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알에서 사막 찾기

지그문트 바우만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by 김세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 출간된 지 20년이 지났다. 어렸을 때 책에 나온 새로운 개념 중‘프로슈머’가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지금은 사전을 찾지 않아도 BJ나 유투버, 파워블로거 등을 보면 저절로 이해가 된다. 사회학의 힘을 깨닫게 된 것은 그때였을 것이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힘을 가진 사람. 노스트라다무스보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향한 통찰력 있는 눈일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역시 현대 사회의 단면을 여러가지 주제로 짧게 알려주는 서적이다. 이는 작가가 이탈리아의 유명한 일간신문에 2주에 한번씩 2년간 쓴 편지 형식의 칼럼 중 일부라고 한다. 따라서 1페이지부터 차례대로 읽는 것보다는 목차를 보고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입맛대로 선택하는 것이 읽기에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슬프게도 ‘우리나라만 헬이 아니구나’하는 것이다. 헬조선이 시사사전에 등록된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각종 불평등과 불행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이야기에 안도감이 들면서 동시에 하향평준화를 만족하는 것 같아서 입이 썼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 책 뿐만 아니라 근간의 서적에서 언급하는 현대의 ‘유동성’은 세계가 급변하면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들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인터넷 상의 개그나 짤방은 매일 업데이트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뒤쳐져 구석기시대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뜨겁다, 이것을 불이라고 부르자!) 개그 뿐 아니라, 각종 전자기기 같은 물리적 제품에서부터 규제, 법률 등의 시스템, 유행 등의 문화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을 ‘옳다’라고 판단하는 것에 유통기한이 생겼다는 현대사회에 대해 그는 우려하고 있다.


특히 새해마다 사람들이 ‘해피 뉴이어!’를 외치며 왜 그리도 들떠하는지에 대한 분석 또한 위트있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와 같은 지구에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회학자가 분석해내는 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개념을 이끌어내는 것이야말로 사회학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사실 대부분의 지역에서 급속한 경제 성장이 지금까지 가져온 효과라는 것은 정작 그 전체적인 부나 “평균적인”부가 급속하게 증가하는 것과 거의 똑같은 속도로 오히려 실직한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 비공식 노동자들이 그처럼 견뎌내기 힘든 궁핍함에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급속하게 증식시켰다는 점과 불가분하게 연관되어 있다.

- p189


오늘날의 세계는 이제 그 어떤 형태의 안정성도 갖고 있지 않다. 오늘날의 이 세계는 줄곧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기회를 엿보며 언제든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 p215


정말로 이 특별한 날에 뭔가 기념할 만한 것이 있는 것일까? 적어도 우리가 성취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그 어떤 것을 성취한다는 의미를 제외하고는, 곧 우리가 어떤 다른 날보다는 바로 이날에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다는 의미 말고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 같다. (중략) 결국 새해에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희망을 기념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때 우리는 수많은 희망들 중 그 어떤 다른 것들보다도 더 ‘모든 희망들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메타-희망*’을 소중히 마음속에 간직하게 된다.

- p222

(*메타-희망:지난 좌절된 희망과는 달리, 이번 희망만큼은 실현하겠다는 희망)


‘미래’란 단지 ‘어떤 것이든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것도 알려질 수 없거나 확실하게 완료될 수는 없는 그 어떤 것’에 대해 약칭해서 표현하는 용어일 뿐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는 선택자이기도 한 우리는 바로 그와 같은 미래의 일들을 생겨나게 하는 자들 이기도 하다.

- p236


매거진의 이전글독서의 권리, 수호의 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