 때로는 맛난 음식을 만들기 위한 칼도마로 쓰이기도 했다. 기륭분회 유흥희는 구본주 작자의 부인 전미영에게 ‘귀한 작품을 칼도마로 써서 미안해요’ 라며 지금도 만나는 자리에서마다 이야기를 한다.

      

2010년 10월 기륭농성장 앞이 시끌시끌하다. 공장 앞 도로에는 포클레인이 한 대 서있고, 기륭분회 윤종희는 포클레인 아래 누워있고, 기륭분회 김소연과 송경동 시인은 포클레인 위에 올라 서 있다. 기륭전자가 부지를 팔아 버리고 도망간 후 새 땅 주인이 세워놓은 포클레인이다. 아마도 공장을 부수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는 심산이다. 그러다보면 농성하는 사람들이 제풀에 포기하고 돌아갈 줄 알았나보다. 경찰이 몰려와 농성중인 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자 포클레인 위에 얼기설기 쳐진 전기 줄을 부여잡고 버틴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일주일이 지나고 포클레인의 모습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스갯소리로 이 농성을 최초의 저공농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전미영은 전기 줄에 알록달록 현수막 천을 매달기 시작했고, 포클레인에도 쓰다버린 현수막 천을 잘라 길게 늘였다. 이윤엽은 새로운 땅주인 말고 기륭 사장이 직접 이 사태를 해결하라는 의미로 현수막을 써서 포클레인에 걸기도 했다. 점점 늘어나는 천조각은 포클레인을 남사당의 고목으로 변신시켰고, 포클레인은 다시 거북선으로 변하는가 하면, 사자춤을 추는 사자의 털로 바뀌기도 했다. 늦은 밤 파견미술팀은 종이박스와 은박 롤을 오리고 붙여 용머리 모양을 만들었고 포클레인 가장 높은 곳에 붙였다.      


포클레인의 변신은 무죄다. 현실의 포클레인은 점점 비현실적으로 변화해 결국은 용의 형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나규환은 처음 포클레인에 현수막을 묶는 모습을 보며 거북선이 생각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거북선은 망망대해에 길을 잃은 한 척의 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 기륭 투쟁의 노동자들은 거듭되는 사측의 압박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마지막 투쟁이라는 생각과 어쩌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 힘겨운 시기였다고 한다.                        

용머리가 부착된 다음날 문화예술인은 모여 기자회견을 하고 용의 몸에 조명등과 꽃을 달았다. 이로서 완전한 용 포클레인이 완성되었다. 이 포클레인의 이름은 ‘비정규직 없는 포클레인’이다. 저녁 문화제 시간에 조명을 받은 용 포클레인은 사라진 공장의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즐거운 투쟁의 시작이었다. 투쟁의 힘겨움을 익살과 유머로 만들어 주는 작업이야말로 투쟁 현장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한 달여간의 포클레인 저공농성은 2010년 11월 사측과의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2010년 11월 9일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에 죽음의 포클레인을 멈춰라!" 투쟁승리 보고대회를 준비했다. 함께했던 문화예술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각자의 작업들을 준비했다. 판화도 찍고, 영상도 만들고, 공연도 준비한다. 이 날 만큼은 밤 새 춤추고 노래하며 신나게 놀았다. 열정적으로 밤을 보내고 파견미술팀은 천막미술관 정리를 시작했다. 다시 시작되는 악몽의 시작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밤이었다.


최동열 기륭전자회장은 합의를 무시하고 2013년 12월 야반도주했고 회사는 폐업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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