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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r 13. 2016

니가 준 고통도 나의 일부

뮤지컬 헤드윅, 영화  Hedwig and the angry inch

뮤알못과 뮤덕 중간 어디쯤의 경계에 서있는 나에게 

헤드윅은 그 어떤 뮤지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뮤지컬을 먼저 본 후 이야기가 가진 흡입력에 매료되어 영화까지 찾아보았다. 


영화와 뮤지컬을 보며 마치 내가 헤드윅이 된 듯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사랑이 산산조각나고, 그 파편이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고, 

그럼에도 내게 남겨진 상처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같은 기분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웠다.


뮤지컬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에서는 여러 번의 콘서트에 거쳐 뉴욕 타임스퀘어 공연장에 도착하는 반면,

뮤지컬에서는 타임스퀘어 공연장에서 모든 이야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밴드인원 외에 다른 사람은 등장하지 않고, 헤드윅의 이야기로 대신한다.


영화는 영화대로, 뮤지컬은 뮤지컬대로 매력이 있다.

특히 뮤지컬에서는 영화의 이야기가 순서대로 뮤지컬에 나오는 것은 물론,

실제 우리가 헤드윅의 콘서트장에 있는 것같은 생동감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캐스팅은 두말할 것 없거니와(조승우, 조정석, 변요한, 윤도현, 정문성)


화려한 무대가 공연장으로, 다시 컨테이너로 변신하는 걸 보며 한없이 그녀의 인생이야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특히, 컨테이너에서 시작되는 헤드윅의 공연은 나도 모르게 ‘너무 예뻐’를 (물론 마음속으로)연발하게 만든다.

넘버마다 아름다운 락음악도 빼놓을 수 없이 영화와 뮤지컬을 가득 메운다. 

뮤지컬과 영화의 관람이 끝나도, ost를 찾아들으며 넘버마다 실린 이야기를 떠올리며 한동안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아래는 헤드윅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 옆에서 나고 자란 헤드윅 인생의 시작처럼 

그녀는 항상 경계에 서있는 사람이다.

그 경계를 두고 동독에서 담벼락 너머 서독의 맥도날드를 꿈꾸듯 

자신을 둘러싼 그 경계를 넘고 싶어한다. 


헤드윅의 정체성은 날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고 엄마는 아빠를 혐오하고 집에서 쫓아낸다.

아마 자신이 사랑받는 것이 왜 증오와 싸움을 일으키는 지 어린 헤드윅은 알지 못했겠지만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는지 모른다. 누군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증오의 고통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헤드윅은 항상 자신의 일부를 부정당한다.

루터는 헤드윅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남자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헤드윅은 루터와의 사랑이 영원하길 바라며, 그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도 바꾸고 신체의 일부를 잘라냈지만, 상처가 덧난듯 수술은 그의 몸에 1인치를 남긴다.


그 1인치는 분명 자신의 일부인데도, 헤드윅은 그 1인치 때문에 수없이 거부당한다.

그런 헤드윅이 어렸을 때부터 믿어왔던 ‘사랑의 기원’이란, 

자신이 어떤 누군가와 완전히 ‘하나’였을 거란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타인의 핍박으로 가위로 자르듯 하나는 둘이 되고,

다리를 잘라낸 자리에는 고래처럼 꼬리가 흉터처럼 남아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완전하게 만들어줄 그 일부를 찾고싶어한다.


그녀는 어린 토미를 만나며, 둘 만의 세상을 만들어내고

마치 토미의 자신의 일부분인 양 음악에 대해 하나씩 가르쳐 주고 그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특히 오븐에서 락음악을 들려줄 때에는, 자신의 기쁨 뿐 아니라 슬픔과 고통마저 공유할 것이라는

헤드윅의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기쁨과 달리, 슬픔과 고통은 아무에게나 공유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나와 ‘같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것들이다.


헤드윅은 토미와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음에도

결국 토미역시 헤드윅의 '일부'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헤드윅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부정당했던 것처럼

토미와 헤드윅 둘 만의 세계에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듯했던 두 사람이 

토미라는 일부가 대중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나머지 한쪽인 자신이 거부당하고 부정당하는 걸 지켜보면서, 헤드윅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세상은 그 전과 달라진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로,

토미와 헤드윅이 만난 이후로,

그리고 그들이 헤어진 이후로,

세상은 그 전과 다르다. 



새로운 세상 앞에서 헤드윅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

자신을 완성해주는 가발을, 결코 이츠학에게 씌워주지 않던 가발을 

이츠학에게 넘겨주는 헤드윅을 보며, 

상처 속에서 우리는 또 다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다보면, 어딘가에게 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나에게서 갈라진 누군가를 다시 한번 찾게 될 지 모를 일이다. 


 But I could swear by your expression

 that the pain down in your soul

 was the same as the one down in mine. 

Thats the pain,

Cuts a straight line 

down through the heart

We called it love. 


하지만 나는 너의 영혼 깊이 서려있는 슬픔이

나의 슬픔과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심장을 관통하며 지나가는 그 고통,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불렀어 


-'The origin of love'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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