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원 Jun 07. 2016

은근하고 모호한 인생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한번도 읽어본 적 없을 때조차 어떤 스타일인지 대강 알고 있었다. 그의 소설은 무슨 얘기든 '나는 사정했다'고 종결한다는 인터넷 유머는 내가 하루키 소설을 읽는 데 더 긴 시간을 지체시킨 주요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나는 하루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한채 하루키 소설을 읽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얘기하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아직 다른 소설을 전부 읽어보진 않았지만, <해변의 카프카>에서만큼은 '사정했다'와 같은 섹스와 관련된 이야기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열다섯살의 소년이 가장 많이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마 섹스가 주요할 것이라-되어 본 적은 없지만- 생각되니까 말이다.
 
<해변의 카프카>를 읽는 내내 호밀밭의 파수꾼이 떠올랐다. 홀든과 카프카는 어린 나이에 섹스와 마주하게 되고, 낯설고 두려운 마음에 얼어붙는다. 그것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 실제의 괴리에서 오는 감정이다. 사춘기에서 어른이 될때까지 우리는 수없이 이런 경험을 한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의 신화 세계에는 세 종류의 인간이 있었어”하고 오시마씨가 말한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있어?” “모릅니다”하고 나는 대답한다.
“옛날에는 세계가, 남자와 여자가 오늘날같이 따로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남자와 남자가 또는 남자와 여자가 그 밖에도 여자와 여자가 한 몸으로 등이 맞붙어 있어서 마주 보지는 못하고, 서로 등짝이 딱 붙은 채 살아가는 세 종류의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애당초 인간은 오늘날과는 달리, 두 사람이 한 몸으로 붙어 있게 만들어졌었다는 거지. 그래도 모두 만족하고 아무 탈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는 거야.
그런데 하느님이 칼을 써서 그 모든 사람들을 반쪽씩 두 사람으로 갈라놓았어. 모든 사람을 두 조각내 버렸다는 거지. 그 결과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칼에 맞아 생긴 일직선으로 된 흔적이 등짝에 남아 있다는 이야기야. 그래서 요행히 제대로 자기 짝을 찾게 되면 해피엔딩의 사랑이 되지만, 영영 찾지 못하거나 찾았다 싶어 결합했는데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영원한 이별이 된다는 그럴듯한 얘기지. 그 결과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만이 있게 되어서, 사람들은 원래 한 몸으로 붙어있던 반쪽을 찾아 우왕자왕하면서 인생을 보내게 되었대. -p75

헤드윅이 <The origin of love>를 부르며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변의 카프카>에서 발견해서 반가웠다. 이 소설에서 하나가 둘로 나뉘어져 서로를 찾게 된다는 것은 '사랑'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혼자라는 생각에 대한 공허함인 것 같다. 누구-사랑하는 사람, 부모님, 친구-와 있든, 우리는 결국 혼자로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자신이 채워줄 수 없는 공허함과 외로움을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며 그런 감정이 사라질 거라 기대하는, 우리의 운명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어. 너는 어머니가 나를 사랑했다고 말해. 아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고 말이야. 네 말을 믿고 싶어. 하지만 정말로 그랬더라도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왜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이, 그 누군가를 깊이 상처 입히는 것과 같아야 하는지를 말이야. 즉 만일 그렇다면,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 도대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거냐구?-p303
 
홀든과 카프카는 모두 강한 자기부정으로 자신이 존재하던 세계에서 벗어난다. 쉽게 얘기하자면 '가출'이다. 하지만 가출을 시작하고나서야 비로소 그들은 누가 시키는대로가 아닌, 그들이 원하는대로의 삶을 시작한다. 누구의 말을 듣거나, 말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닌 온전히 자신의 선택대로 행동하는 모험을 통해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 돌이킬 수 없는 감정. 그것이 살아가는 하나의 의미지. 하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아마 머릿속일 것이라고 생가가는데, 그런 것을 기억으로 남겨 두기 위한 작은 방이 있어. 아마 이 도서관의 서가 같은 방일 거야. 그리고 우리는 자기 마음의 정확한 현주소를 알기 위해, 그 방을위한 검색 카드를 계속 만들어나가지 않으면 안 되지. 청소를 하거나 공기를 바꿔 넣거나, 꽃의 물을 바꿔주거나 하는 일도 해야 하고. -p413

모험은 반드시 집 밖을 떠나야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나 줄곧 의식주(+ 놀이)로 시간을 채우던 아이가, 자신의 가치라든가 정체성 같은 추상적인 것들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시작하면서 사춘기는 시작된다. 무엇이 그리 싫은지 알 수 없지만, 모든 것에 대해 거부하고 화를 낸다. 아마 그런 거부와 반항은 '아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던 것 같다. 엄마나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을 거쳐, 부모님 없이 내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사회 속에 부모님이 더이상 관여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 감정을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하고, 스스로도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상황에서 피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그러한, 내면의 모험이 끝나는 것은 그 상황이 종료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일상의 경험으로 인해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 왜 아저씨가 이상하냐 하면 음, 아저씨는 나라는 인간을 바꿔버렸기 때문이지. 불과 열흘 동안에 나는 엄청나게 변했어. 뭐라고 할까, 여러 가지로 주위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아. 지금까지 그냥 대충 보던 것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구. 지금까지 조금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음악이 묵직하게 마음에 드는 거야. 그리고 그런 느낌을 누군가, 비슷한 것을 알고 있는 사람과 얘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거든. (중략)그것은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일어난 일 가운데서 제일 알맹이가 있는 일이야. -p315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 때마다, 나카타 씨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말할까, 나카타 씨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 하고 일일이 아저씨를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나카타씨의 일부가 앞으로도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게 되는 거야. -p399

2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 임에도, 이야기에는모호한 구석이 많다. 60대 나카타씨가 사고 나기 전 삶의 궤적이라든가 그 또한 다른 곳에서 모험을 떠나면서 명확하게 누군가를 만나서 무엇을 해야하는지조차 이야기는 독자에게 자꾸만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모호함 속에서 이야기는 오히려 숨을 쉬고, 주인공이 지나온 시간과 장소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데뷔 이후 줄곧 '모호하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런 모호함이 오히려 우리 삶을 닮아 있는 것 같다. 우리는 살면서도 우리가 가는 방향을 정확히 알지 못하므로. 그럼에도 또 하루를 살아가고 있으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빅브라더의 큰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