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

침묵의 눈 속에 피어난 사소하고 위대한 빛

by 가다은


침묵의 눈 속에 피어난 사소하고 위대한 빛



겨울 초입이면 우리는 습관처럼 크리스마스의 낭만을 기대한다. 화려한 조명, 캐럴,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과 나누는 선물들. 하지만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찬란한 빛 뒤편에 가려진 서늘한 그림자를 직시하도록 만든다. 이 짧고 밀도 높은 소설은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뉴로스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고뇌와 선택을 통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묻는다.


그해 12월은 까마귀의 달이었다. 그런 까마귀 떼는 처음이었다. 시 외곽에서 새카맣게 무리를 짓다가, 시내로 들어와서는 길 위에서 걸어 다니고 고개를 갸웃하고 어디든 마음에 드는 전망 좋은 자리에 뻔뻔하게 홰를 틀고 있다가 죽은 짐승에 달려들어 뜯어먹고 길에 뭐든 먹을 만해 보이는 게 있으면 장난스레 덮치고 밤이 되면 수녀원 주위에 있는 크고 오래된 나무에 자리를 잡았다. p-47


1. 성실한 소시민, 빌 펄롱의 권태로운 평화


주인공 빌 펄롱은 석탄과 장작을 파는 상인이다. 그는 매일 새벽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일어나 검댕을 뒤집어쓰며 일하고, 밤늦게 돌아와 다섯 딸과 아내 아일린의 얼굴을 보며 안도한다. 그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였지만, 어머니를 고용했던 미시즈 윌슨의 자비고 기본 교육까지 받고 번듯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성실함으로 일궈낸 그 평온한 일상의 이면에는,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하는 상실감과 언제든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소시민적 불안감이 박혀 있었다.


펄롱의 삶은 겉보기에 평온하다. 그러나 그 평온함의 밑바닥에는 알 수 없는 공허함과 피로가 흐른다.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라는 질문이 그를 괴롭힌다. 끝없는 걱정, 반복되는 노동,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그는 마흔의 문턱에서 자기 삶이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쳇바퀴를 돌고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자문한다. 이 지점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에 닿아 있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성실함을 담보로 하지만, 그 성실함이 때로는 주변의 고통에 눈을 감는 핑계가 되기도 한다.



2. 거대한 악과 마주한 찰나의 순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 펄롱은 충격적인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수녀원이 운영하는 세탁소(실제 역사 속 ‘막달레나 세탁소’) 창고에 갇혀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 것이다. 소녀는 오물 속에 방치되어 있었고, 펄롱에게 자신을 강가로 데려다 달라고, 차라리 물에 빠져 죽는 게 낫겠다고 고백한다. 소녀의 눈망울은 펄롱의 양심을 사정없이 흔들어 깨웠다.


여기서 소설은 우리에게 거대한 도덕적 딜레마를 던진다. 수녀원은 마을에서 가장 위풍당당한 건물이며, 지역 사회의 교육과 경제를 쥐고 흔드는 권력의 정점이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아내 아일린조차 “우리 애들이 아니지 않으냐”, “수녀원은 돈을 제때 주는 좋은 거래처다”라며 펄롱의 입을 막으려 한다. 이는 악(惡)이 어떻게 평범한 사람들의 침묵과 ‘가족 이기주의’를 먹고 자라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3. ‘사소한 것들’의 역설: 우리를 인간이 되게 하는 힘


제목인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중의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수녀원과 마을 공동체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때 쓰는 ‘사소한 일’이라는 변명, 그리고 펄롱을 구원했던 미시즈 윌슨의 ‘사소한 친절’이 그것이다. 결국 작가는 누군가의 파멸을 외면하는 일도 사소할 수 있지만, 절망에서 건져 올리는 것 또한 계산되지 않은 사소한 다정함에서 시작되는 진실임을, 펄롱의 선택을 통해 증명한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p-120



