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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r 13. 2016

번역의 쌩얼을 만나고 싶을 때,

권남희 <번역에 살고 죽고>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걱정되는 에세이를 만났다.

바로 무라카미 에세이의 대부분을 번역한 일본어 번역가 권남희의 에세이다.

이 분이 없었다면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대한 나의 애정은 없었을 지 모른다.

번역가의 생활패턴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고나니 비단 번역이라는 분야 뿐 아니라

번역을 하게 된 이후의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본 기분이다.


자신이 업으로 하는 직업에 대해 책을 낼 때 멋있게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책에서 번역의 민낯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첫번역료, 출판사가 결제를 해주지 않을 때 해야할 일, 장르 소설을 번역하면서 생겼던 괴로움,

번역을 하면 벌 수 있는 수입과 그 때 일의 강도까지 명확히 알려주는 작가의 솔직함이 부러우면서도 알려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일이 없을 때는 무조건 읽고, 쓰고, 공부하기. 아무 생각 없이 읽은 책들, 긁적거린 글들이 쌓여서 분명 다음 번역을 반짝거리게 할 것이다. 안다. 조급함과 초조함에 여유롭게 활자를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걸. 그렇지만 그것마저 하지 않으면 드문드문 들어오던 일마저 떨어질지 모른다. 읽고 쓰는 와중에 한 번씩 같이 일했던 편집자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 자신의 존재를 일깨우는 것도 괜찮다. 그렇다고 일이 없어 죽겠어요, 하고 징징 짜는 메일을 보내면 안된다. 밝고 맑고 에너지 넘치는 긍정적인 글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준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개중에는 답장을 안 해주는 편집자들도 있겠지만(아마도 절반 정도는)상처받지 말고 바빠서 그러려니 할 것.
-p136


물론 이런 모습을 당당하게 알려줄 수 있는 20여년이 된 그녀의 번역 인생으로 오른 권위있는 번역자로서의 여유도 함께 느껴진다.  

한 우물을 10년파면 그 분야의 장인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기준에서, 이미 그녀는 우물을 두개쯤 파낸 사람이다.

번역에 대한 일들 외에도  일본에서 살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딸과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보통 사람으로서 자신의 명암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글을 보며,

번역자로 아니라 글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더없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차를 타러 큰길까지 걸어 나오면서 몇 번이나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스톱!'을 외칠까. 세상에. 내가 이혼을 하다니.... 두려웠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돌아가서 서류 받아올까? 아니야,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어. 그냥 가던 길 계속 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무서운 날이었다. 너무 엄청난 짓을 저질러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사관에서 더 멀어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될까 봐, 내리는 눈보다 더 느리게 걸음을 떼면서 갈등하고 또 갈등했다.
-p83


그러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번역 때문에 죽는게 아니라 사는게 먼저인 그녀이다.

이미 번역은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받아들이고 희노애락에 몸을 맡겨 살고 있는 것이다.

번역가 권남희의 번역서만큼이나, 작가 권남희로서 다음 에세이가 더욱 기다려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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