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계절을 지나,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기다리는가
겨울이 떠난 자리에 뜨거운 여름도 오지 않은 채,
우리는 대선을 맞는다.
2025년의 이 계절은 본래 나라의 진로를 묻는 계절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떤 권력은 헌정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했고
국민은 그 시도를 심판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투표소 앞에 서게 된다.
윤석열의 파면은 정권의 무너짐이 아니라,
국가의 질서와 정신이 간신히 되살려낸 징표였다.
계엄령이 입에 오르내리고 민주주의가 정지될 위기에,
헌법재판소가 늦게나마 대답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위헌의 언저리에 있던 사람들
입을 다물고 동조하던 자들이
이제는 다시 손을 들어 “대통령이 되겠다”라고 외친다.
김문수 전 장관, 그 이름은 낯설지 않다.
오래전, 그는 노동자의 이름을 가졌을 뿐
극우의 최전선이라는 구호를 입고 돌아왔다.
“김문수가 이재명을 이긴다”라는 구호,
민주주의를 지켜온 모든 이들을 조롱하는 메아리처럼 들린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깨끗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권력은, 깨끗한 손으로만 쥐어진 적이 없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거를 돌아보는 눈, 책임을 감당할 용기다.
그는 계엄령에 관한 질문과 책임에 정확히 답하지 않는다.
그의 침묵은 사유의 부재가 아니라, 회피의 기술이다.
국민의힘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대선을 향한 열차에 모두를 태운다.
그 열차의 종착지는 회복이 아니라, 반역의 반복이다.
내란의 동조자들이 심판을 받기는커녕
언론의 묵인 속에 다시 대권을 꿈꾸고 있다.
이 얼마나 값싼 망각인가.
언론의 책임도 크다.
중립이란 이름의 외투를 입고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린다.
“선거는 다 그런 것”이라며, 계엄도, 탄핵도, 경제위기까지,
그저 스쳐 가는 뉴스로 환원한다.
정치가 무너질 때, 언론의 방조는
더 무겁다. 더 치명적이다.
이재명은 당 대표직을 내려놓고
국민 곁으로 한 발짝 다가왔다.
김동연을 비롯한 야당 정치인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모두는 미래를 말하고 대연정을 말한다.
현재의 난항을 돌파하고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이번 대선은 묻는다.
“그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날, 침묵했는가, 외쳤는가?”
그리고 더 깊이 묻는다.
“당신은 이 나라의 미래를 누구에게 맡길 준비가 되었는가?”
역사는 손쉬운 용서를 기억하지 않는다.
국민은 이제, 분명히 새겨야 한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책임의 시작이었음을.
계엄령은 오판이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었음을.
그리고 이번 투표는
그 모든 것을 되돌릴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라는 것을.
6월 3일, 우리가 내딛는 그 한 걸음은
무력했던 과거와 결별하는 첫 발자국이 될 수 있다.
침묵 대신 책임을, 망각 대신 기억을.
이 봄, 민주주의는 다시 태어나야 한다.
“헌법 위에 군화를 올렸던 자들, 다시는 투표용지 위에 이름을 올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