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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r 28. 2016

영화, 그 더럽고 찐한 예술에 대한 회고록

영화 <헤일, 시저!>

이 영화를 보고 좋아할 관객들

1)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2) 뮤지컬 형식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3) 1950년대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

4) 조지 클루니, 스칼렛 요한슨, 틸다 스윈튼, 채팅 테이텀, 랄프 파인즈 등 배우들을 좋아하는 사람들



넷 중에 하나만 해당되도 흥미로울 영화 <헤일, 시저!>는 불행하게도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위 체크리스트에 한개도 체크하지 못한 관객들에겐 그야말로 '황당한 영화' 가 될 수 있다. 평론가들에게 별 다섯개에 가까운 평점을 받아도 아직 관객이 몇만 밖에 못들은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1950년대 할리우드가 번성하던 시기 영화 제작사 '캐피톨'에서 일하는 프로듀서 에디의 고민인 척 하지만 사실은 영화라는 문화산업의 명과 암에 대한 회고록 같은 영화다. 영화 감독과 프로듀서의 차이를 잘 알지 못했다면 이 영화에서 그 둘이 얼마나 다른 일을 하는지 에디를 통해 똑똑히 보여준다.


영화산업은 지극히 '금전'친화적인 분야이다. 돈이 없으면 카메라를 여러대 굴릴수도, 그 카메라를 움직여줄 촬영감독도, 유명하고 멋진 배우도 쓸 수 없다. 오직 대형 자본만이 큰 돈을 써서 '더 큰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노동의 수준은 모두 비슷한데, 왜 배우는 몇억을 가져가고 막내스탭은 한달 최저생계비도 받지 못하는가. 영화산업은 아무도 '왜' 그런지에 의문을 갖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배우는 배우니까, 감독은 감독이니까 많이 벌 수 밖에 없다고 단정짓는다. 마치 원래 누군가는 막태 스탭으로, 누군가는 탑배우로 정해져 태어난 것처럼.


(아래는 영화의 스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영화가 완성되면 배우들은 시사회에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영화를 감상하지만, <헤일, 시저!>가 보여주는 대로 영화는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흥행을 위해 프로듀서는 배우들의 온갖 염문이나 스캔들이 대서특필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고, 배우의 발연기를 최대한 멋있게 보여주도록 감독을 설득해야하며, 심지어 배우가 납치되는 경우 돈까지 준비해야 한다.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뒤치닥거리의 반복 중, 에디는 다른 곳에서 스카웃을 제안받고 고민한다. 그 곳은 배우들 스캔들 관리처럼 거추장스러운 곳이 없는 안정적이면서도 평화로운, 게다가 유망한 산업군이다. 


모두가 똑같이 일한만큼 돈을 받는 공산주의는 어쩌면 영화산업과 대척점에 있는 이념인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 발을 담구었던 사람들 중 몇은 영화산업에서 가졌던 자신의 직위와 상관없이 평등한 세계를 동경하게 된다. 결국 그 중 누군가는 해변가에 위치한 자신의 저택도 포기한 채 공산주의 이념으로 향해가지만, 누군가는 정신차리라며 맞은 뺨 한대에 다시 순응하여 영화에 돌아온다. 아마 영화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그들의 영화 인생 중 몇번이나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 고민할 것이다.  


에디 역시 고뇌 끝에 결국 '쉽지 않지만 옳은 것 같은 일'을 계속 하기 위해 영화판에 남기로 선택한다. 그러니까 코엔 형제가 '영화' 자체에 가지고 있는 감정이란, 한국인 고유의 정서라고 일컬어지는 한국인의 '정'과 비슷한, 내가 욕할 수 있지만, 남이 욕하도록 둘 수 없는 애증 같은 그 무엇이다. 



그래, 아무리 영화 뒤편에 숨어있는 그림자가 깨끗하지 못하여도, 물에 비친 달을 보고 비웃듯 영화를 보며 '저건 가짜야!'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에 비친 달을 보며 노래하는 사람이 있는 한, 영화는 우리의 눈 앞에서 기꺼이 탭댄스와 총싸움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보여주며 우리의 삶 한페이지에 아름답고 진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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