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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Apr 08. 2016

호모 사피엔스의 잔혹성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사피엔스를 읽으니 <총,균,쇠>가 생각났다. <총,균,쇠>는 너무 힘든책이었다. 한줄 한줄에 정보가 들어차 있어서 글을 읽는데도 뇌속으로 욱여넣느라 그렇게 힘이들 수가 없었다. 물론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사피엔스>에 정보다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가 가진 장점 중에 하나는 그에겐 위트가 있다는 점이다.


역사학 교수들이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에 대해 대화할 것 같은가? 핵물리학자들이 휴식시간에 쿼크에 대한 과학적 대화를 나눌 것 같은가? 물론 그럴 때도 있겠지만 대개는 자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것을 적발한 교수, 학과장과 학장 사이의 불화, 동료 중 하나가 연구기금으로 렉서스 자동차를 샀다는 루머 등을 소재로 한 뒷담화를 떠든다. -p48

현대의 사업가와 법률가들은 사실상 강력한 마법사들이다. 이들과 원시 샤먼 간에 주된 차이는 현대 법률가들이 하는 이야기가 훨씬 더 이상하다는 점뿐이다. -p54

무화과가 잔뜩 열린 나무를 발견한 석기시대 여성을 떠올려보자. 그녀가 할 수 있는 가장 타당한 행동은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는 것이다. (중략) 오늘날 우리는 고층아파트에 살며 냉장고에 먹을 것이 가득하지만, 우리의 DNA는 여전히 아프리카 초원 위를 누빈다. 그래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 통을 발견하면 한 숟가락 푸욱 떠서 먹고 점보 콜라로 입가심까지 하는 것이다. -p71


유발 하라리의 주장은 역사의 '야사'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그가 말한 충격적 주장들에는 일반 사람들이 들으면 '버럭'화를 낼만큼 우리가 믿고있던 바와는 다른 이야기이다. 유발 하라리가 그런 '야사'를 말할 수 있는 데에 나는 그의 생물학적 지위와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가 미국 동부에서 중산층 자녀로 태어난 노란 머리와 파란 눈의 백인이라면 어쩌면 우리는 이 책을 읽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주장이 더욱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우리가 지금까지 절대적인 지식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은 대부분 '백인'의 눈으로 바라본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특이한 주장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1)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죽여서 살아남은 것이다.
2) 농업은 인간의 삶을 비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제했다.
3) 보이지 않고 실체가 없는 인간의 '믿음'이 그들을 집단으로 생활할 수 있게했다.


원시의 사피엔스라고 해서 자신들과 전혀 다른 인간 종에게 이보다 더 관용적이었을까?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마마주친 결과는 틀림없이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심각한 인종청소였을 것이다. -p39

대형 디프로토돈은 150만년도 더 전에 호주에 등장해 열 차례가 넘는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 그런데 왜 45,000년 전에 사라졌을까? 물론 디프로토돈이 이 시기에 사라진 유일한 대형동물이었다면 이는 우연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프로토돈과 함께 호주 대형동물군의 90퍼센트 이상이 사라졌다. 증거는 정황에 불과하지만, 사피엔스가 마침 이들 동물이 추위로 죽어가고 있던 시기에 호주에 도착한 것뿐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p107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새롭게 생겨났다.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물품을 배달하거나 조립라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p83(이런 도발은 진정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 하나의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은 얼마나 충격적인가. 우리는 유인원에서 시작해서 단계를 거칠수록 직립보행할 수 있게된 호모 사피엔스의 그림을 보며, 그가 궁극의 '발전' 단계를 거친 완성형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호모 사피엔스는 타고난 '공격성'과 '집단성'으로 이렇게 키보드를 이용해서 리뷰까지 올릴 수 있게된 것이다. 사실 수십억년 된 지구에서 겨우 몇백만년 살아온 생명체들이 마치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인간의 만용이었는데, 그 사실을 누군가 짚어주기 전까지는 의식하기조차 어려운 것이다. 인간 자체도 완성형이 아니니, 우리가 만들어낸 여러가지 체계의 불완전성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사람을 귀족과 평민으로 구분하는 것이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상 또한 신화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인간이 서로 평등하다는 것인가? 인간의 상상력을 벗어난 어딘가에 우리가 진정으로 평등한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가 있단 말인가?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평등한가? -p163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166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금지할 필요가 없다. -p216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의 농부와 인도네시아의 노동자가 집에 가져오는 식량은 5백년 전보다 더 적다. (중략) 인류와 세계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을지라도 기아와 궁핍 속에서 쌀아가는 개인은 더욱 많아졌는지도 모른다. -p471


인간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발전했는지 그러니까 지구에서 얼마나 위대한 생명체인지를 찬양하는 글에만 노출되다가, 발전이라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좋은 것인지, 그 전에 우리는 정말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를 되짚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었다. 토론 좋아하는 사람과 한권씩 나눠 읽으면, 죽을때까지 <사피엔스> 안에 넘쳐나는 논쟁에 대해 토론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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