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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Apr 11. 2016

당신이 모르는 그 사람

<오베라는 남자> <욱씨남정기>



솔직히 말하면, 오베 같은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나랑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보통 친절한 사람을 좋아하니까. 오베의 말투는 어떻냐하면 대략 아래와 같다. 


"젠장, 팔이 없는 놈이 백내장에 걸렸어도 너보다는 후진을 잘 할거다."
오베가 차에 타면서 중얼거렸다. 


그러나 <오베라는 남자>를 읽으며, 나는 친절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그가 친절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을 싫어할 자격이 있는가?


오베의 모습을 보며, <욱씨남정기>의 욱다정씨가 자꾸만 오버랩되었다. 그녀는 프로페셔널하고 아름답지만, 그녀가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시니컬하게 얘기할 때면, 그것이 그녀의 성격인 것을 알면서도 타인인 내가 '헉'스러울 때가 있다. 

그러나 까칠한 그들에게도 삶의 모토는 있다. 그들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오베는 주차금지구역에 주차하는 것을 너무나 싫어한다(심지어 본인이 크게 주차금지라고 써놨음에도 불구하고!). 욱다정씨는 다른 이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동에 옮긴다(그러다 보니, 결혼도 이혼도 세 번 경험한다).

그들은 결코 타인을 불행하게 만들기 위해 까칠하거나 '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다.


오베와 욱다정이 원래부터 까칠한 성격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고 때로는 더 큰 상처를 받으며 성장한다. 그들의 까칠함은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흉터인 것이다. 그리고 까칠함은 때론 무기가 되고, 때론 자신에 대한 편견이 되어 더 큰 상처로 돌아오지만, 그들은 이제 남들의 생각이 자신의 삶에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는 자기가 주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그것들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서 그랬으리라. 주택은 계산할 수 있었고 종이에 그릴 수 있었다. 방수 처리를 해놓으면 물이 새지 않았고, 튼튼하게 지어놓으면 무너지지 않았다. 주택은 공정했다. 공을 들인 만큼 값어치를 했다. 안타깝게도, 사람보다 나았다. 



책과 드라마를 보고난 후 이런 '까칠한 성격'이 좋아졌냐고 물으면 선뜻 그렇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아직은 부드러운 말이 가지고 있는 힘을 믿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같은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까칠한 오베도, 욱다정도 모두 그들의 곁에는 그들을 그 자체로 온전히 이해하고 곁에 있어주는 사람들(오베 옆 집에 새로 이사오는 한 가족과, 욱다정 옆 집에 남정기씨의 가족-생각해보니 두 케이스 모두 이웃사촌이다!-)이 있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시간이 지나며 둘의 진정성은 더욱 빛난다. 


또 한가지 중요한 점. 오베와 욱다정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들은 점점 자신이 감춰왔던 매력을 몰래 보여준다.  까칠한 사람들이 한번 마음을 먹으면, 마치 세상을 변화시킬 것처럼 깊고 진한 애정을 내어주는 듯하다. 그것도 아주 자기만의 방식대로


40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소냐는 읽기와 쓰기를 배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수백 명의 학생들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혔다. 같은 기간 동안 그녀는 오베가 셰익스피어 희곡을 한 편이라도 읽도록 하는 데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택 단지로 이사하자마자 그는 몇 주 동안 내내 저녁마다 헛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그가 작업을 마쳤을 때, 그녀가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책장들이 거실에 놓였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에게 편견을 갖고 다가가지 않은 것은 엄연한 나의 손해일 지 모른다.


사람에 대해 호불호를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당연함 속에 자신이 가진 편견마저 당연한 것이라 여기면 안될 것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이기 때문에.

그러니, 당신이 오베와 욱다정이라는 사람을  '자동차를 사브(SAAB)를 타지 않는다고 자신의 절친과 절교한 남자'와 '세번 결혼하고 세번 이혼한 여자'라고 마음대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그건 결코 인생의 낭비가 아닌 것이다.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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