펄롱은 갈등한다. 수녀원장에게 저항하는 순간, 자신의 사업은 망가질 것이고 다섯 딸의 교육(세인트마거릿, 수녀원이 운영하는 학교) 또한 불투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어린 시절, 그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던 보온 물주머니, 맞춤법을 가르쳐준 낡은 책, 구두끈을 매주던 네드의 손길. 그 ‘사소한 것들’이 없었다면 자신도, 자신의 어머니도 차가운 창고에 갇힌 소녀와 다를 바 없었을 것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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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선자에서 인간으로: 최악의 순간을 넘어서는 용기


펄롱은 소녀를 두고 돌아온 날 밤, 미사에 참석하지만 영성체를 받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를 ‘위선자’라고 느낀다. 텅 빈 식탁에 앉아 떨고 있는 아이를 두고 나와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설의 핵심 메시지가 드러난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이 최악의 일이다.


펄롱이 거기에 있는 동안 그 아이가 받은 취급을 보고만 있었고 그 애의 아기에 관해 묻지도 않았고―그 아이가 부탁한 단 한 가지 일인데―수녀원장이 준 돈을 받았고 텅 빈 식탁에 앉은 아이를 작은 카디건 아래에서 젖이 새서 블라우스에 얼룩이 지는 채로 내버려두고 나와 위선자처럼 미사를 보러 갔다는 사실이었다. p-99



많은 이들이 선택의 결과로 닥칠 고난을 ‘최악’이라고 부르지만, 키건은 진정한 최악은 ‘자신의 양심을 저버린 채 평생을 비겁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펄롱은 크리스마스 이브, 가장 화려한 축제의 시간에 가장 어두운 수녀원 창고로 다시 향한다. 그는 소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다. 맨발의 소녀와 함께 마을 길을 걷는 그의 모습은 수치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펄롱은 생애 처음으로 몸이 가볍고 당당한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결한 기쁨이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많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p-120

5. 아일랜드의 비극, 그리고 보편적 인류애


이 소설은 ‘막달레나 세탁소’라는 아일랜드 현대사의 어두운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에서 수녀회는 성스러운 이름에 숨어 수만 명의 미혼모와 여성들을 학대하면서 노동력을 착취했다. 사회 전체가 이 거대한 부조리에 가담하거나 침묵했다.


하지만 클레어 키건은 이 실화를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보편적인 인간의 윤리 문제로 격상시킨다. 펄롱이 건너는 ‘강물’은 물리적인 장벽이자, 단절된 타인과의 관계를 잇는 통로이기도 하다. 강물이 제 갈 길을 알고 바다로 흐르듯, 펄롱은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야 할 길을 선택한다.



6. 당신의 크리스마스는 안녕한가


소설은 펄롱이 소녀를 데리고 자기 집 문 앞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후의 이야기는 독자의 몫이다. 펄롱의 가정은 파탄이 날 수도 있고, 마을에서 매장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그 비극적인 가능성보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고 있다”라는 사실에 집중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우리 역시 펄롱이 결심하기 이전처럼 “내 일 아니니까”, “먹고살기 바쁘니까”라는 핑계로 주변의 사소한 고통을 못 본 척하고 있지 않은가? 클레어 키건은 아주 얇은 두께의 소설로 우리의 단단한 방어기제를 허물어뜨린다. 작가는 묻는다. 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거대한 이데올로기인가, 아니면 일상의 사소한 다정함인가. 펄롱은 후자를 택한다. 그는 자신을 지탱해 온 그 사소한 온기를 소녀에게 되돌려 주기로 결심한다.


120페이지에 불과한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사소하다고 말할 수 없는 책이다. 소설은 침묵이 미덕이 된 시대에, 비겁한 평화보다는 고통스러운 정의를 택한 한 남자의 뒷모습을 통해 우리 안의 ‘가장 좋은 부분’을 흔들어 깨운다. 그리하여 읽는 이에게 감동을 넘어선 실천적 용기를 요구한다. 아직 읽지 않은 이들이라면, 빌 펄롱의 무겁고도 가벼운 발걸음을 함께 따라가 보길 권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당신은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크리스마스의 불빛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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