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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Apr 30. 2016

나무아미타불

영화 <사도>


다니고 있는 중학교에 너무 가기가 싫은데 가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을 때, 우리는 등교대신 죽음을 선택한다. 그 나이에 생각하는 ‘죽음’은 지금 모습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을 것 같을 때 한번 쯤 마음에 두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 선택은 그들이 어리고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그 나이는  학교 밖에는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사도세자의 삶은 죽음으로 갈 수 밖에 없는 비극의 방향을 한가닥씩 쌓아올린다.  사는 것이 어차피 죽음으로 가는 길이야 하다만, 사도세자의 그 것은 죽음이 바로 삶의 목표인 것 같아 스물 아홉해 인생이  더욱 서슬푸르게 느껴진다. 세자라는 신분속에 갇혀 자신이 원하는대로 살지 못하는 것. 아마 사도세자는 그런 삶이 죽음보다 못하다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죽음 앞에서, 왜 사도세자는 영조가 죽을 때까지만이라도 그가 원하는 대로 사는 척 하지 못했을까하는 안타까움이 여기저기 밀려온다. 마치 그의 아들 정조가 그런 것처럼, 영조가 좋아하는 공부를 열심히, 영조가 원하는 대답을 콕 집어 말해주면서 그의 비위를 맞추며 영조의 죽음을 기다리면, 이 후에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왕으로서의 삶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도세자는 그에 답하기라도 하듯 어린 정조에게 말을 건넨다. 


“허공으로 날아가는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


그가 원하는 것은 최대한 과녁에 맞추어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기질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인정받으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찰나일 지언정 말이다. 회사가 한참 싫을 때, 나는 퇴근하면 회사의 상징인 옷부터 벗어던지곤 했다. 최대한 정장같지 않은 검은색 스키니진에 자켓을 입을 뿐인데도 그것마저 갑옷처럼 갑갑하게 느껴져 신경질적으로 옷을 벗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의복도착증으로 옷을 갈기갈기 찢어대며 내관을 죽이는 사도세자의 광기가 나는 무섭기보다는 한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영조의 인정을 받는 자신의 아들인 정조는 어쩌면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갈 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정조가 없었다면 영조는 사도세자를 어르고 달래며 자신이 죽기 전까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정조는 태어났고 또한 총명했다. 사도세자는 정조라는 생명이 움트는 것을 보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닥친 죽음 앞에서 정조에게 위로를 받는다. 


“저는 그 날 아비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정조는 남들이 모두 두려워하는 영조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대변하고,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를 기어코 찾아가 물 한그릇을 전해주기위해 무사들 앞에서 호령한다. 정조의 노력이 사도세자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진실로 슬픔 때문에 흐르는 눈물은 오직 정조 앞에서만 떨어지기에  정조가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보며 자꾸만 어린 학생들이 떠올랐다. 그 어린것들의 세계에서는  름의 이유로 학교에 가기가 죽기보다 싫을 때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떠올리듯이, 사도세자의 세계엔 죽음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듯 보여서이다. 조선이라는 큰 나라가 몸하나 가눌 수 없는 관 속처럼 갑갑하게 느껴졌다.  


사도세자가 저지른100여명의 살인을 옹호하는 것도, 용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오백여년전 이 땅에 살았던 어떤 사람이 왜 미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조의 위로처럼 나의 생각이 이미 죽어버린 사도세자의 삶을 추호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그의 죽음을 향한 삶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세상에 다음 생이란 것이 있다면

그 때는 가난한 선비집 셋째 아들로 태어나시오

남의 눈치 안보고 하고싶은 것 맘껏 하고 살면서 칭찬도 사랑도 받으면서 사시오


아이고 아이고 목이 쉬도록 곡을 하고 굿 한판 벌이고 싶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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