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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다은은 Nov 07. 2024

시대의 파열, 경계를 허문 예술가

이상과 백남준이 열어간 무한의 세계


이상(1910~1937)과 백남준(1932~2006), 문학과 미디어아트라는 서로 다른 영역에서 상식의 경계를 초월하는 언어로 시대를 흔들었다. 이상은 그의 시적 언어와 산문에서, 분해되고 뒤틀린 인물과 세계를 그리며 일제 강점기의 억압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백남준은 미디어아트를 구현하며 세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며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이상은 내면의 심리를 해부하듯 그의 글 속에서 심연을 들춰내었고, 백남준은 화면 속에서 무한히 쏟아지는 이미지를 통해 미디어라는 매체가 인간 본질을 가릴 수 있음을 풍자했다. 이들의 예술은 시대와 사회에 던지는 질문의 연속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삶과 문화적 인식을 확장하는 힘으로 남아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대는 각각 근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격변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상은 일제 강점기라는 억압적 환경 속에서 ‘날개’와 같은 작품을 통해 억눌린 삶을 비판하고, 인간 내면의 심리적 혼란과 불안을 탁월하게 표현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과 모든 존재가 어딘가 불완전하고 왜곡되었다고 보았고 이를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냈다.


▲ <날개> 2001년 출간 © 문학과지성사


이상은 기존 문학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언어를 사용해 독자에게 말을 걸었고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이어갔다. 그의 문학은 전통적 서사와 시적 형식에서 탈피해, 분열된 세계와 자아의 상실을 그리는 파격으로 당시 문단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상이 그린 인물과 세계는 독자가 당시 억압된 현실을 목격하게 했다. 


한편, 백남준이 활동했던 20세기 중후반은 산업화와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며 대중문화와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기였다. 이 배경 속에서 백남준은 전통적 예술 소재와 방식을 넘어 텔레비전과 비디오 같은 미디어를 예술 도구로 활용하여 예술과 기술의 접점을 실험했다. 그의 작품인 ‘다다익선’은 수많은 TV 화면이 쌓인 구조물로, 하나의 조각이 아닌 시각적 충격을 주는 설치 예술이다. 


수십 대의 TV가 각기 다른 영상을 송출하며 끊임없이 정보를 주입하는 장면은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진실이 왜곡되고 인간의 정체성이 가려지는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발한다. 백남준은 예술이 미디어에 의해 재정의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이는 현대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융합을 선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상은 인간 심리를 파고드는 실험적 글쓰기로 내면의 허무와 외로움을 집요하게 밀착했다. 그의 대표작 날개에서 주인공은 몽환적이고 신경질적인 독백을 통해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방황한다. 그 혼돈은 일제 강점기의 억압된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도 닿아 있다. 이상은 소설 형식을 깨고 의식의 흐름과 불연속적 서사를 활용해 전통 문학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그의 파격적 서사는 한국 문학에 지속적인 영감을 불어넣으며, 전례 없는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백남준 역시 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전통적 예술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이러한 구조물은 과도한 미디어 소비와 정보의 조작이 인간의 본질적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미디어에 의해 예술이 재정의될 수 있음을 설파했고, 이는 오늘날 디지털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촉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이상과 백남준의 작품이 현대에 미친 영향은 그들의 작품을 보고 즐기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들이 추구한 파격적 형식과 실험은 오늘날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이상이 추구한 인간 심리의 심오한 고찰과 백남준이 이루어낸 미디어와 예술의 융합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 <다다익선> MMCA 과천관에 소장중인 백남준의 작품 사진출처=오마이뉴스 © 오창환


이상이 탐구한 인간의 내면과 심리적 해체는 현대 포스트모던 문학과 영화, 시각 예술에 이어져 왔으며, 그의 독창적 언어와 서술 방식은 오늘날 젊은 예술가들에게 표현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백남준의 미디어아트는 디지털 예술,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과 같은 새로운 예술 형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디어와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통찰력은 디지털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오늘날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두 예술가의 작품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으로 남지 않고, 예술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지속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들이 보여준 예술적 무한성은 모든 예술가가 이상처럼 존재의 의미를 탐구하고, 백남준처럼 경계를 허무는 데 용기를 얻게 한다. 이는 현대 예술이 기술의 힘과 결합하여 점점 더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미래의 예술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무색해지는 초융합적 경험 속에서, 따스하고도 새롭게 피어날 것이다. 가령 우리가 입는 옷이나 생활 공간도 AR을 통해 예술가의 감성을 실시간으로 반영하며 변화할 수 있다. 기술의 힘으로 작품이 관객과 교감하는 ‘살아 있는 예술’로 진화할 것이다. 이상이 그려낸 불안의 심연과 백남준의 미디어 실험이 만나 펼쳐질 이 새로운 예술은 우리 삶 속 깊숙이 자리하여, 경계를 허물고 무한히 확장되며 일상에 예술적 온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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