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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y 06. 2016

빅브라더의 큰 그림

조지오웰 <1984>


<1984>를 안읽어본 사람도 '빅브라더'가 무엇인지는 대강 알고 있다. 1934년에 예상한 50년 후의 모습은, 어째 1984년보다 현재를 더 닮아있는 것 같아 보여, 페이지를 넘기면서 소름이 끼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이 세계는 내가 단순하게 살고있는 것 과는 달리, 복잡하게 계산되어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공산당과 닮은 그 세계는 유명한 '빅브라더' 외에도 사람들을 항사 긴장 상태로 만드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사상경찰이 얼마나 자주, 또는 어떤 방식으로, 누구를 감시하는지는 추측에 맡길 수 밖에 없었다. 아예 모든 사람을 항상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중략)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내든지 도청당하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가 아니라면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당한다고 가정한 채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습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본능이 되어 버렸다. 


거짓말을 믿는다면(그리고 모든 기록이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표어였다. 그렇지만 과거는 본질적으로 바뀔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진실인 것은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영원히 진실이었다. 


한 사회를 통제하기 위해 가장 해야하는 일은 보이지 않는 일들이다. 사람들이 서로 제대로 소통할 수 없도록 그들은 최선을 다한다. 도처에 널린 빅브라더의 눈과 귀, 심지어 자신의 어린 친자식들도 자신을 고발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정치적인 얘기를 할 수 없도록 그들은 단어 자체를 없앤다.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이 하는 행동을 어떤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삭제한다. 수많은 과거와 단어들. 모든 책에서 과거를 지우고, 모든 사람에게 과거를 말할 수 없게하고, 심지어 그 과거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마저 없애는 방법은 정말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신선한 일들이 1900년대부터, 아니 어쩌면 사회가 생겨났을 때부터 언제나 자행되어 왔을지도 모르는 일들이다.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일이 문자 그대로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 거라고. 사상을 표현할 단어가 없을테니 말일세. "



조지 오웰


그러나 1984년을 예상한 사회만큼,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 낯설지도 모르는 이 책의 주인공은 '윈스턴'이다. 그는 자신이 살고있는 오세아니아의 당원으로 진리부라는 곳에서 지나간 사건의 기록을 변경하거나 지우는 역할을 하고있다. 그는 어디에나 있을법한 소시민이다.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의 신변을 위해 묵묵히 사회에 동조한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역은 노트를 사는 일이다. 물론 오세아니아에서는 노트를 구입하는 것 조차 반역으로 몰린다. 


그가 줄리아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유부남임에도!-그녀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빅브라더를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모습 역시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부인은 오로지 당이 명령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사랑을 나누기 때문에 어떠한 애정도 느낄수가 없다. 그녀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심지어 사회를 변혁시키고자 하지만, 결국 고통 앞에 무릎을 꿇는다. 


"목숨을 구하려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자신을 구할 수 있다면 정말로 그렇게 하려고 들죠.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가길 바라는 거에요. 그래요. 그런 일이 닥치면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만 생각하죠."


윈스턴의 모습을 보고 비난하기 보다는 공감이 먼저 된다. 고통 앞에서 우리는 과연 대의를 생각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우리가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을 지킬 수는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책 속 오세아니아가 공산주의 국가처럼 느껴진다며 일찌감치 반공서적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책 속 모습은, 2016년 대한민국과 닮아있다. 디스토피아를 대표하는 이 서적이 말이다. 읽으면서도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생활에서 가장 큰 특징은 잔인함이나 불안감이 아니라 단순히 그 자체의 적나라함과 음산함, 무관심이란 사실에 그는 놀랐다.(중략)심지어 당원들의 생활조차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인 것, 이를테면 묵묵히 지루한 작업을 해내기와 지하철 안에서 자리를 다투기, 구멍 난 양말 꿰매기, 사카린 얻어내기, 담배꽁초 모으기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도 뉴스에서는 인터넷, cctv에 의한 감시를 이야기하며 빅브라더 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1984>에는 빅브라더 만큼 중요한 이야기가 있었다. 바로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 윈스턴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1984>하면 으레 '아아, 빅브라더?' 나 '빅브라더가 항상 지켜보는 거 무섭지' 같은 문장들을 공유한 채 만족스럽게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한다. <1984의 진짜 주인공이 누군지도 모른채 1984하면 빅브라더를 떠올리고 지나치는 것. 그것이 사람들이 <1984>의 사회상에 대한 대화를 막기 위한 빅브라더의 목표는 아니었을까, 하는 말도 안되지만 오싹한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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