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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Apr 24. 2016

불가분의 몸과 뇌

영화 <셰임>

이 영화를 시각적으로만 논한다면 야하고 선정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올누드를 한 남자와 여자가 화면 전체에 걸쳐 돌아다니며 90분 남짓한 상영시간 동안 대부분은 섹스 이야기니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면 재밌거나 흥미진진해지는 것이 아니라 허무하면서도 슬픈 감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참 이상도 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포스터의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주인공 브랜든은 마치 일상처럼 반복적이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섹스를 반복한다.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너무 사랑해서 섹스를 하게 되고 섹스를 향한(?) 애정의 과정이 길게 그려진다. 어쩔땐 섹스 장면은 생략되거나 비유적으로 끝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다르다. 브랜든에게 섹스는 그저 과정이고 수단이다. 그는 마치 허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섹스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독의 원인은 있을 지언정 목표는 없는 것처럼. 오히려 진심으로 좋아하고싶은 사람과 잘되지 않는 섹스의 원인에 대해 영화는 가타부타 설명을 덧대지도 않는다. 


'전 연인에게 너무 깊은 상처를 받아서'라는 이유 등으로 설명을 했다가는 영화가 구차하고 상투적인, 그야말로 야한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다른 이야기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섹스는 그저 현재진행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는 섹스로 무언가를 얻어낼 수 없다. 가끔은 섹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후에 따라오는 것은 또다른 섹스이다. 


뇌는 몸을 속일 수 없기 때문에 브랜든이 슬픈 눈을 하고 아름답고 행복한 섹스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의 뇌는 오히려 섹스의 만족스러운 면 뒤에 숨겨진 허무함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그 안으로 깊숙히 파고든다.   

어느 날 세상에 '툭'하고 던져진 듯한 브랜든의 모습을 보며,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들이 생각났다. 어떤 연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외로운 상황들이 눈 앞에 던져지는데, 그 알 수 없는 연유 덕분에 그림에 더욱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정갈하고 따뜻해보이기까지 하는 배경안에 쓸쓸히 놓여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인물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듯, <셰임>의 마르고 단단한 브랜든의 몸은 외로움에 걸맞은 행색을 하고 있었기에 그를 향한 처연한 마음은 영화가 끝나도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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