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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Apr 17. 2016

죽음 이후의 사랑

줄리언 반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모든 사랑 이야기는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아니었대도, 결국 그렇게 된다. 


책이나 영화에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이야기는 대체로 죽음으로 인해 하나의 사랑이 ‘끝나고’ 그 자리에 사랑 대신 그리움이 빈자리를 채운다. 그 그리움은 서서히 줄어들 것처럼, 언젠가는 사라질 것처럼 은은하기만 하다. 그러나, 줄리언 반스는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를 통해 고백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은 결코 연착륙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가 아내와 사별한 지 5년 만에 써낸 글이다. 그는 책에서 열기구에 대한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로 부인과의 이별을 먼 곳에서부터 이야기한다. 진실해서 무거운 고백일수록 에둘러 말하는 우리처럼, 작가가 자신의 슬픔을 이야기하는 데에는 그만한 페이지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부인의 죽음 이후로 자신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절절하게 이야기한다. 아마, 타인에게 대화로는 할 수 없었던 억눌린 감정을 글을 통해 터트리는 것처럼 그의 이야기는 비참하고 비극적이다. 그래서 페이지 한 장을 넘기는 것이 어려울 만큼 꾹꾹 눌러가며 읽고, 두어 번쯤 다시 읽어야 했다. 



진단이 내려진 후 죽음이 찾아오기까지는 37일이 걸렸다. (중략) 거의 매일 밤 병원을 나서면, 그냥 하루 일과를 끝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사람들을 내가 분한 마음으로 노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들은 어쩌면 저렇게 게으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자기들의 무심한 옆얼굴을 여보란 듯 보여주고 있단 말인가. 세상이 이제 이렇게 변하려는 참인데. 


모든 부부, 심지어 매우 보헤미안적인 스타일의 부부들도 함께 살면서 패턴을 쌓아 올린다. 그리고 이 패턴들을 1년을 주기로 돌아간다. 이제 비탄의 제1년은 익숙했던 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쌓아가는 한 해이다. 대소사에 깔리다시피 했던 것과는 반대로 어떤 행사도 없는 상태가 된다. 크리스마스, 당신의 생일, 아내의 생일, 첫 만남의 기념일, 결혼기념일이 그렇다. 그리고 그런 날들 위로 새로운 기념일들이 뒤덮인다. 공포가 시작된 날, 아내가 처음으로 쓰러진 날, 아내가 병원에 간 날, 아내가 퇴원한 날, 아내가 죽은 날, 아내를 묻은 날. 


그러나, 그가 E.M 포스터의 언어를 빌려 말했듯, 아무리 이 책을 읽어도 나는 그의 슬픔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적이 없는 지금은 더욱.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 죽는다 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나의 새로운 슬픔이지, 어떤 슬픔과 닮은 것은 아니다.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  EM포스터


그가 왜 열기구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는지는 책의 마지막을 향할 때쯤에야 겨우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그는 사랑을 통해 하늘로 떠오른 것 같은 감정을 경험했고, 부인의 죽음을 통해 비상하던 하늘에서 그야말로 고꾸라진 것이다. 새처럼 날개가 있어 떨어질 때조차 고개 한번 들어보지 못하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책을 읽고 나니, 사별한 이들의 위로는 한층 더 어려워지기만 한다. 그들의 슬픔이 나의 어떤 위로와 존재로도 힘이 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떨어질 줄 알면서도 다시 열기구에 몸을 싣고 하늘을 향하는 수많은 사람처럼, 우리는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를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보라. 

그러면 세상은 변한다. 

사람들이 그 순간을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럼에도 세상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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