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한 사랑의 심연, 작별하지 않는 마음의 고고학
지극한 사랑의 심연, 작별하지 않는 마음의 고고학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문장들은 눈(雪)을 닮았다. 그것은 세상의 통곡을 일순간에 잠재우려는 고요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다가도, 살갗에 닿는 순간 뼈를 깎는 냉기로 변해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든다.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거대한 이름표를 잠시 떼어놓고 다시 펼쳐 든 <작별하지 않는다>, 누구에겐들 간단히 읽을 소설이 아닐 것이다. 기억의 풍화에 홀로 맞서는 고독한 보고서이자, 죽은 자들을 향해 바치는 가장 처절하고도 지극한 연서(戀書)였다. 작가 스스로가 “가장 지극하게 사랑하며 쓴 작품”이라 고백했던 그 진심이 문장마다 맺힌 냉기와 핏방울 같은 눈의 온기로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소설은 제주 4·3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거대한 공동묘지를 향해 걷는다. 그러나 그 보폭은 요란한 구호나 선언의 자국이 아닌, 잊힌 이름들의 곁을 고요히 더듬어 나간다. 대신 손가락 끝이 잘려 나가는 개인적인 통증, 폭설 속에서 길을 잃는 고립감, 그리고 죽은 새의 깃털 위에 내리는 눈송이 같은 미세한 감각들을 통해 역사를 복원한다. 제대로 들여다볼수록 더 선명해지는 고통의 윤곽 앞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눈을 돌리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소설은 돌연한 생기를 머금고 번쩍이는 눈동자를 피하지 못한 채 다음 말을 기다리도록 만들었다. 그것은 증언의 힘이며, 아직 채 마무리되지 않은 죽음들에 대한 예의였다.
소설을 읽는 내내 우리는 하얀 눈의 장막 뒤에 숨겨진 붉은 피의 역사를 응시해야만 했다. 주인공 경하가 마주하는 고통은 타인의 것으로, 동시에 우리의 몸속으로 삼투되는 전이된 감각이었다. 작가 한강은 이 작품에서 시간의 선형성을 무너뜨린다. 칠십 년 전 제주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얼굴을 덮었던 그 눈송이와, 지금 서울의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는 서른 살 청년의 뺨에 닿는 빗줄기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섯 살의 내가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던 순간과 학살의 현장에서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던 순간은 하나의 우주적 시간 속에 흐르고 있었다.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p.84
지금 우리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때 그 학살의 현장을 덮었던 결정체들이 아니라는 법이 없다는 자각, 이러한 ‘기억의 편재성’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를 박제된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의 통증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따뜻한 아기의 얼굴 위에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묘사는, 생명이 응고되어 버린 그 참혹한 현장을 어떤 직설적인 고발보다 더 아프게 각인시킨다. 맨 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것, 그것은 죽음이 단순히 생명의 정지가 아니라 온기가 박탈되는 과정임을 서늘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소설 속 세 여성—경하, 인선, 그리고 어머니 강정심—이 공유하는 핵심 감각은 ‘작별하지 않음’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선택하는 망각이라는 편리한 탈출구를 거부하는 행위다. 자료가 쌓여가며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악행에 더 이상 놀라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끼는 상태, 그것은 지옥을 목격한 자의 필연적인 황폐함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황폐한 환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갱도 속에 쌓인 수천의 몸 중 하나이면서 동시에 불 켜진 집들의 대문을 두드리는 청년으로 존재하는 이 분열된 상태야말로 4·3의 진실에 가닿으려는 자의 숙명처럼 느껴졌다.
책상 밑에서 무릎을 구부리는 평범한 일상이 활주로 아래 구덩이 속의 공포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이 기묘한 감각은, 지옥 같은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져야 할 윤리적 중압감을 상징한다. 우리는 흔히 과거를 '지나간 것'으로 치부하며 작별을 고하지만, 인선의 어머니는 수십 년간 감옥과 학살터를 전전하며 오빠의 흔적을 찾는다. 그녀에게 과거는 작별할 수 없는 현재이며, 뼈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 속에서도 놓지 말아야 할 손이다. 이처럼 “작별하지 않는다”의 선언은 고통을 끝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이자, 사랑의 다른 이름으로 다가왔다.
책상 밑에서 내가 무릎을 구부리는 동시에 활주로 아래 구덩이 속에도 있었던 게. p.322
경하에게 꿈은 수치스러운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모든 걸 폭로해 버리기 때문이다.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공포와 슬픔, 그리고 인간으로서 느끼는 근원적인 죄책감이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터져 나온다. 보이지 않는 눈송이들이 유리 사이에 떠 있는 것 같고, 결속한 가지들 사이로 우리가 삼킨 말들이 밀봉되고 있는 것 같은 적막한 순간들 속에서 소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까.
또한, 소설 속 인선의 앵무새 ‘아마’는 연약한 생명을 상징한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울다가도 빛이 없으면 즉시 잠들어 버리는 존재. 무슨 전극에 연결된 것처럼 빛에 반응하는 이 작은 생명은, 기억의 빛이 사라지면 곧바로 죽음과 같은 잠에 빠져드는 인간의 영혼과 닮았다.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우리의 감각이 끊기는 순간,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의의를 상실한다. 한강은 이 연약한 존재들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그 연결망이 얼마나 쉽게 끊어질 수 있는지를 경고하고 있었다.
■ 지극히 개인적인 공명: 작별이라는 이름의 흔들림
책을 읽으며 가장 오래 머물렀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그는 나의 혈육도 지인도 아니다. 잠시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작별을 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가?” 이 질문은 소설 속 경하의 것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책장을 넘기던 우리의 것이기도 했다. 한강은 개인의 기억을 보편의 슬픔으로 확장함으로써,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동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느끼게 했다. 이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고통을 전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고통의 중심부로 우리를 밀어 넣는 데 있었다.
어쩌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통렬한 애도일지도 모른다. 눈보라 속을 걷는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고, 잘린 손가락의 통증을 상상하며, 칠십 년 전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함께 맞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는 의식을 치르는 기분에 젖어 든다. 빛이 없으면 즉시 잠들어 버리는 연약한 새처럼, 우리 역시 타인의 고통이라는 ‘빛’에 반응할 때만 비로소 깨어 있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아프게 깨닫는다.
자료가 쌓여가며 윤곽이 선명해지던 어느 시점부터 스스로가 변형되는 걸 느꼈어.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p.316
결국 《작별하지 않는다》는 거대한 폭설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질 뻔한 존재들을 위해 집요하게 쌓아 올린 눈사람과 같다. 이렇게 많은 눈이 조금도 쌓이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 눈이 닿았던 피부의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슬픔이 어떻게 지극한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얼어붙은 역사의 살얼음을 깨고 뜨거운 피를 돌게 하는지를 가장 시적인 언어로 웅변하고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지옥 같은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가? 그리고 곧 깨달았다. 우리가 작별하지 않기로 마음먹는 순간, 죽은 자들은 우리의 숨결 속에서 다시 살아나며, 그들의 고통은 비로소 안식을 찾기 시작한다는 것을. 이 책은 제주도의 붉은 흙 아래 묻힌 이들에게 보내는 가장 길고 아름다운 답신이자, 지금도 어딘가에서 홀로 추위에 떨고 있을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켜 들어야 할 마지막 등불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눈보라 속에 서 있다. 하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다. 작별하지 않는 마음들이 모여 서로의 뺨에 낀 살얼음을 녹여줄 때, 그 지독한 겨울은 비로소 봄으로 가는 길을 내어줄 것이다.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 p.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