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사라져갈 기억을 복원하는 끝없는 전투

by 가다은

사라져갈 기억을 복원하는 끝없는 전투


토마스 핀천의 소설 『바인랜드(Vineland)』를 읽는 행위는 단순히 한 권의 책을 독파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지층을 파헤치는 고고학적 발굴과 같다. 그리고 2025년 개봉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는 이 지층 속에서 발견된 가장 선명한 유물이다. 이제 소설과 영화라는 두 개의 렌즈를 겹쳐 봄으로써, 미국 사회가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을 조작하며, 왜 여전히 ‘끝없는 싸움’ 속에 놓여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 시스템의 공포: ‘정상성’이라는 이름의 감옥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여러 큰 신화 중 하나는 ‘정상(Normal)’이라는 개념이다. 소설 『바인랜드』에서 조이드 휠러와 그의 전처 프레네시 게이츠는 ‘정상적인 사회’의 틀에서 벗어난 인물들이다. 연방 검사 브록 본드는 이들을 감시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한다. 그가 이들을 쫓는 이유는 단순한 범죄 수사가 아니라, 이들이 가진 ‘다름’과 ‘자유로운 정신’이 미국이라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에서 등장하는 ‘스티브 록조(숀 펜)’는 이 감시 기제의 가장 추악한 실체를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우월한 백인 인종주의자로 규정하며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이라는 엘리트 카르텔에 진입하려 한다. 여기서 영화는 매우 날카로운 통찰을 내놓는다. 스티브 록조는 자신이 시스템의 주인이라고 믿지만, 실상 그는 시스템이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중간 관리자’에 불과하다. 흑인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면서도 인종 차별주의를 내세우는 그의 이중성은 미국 사회가 건국 초기부터 안고 있던 ‘노예제’와 ‘민주주의’라는 모순을 그대로 반영한다.

소설의 조이드가 유리창을 깨고 뛰어내리는 행위나, 영화 속 스티브 록조가 흑인 경비원을 쏘며 무너지는 장면은 모두 같은 맥락의 진실을 보여준다. 권력이 만든 ‘정상성’의 테두리 안에서 개인은 부속품이 되거나 파괴된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너는 이 안에 있어야 안전하다”라고 속삭이지만, 그 안전은 사실 비판적 사고를 거세당한 대가로 얻어지는 마취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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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의 배틀그라운드: 텔레비전과 카메라


핀천은 소설에서 텔레비전을 ‘튜브(The Tube)’라 부르며, 이것이 어떻게 사람들의 뇌를 마비시키는지를 비판한다. 1980년대 미국의 대중은 텔레비전이라는 일방적 미디어 앞에 앉아 세상이 떠먹여 주는 진실만을 소비했다. 기억은 삭제되고 분노는 오락으로 변질되었다. 『바인랜드』의 인물들이 겪는 혼란은 바로 이 기억 상실에서 비롯된다.

반면,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미디어를 다른 방식으로 다룬다. 영화 속 혁명가들이 들고 다니는 카메라는 텔레비전의 ‘튜브’와 대비되는 ‘무기’다. 그들은 기록을 통해 진실을 포착하려 한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이 만들던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가 결국은 권력에 의해 왜곡되거나 잊히는 과정을 보여주며, 단순히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 사회가 겪어온 ‘기억의 전쟁’을 읽을 수 있다. 권력은 언제나 기록을 지우려 한다. 60년대의 뜨거웠던 혁명 정신은 80년대의 소비주의 아래 묻혔고 그 위에 새로운 신화가 덧씌워졌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은 역설적으로 그 ‘지워진 흔적’을 복원한다. 영화가 16년 뒤의 디카프리오(밥)를 통해 과거의 암호를 잊은 채 살아가던 이들이 다시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권력의 미디어 전략이 아무리 정교해도 인간의 본능적인 저항 의식까지는 완전히 삭제할 수 없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다.



