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리뷰] <아버지의 해방일지>

박제된 혁명가에서 한 명의 ‘인간’으로

by 가다은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에서 출발하면서 그 끝은 역설적으로 삶을 향한 따스한 긍정과 화해로 수렴되는 작품이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숨을 거둔 한 노인의 장례식장에서 펼쳐지는 3일간의 기록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역사’라는 인간의 실체를 복원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마감한 비장하고도 유머러스한 삶

소설은 첫 문장부터 강렬하다.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혁명가로 정색하며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비극이라기보다 차라리 유머러스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는 민중의 한걸음이 역사를 바꾼다는 신념으로 진지하게 한 발을 내디뎠겠지만, 하필 그 자리에 무심하게 서 있던 전봇대는 사회주의자 아버지의 마지막 앞길을 막아섰다.

아버지는 전봇대에 머리를 박는 그 찰나의 순간에도 눈앞의 장애물을 믿지 않았을 것이며, 참으로 아버지답게 마지막까지 비장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여운을 남겼다. 이 허무하고도 황당한 죽음은 아버지의 평생을 대변하는 은유와도 같다. 아버지는 문자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나, 농부로서는 젬병이었고 의식만 앞선 촌뜨기였다.

소시민적 의식과 행동을 비판하며 혁명을 논하던 그의 모습은 처형 직전의 독립운동가라 해도 믿을 만큼 비장했다. 바짓가랑이에 붙은 먼지 한 톨조차 인간의 시원이라 중히 여겨 함부로 털어내지 않았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결국 그 시원으로 돌아감으로써 자신의 철학을 완성했다.


■ ‘빨치산’이라는 굴레와 그 속에 감춰진 인간의 얼굴

딸인 주인공에게 아버지는 평생 빨치산이라는 무거운 굴레였다. 현대사의 비극이 뒤틀어 놓은 인연들 속에서 주인공은 빨갱이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허용하는 친밀한 거리를 넘어서지 못한 채 살아야 했다.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평생을 발버둥 쳐온 딸에게 아버지는 이해하기 힘든 타자였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굴레가 너무 무거워 아버지가 자식에게 가졌을 법한 기대조차 생각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딸의 오랜 상처를 짐작게 한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모여든 조문객들의 이야기는 딸이 알던 ‘혁명가 아버지’의 외피를 하나씩 벗겨낸다. 그 안에는 고추밭 김매는 두 시간의 노동을 견디지 못해 소주를 들이켜던 나약한 사내와, 여린 꽃을 보며 풋사랑의 기억에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던 감성적인 남자가 살고 있었다. 이데올로기라는 거창한 이름 아래 가려져 있던 뻔한 남성의 욕망과 인간적인 허점들은, 오히려 아버지를 비로소 한 명의 구체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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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을 견디는 법, 그리고 소멸을 대하는 자세

아버지는 1948년 겨울부터 1952년 봄까지 백운산과 지리산을 떠돌며 빨치산으로 살았다. 그 짧다면 짧은 4년의 세월은 남한 사회의 금기 속에서 아버지의 남은 평생을 옥죄었다. 딸은 아버지가 치른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래서 고통스러웠을 기억조차 ‘찬란한 젊음의 순간’으로 치환하면서 애정을 키운다.

전기 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날조차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는 다시 올 수 없는 찬란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도리어 신이 나서 말하는 아버지의 미욱함을 딸은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이해하게 된다.

주인공은 인내할 줄 아는 자는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고통이든 슬픔이든 잘 참는 사람은 그저 견디지만, 아버지는 고통을 참기보다 싸우는 쪽을 택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임을 알았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를 믿으며 그 소멸에 맞서왔다.


■ 관계의 회복: 먼지에서 시작해 사람으로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남겨진 자들 사이의 기묘한 화해의 장이 된다. 평생을 사회주의에 몸담으며 혈육을 뿌리쳤던 아버지의 냉정한 합리주의를, 딸은 비로소 자신과 닮은 ‘삶의 결’로 받아들인다. 아버지가 가족을 등지고 산으로 향했을 때의 그 무겁고, 한편으론 가벼웠을 발걸음을 짐작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딸은 비로소 ‘누구의 딸’이 아닌 ‘아버지의 딸’로서 그를 마주한다.

아버지는 평소 “그거사 니 사정이제”라며 타인의 사정을 무심하게 넘기는 듯했지만, 사실은 섬세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 손으로 누구보다 따뜻하게 사람들을 보듬었다. 괴물처럼 확장하는 자본주의의 기세 앞에서도 아버지는 사람을 믿었다. 사람이기에 실수하고 배신하지만, 또한 사람이기에 용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아버지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다.


■ 해방: 죽음을 통해 비로소 부활하는 삶

죽음이란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보통 사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아버지는 죽음을 통해 비로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죽은 자의 얼굴을 보며 딸은 삶이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죽음이란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니, 아버지에게 해방의 기쁨 또한 그만큼 크지 않을까 생각하며 다시는 눈 뜰 수 없는 그의 얼굴을 본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것이기에, 이제 화해나 용서도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을 품는다.

장례식장에 가득 찬 타인들의 눈물은 딸의 마음속에 가득했던 습기를 불태워버린다. 아버지는 이제 누군가의 시간 속에 각인되어, 그들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생생하게 살아날 것이다. 바람 없는 날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고요하게 다가온 이 깨달음은, 못난 딸이었던 주인공에게 건네는 아버지의 마지막 위로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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