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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Jun 27. 2016

장인이 한땀한땀 소설을 짓는 법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하루키를 좋아하게 된 것이 그의 안전한 문체나 모호하면서도 깊은 이야기 때문은 아니다. 그가 쓰는 글의 요소의-특히 에세이의- 모든 요소를 좋아했지만,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하루키의 삶에 대한 '자세'였다. 하루키 인생의 반 밖에 안산 내가 그의 애티튜드를 판단하는 것이 발칙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그가 가진 수많은 매력중 가장 빛나는 것이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하루키가 자신의 업을 주제로 책을 내겠다니, 왠지 하루키답지 않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작가임에도 허름하고 아무도 못알아보는 상태로 이곳저곳 방랑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던 하루키의 이미지기에 '내가 작간데!'하는 책은 안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책은 읽은 결과 하루키는 그야말로 날을 잡고 자신이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써오고 있으며, 어떻게 작가로서 살아갈 것인지를 독자들에게 잘 설명해주었다. 이 것은 그를 좋아하는 팬을 향한 것이기도,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도 하다.


그가 재즈바를 운영하다 어느날 문득-책에서는 그 순간이 잘 묘사되어 있다-소설을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쓰게된 첫번째 소설로 상을 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는 많은 소설가지망생들에게 좌절을 주는 인물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작가가 된 이후 더욱 도드라진다.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에 200자 원고지 20매를 쓰는 것을 규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 맥 화면으로 말하자면 대략 두 화면 반이지만, 옛날부터의 습관으로 200자 원고지로 계산합니다. 좀 더 쓰고 싶더라도 20매 정도에서 딱 멈추고, 오늘은 뭔가 좀 잘 안된다 싶어도 어떻든 노력해서 20매까지는 씁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규칙성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p150

그녀(아내)의 비평에는 '아닌 게 아니라 그러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하고 수긍이 가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게 수긍하기까지 며칠씩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또한 '아니, 그렇지 않아. 내 생각이 옳다'라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제 삼자 도입'과정에서 내게는 한 가지 개인적인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트집 잡힌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어찌 됐건 고친다'는 것입니다. 비판을 수긍할 수 없더라도 어쨌든 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면 그곳을 처음부터 다시 고쳐 씁니다. 지적에 동의할 수 없는 경우넨 상대의 조언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고치기도 합니다. -p157

회사를 다니게 된 후부터 어떤 일이든 10년이상 꾸준히 해 온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장인'이라고 부른다. 우리 아빠에게도, 좀 있으면 장인이 될 꾸준히 불평하고 꾸준히 출근하는 내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하루키 씨는 35년 장기 작가 근속자로서 예술가의 마인드가 아닌, 한 명의 장인의 마인드로 글을 쓴다. 매일 꾸준히. 마치 고시생이 시험을 앞둔 것처럼. 자신이 정해놓은 양을 채우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의 꾸준함은 비록 글쓰기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그는 글을 쓰듯 매일같이 달린다. 비가 오는 날에도 달리며 맑은 날의 달리기와 다른 감회를 맞이한다. 매일의 일상을 묵묵하게 하지만 꾸준하게 해내는 하루키를 보며, 예술가보다 더 나태한 나의 일상을 반성해 보기도 한다. 또한 아내의 모든 리뷰에 반응하고 수정하는(설사 그것이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 하더라도) 겸허한 삶의 방식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번에도 그가 나에게 영향을 주는 부분은 글쓰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정보 수집에서 결론 제출까지의 시간이 점점 짧아져서 모두가 뉴스 해설가나 평론가처럼 의견을 밝힌다면 세상은 빡빡하고 융통성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혹은 몹시 위험한 것이 되고 맙니다. 이따금 앙케트 등에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없다'라는 항목이 있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현재로서는 어느 쪽이라고도 할 수 없다'라는 항목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번 생각합니다. -p122

인스턴트 인터넷 시대에, 인스타그램 게시글보다 위험한 것은 무심코 누르는 좋아요와 댓글이다. 정보의 바다에서 개인의 사견은 RT와 좋아요를 통해 하나의 여론이 형성된다. 그리고 게시글은 먼저 관심받기 위해, 사실관계를 확인해보지 않고 듣자마자 쓰고, 보자마자 '좋아요'가 된다. 세상은 속도전이 아닌 걸 알면서도,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채 빠르게 결정하고 행동한다. 하루키가 느끼는 위험한 모습이 결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고 위안이 되었다.

가능하면 잘 설명되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이론에 맞지 않거나 줄거리가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거나 미스터리하다면 두말할 것 없이 좋습니다. 그런 것들을 채집해서 간단한 라벨(날짜, 장소, 상황) 같은 걸 딱 붙여 머릿속에 보관해둡니다. 말하자면 그곳에 있는 개인 캐비닛의 서랍에 넣어두는 것입니다. -p123

글을 쓰는 것은 모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이고, 이를 비평하고 분석하는 것은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몫이라 했다. 책을 천천히 읽으며, 나는 어디쯤에 해당하는 사람일치 한참을 가늠해 보았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기 않기를 바라면서.

등단 후에도,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이후에도 뉴욕등 세계에서 자신의 책을 팔고 난 이후에도 60대 중반의 이 청년에게는 아직도 목표가 있다.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런 사람과 함께 지구를 살고 있다는 사실은!

하지만,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 어떤 기치를 목표로 내건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몇 살이 되더라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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