■ 세대 간의 유산: 혁명의 이데올로기가 아닌 ‘생존의 기술’


『바인랜드』와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가장 입체적인 지점은 ‘세대 교체’의 묘사에 있다. 소설의 프레리나 영화의 윌라는 부모 세대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그들은 혁명가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그들이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나 거창한 정치 슬로건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부모가 처절하게 패배하며 겪었던 ‘고통의 기억’과 ‘살아남는 법’을 체득한다.

영화에서 윌라가 스티브 록조라는 거대한 악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과정은 전형적인 영웅 서사가 아니다. 그녀는 혼란스럽고 흔들린다. 자신의 아버지가 밥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조차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정체성의 근원이 아니라 그녀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다.

이는 미국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과거의 혁명가들은 ‘체제의 전복’이라는 거대한 목표 아래 자녀들을 방치하거나 상처 입혔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는 시스템을 전복하는 것보다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지키며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영화가 윌라에게 동료들과 함께 도망치고 싸우는 ‘생존의 서사’를 부여한 것은, 우리가 이제는 ‘이론’이 아닌 ‘삶의 현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핀천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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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신화와 그 붕괴: 누가 진정한 주인인가?


두 작품을 관통하는 가장 뼈아픈 비판은 ‘미국이라는 나라의 근본적인 모순’에 있다. 영화 속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라 불리는 존재들의 현대적 변주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 나라를 선도한다는 오만한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운영하는 시스템(이민자 착취, 불법 노동)은 그들이 말하는 ‘위대한 미국’의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소설과 영화는 이 지점에서 일치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이민자들의 나라’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이민자를 배제하고 감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 스티브 록조가 자기 딸이 될지도 모르는 윌라를 죽이려 하는 것은 미국 내 극우 세력이 자신들의 혈통적 순수성을 지키겠다며 모순을 저지르는 꼴과 같다.

우리는 여기서 미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지점을 목격한다. ‘자유’를 위해 세워진 나라가, 그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자유’를 양산해 왔는가. 핀천은 『바인랜드』에서 60년대라는 환상을 통해 이 사실을 지적했고, 영화는 이를 2025년의 시점에서 더욱 선명한 액션과 블랙 코미디로 재현했다. 결국, 이 싸움은 단순히 좌파와 우파의 싸움이 아니다. 인간성을 상실한 시스템과 그 안에서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개인들 사이의 영원한 전투이다.



■ 역사는 끝나지 않는 파도다


영화의 제목이 왜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인가? 그것은 전쟁이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 『바인랜드』의 끝에서 인물과 가족이 다시 모이는 것처럼, 영화의 주인공들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며 깨닫는다. 사회적 불평등, 인종 차별, 권력의 감시 등 우리가 겪는 문제는 60년대에도 있었고 80년대에도 있었으며,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망해야 하는가? 아니다. 핀천과 폴 토마스 앤더슨은 우리에게 패배를 인정하되, 싸움을 멈추지 말라고 말한다.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파도다. 한번 밀려와 모든 걸 쓸어버리고 나면, 다시 밀려오기 위해 물러나는 시간이 필요하다. 60년대의 혁명가들은 밀려왔던 파도였고 80년대의 무기력함은 물러나는 파도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다시금 새로운 파도를 준비하는 시간일 것이다.

이 거대한 담론을 접하노라면, 이 소설과 영화는 가장 친절하고도 무서운 교과서가 될 것이다. 우리가 마주할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바인랜드』와 영화가 남긴 ‘기록’과 ‘기억’의 파편들을 손에 쥔다면, 시스템이라는 감옥에 갇히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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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천이 쳐놓은 그 거대한 미로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선택하겠는가? 조이드 휠러처럼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뛰어내릴 것인가, 아니면 스티브 록조처럼 권력의 찌꺼기를 탐하는 자가 될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윌라처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끝없는 싸움의 대열에 합류할 것인가?

역사는 우리가 뻗어 내리는 그 선으로 이 순간에도 새로 쓰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소설을 읽고 시대를 반영한 영화를 보아야 하는 이유다. 기억은 힘이 세고 기록은 죽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바인랜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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