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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Sep 26. 2016

태국 방콕 여행기

행복한 황금만능주의(?)의 경험

나의 대부분의 여행은 시작은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러 나가는 길에서부터 시작한다. 출발하기 전엔 짐 싸는 것도 귀찮아서 마지막 순간이 돼서야 꾸역꾸역 짐을 싸다가도, 버스를 타러 나가기 시작하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저절로 발을 동동 구르며 종종걸음으로 뛰어 나가는 나를 보며 여행이 그리 좋은지 되묻고 싶을 때가 많다. 여행을 하다 보니 나중엔 공항버스만 보아도 심장이 뛰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증상마저 자라났다. 


웬일인지 이번 여행에선 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도 가을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공항에 있는 사람들의 부산한 분위기와 공기에 마음이 휩쓸릴 만도 한데, 왜 이럴까. 의아함을 안고 비행기에 오른 나는 태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만나게 된 설렘에 비로소 안도했다. 



객실에서 바라본 야경

이전 태국 여행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거리상 멀지 않은 나라의 언어임에도 태국어는 단 한 글자도 알아볼 수 없다. 읽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바라볼수록 글자인지 그림인지 의문이 드는 지경이다. 그러나 그 낯설고 어리둥절한 마음이 결국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여행이 마침내 시작되었다. 


호텔값이 싼 방콕은 7성급 호텔에 묵기 좋은 환경이다. 덕분에 길지 않은 3박 5일 동안 호텔에 묵으며 나는 돈을 -방콕에선 7성급을 묵을 만큼은- 벌어야 하는 이유를 수십 번은 깨닫고 다시 깨달았다. 그들의 배려에 한국에선 일개 직장인으로 이리저리 치여사는 나도, 7성급 호텔에선 마땅히 귀하게 대접받아야 할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호텔 수영장

친구와 나는 종종 룸서비스를 주문하여 방 안에서 먹었는데-방의 뷰가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나았기 때문에-직원들은 식사 전용 테이블과 음식을 날라주며, 다 먹으면 알려달라고 당부를 하고 나가곤 했다. 하지만, 묵는 내내 호텔 수영장에 정신이 팔린 우리는 번번이 그릇을 비우자마자 신나게 짐을 챙겨 수영장으로 달려가느라 그들의 부탁을 까맣게 잊곤 했다. 뜨는 것조차 무서워하는 몸을 가지고도 행복한 수영을 하고 방에 들어오면 친구와 함께 "방이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하고 의아해한 후에 룸서비스 테이블이 치워진 걸 깨닫곤 했다. 그들의 감쪽같음은 방의 상태를 오전에 청소해준 직후처럼 만들어 주었다. 또한 화장대 위 어지럽게 널브러진 화장품들 역시 새하얀 수건 위에 마치 백화점 상품들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기대를 한껏 초월하는 팟타이와 오렌지 주스



호텔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느낀 건 택시를 탈 때였다. 로비에서 '어디'를 가고 싶다 얘기하면 그들은 알아서 손수 택시를 잡아주고, 행여나 사고가 생길 것에 대비해 택시 번호와 도착지를 적어 건네주었다. 또한 나갈 때 미터기를 켜지 않은 사람에게 이걸 말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도 알아서 먼저 해주었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할 때, 말하지 않아도 먼저 해주는 것이 이렇게 편한 일이었던가. 임원들이 얼마나 안락한 삶을 살고 있는지 문득 한국 생활이 떠올랐다. 성공의 대가는 부와 명예뿐 아니라, 편안함도 동반되는 것이라는 걸 방콕에 와서야 깨달았다. 


함께 여행을 온 친구는 나와 비슷한 여행 취향을 가졌다. 우리는 상의하지 않아도 출발하는 날 아침에서야 짐을 싸는, 좋게 말하면 낙천적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대책 없는 타입이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이라곤 항공권과 호텔 결제를 하는 동안 ‘태국 맛집’ ‘태국 마사지’ 같은 단어들을 검색창에 쳐보고 공유한 것뿐이다. 친구는 3년 전 버전의 태국여행책을 집어 들고 태국에 왔지만, 우린 그 책을 열어보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그런 덕분에 우린 가고 싶었던 곳을 가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가끔은 길을 헤매는 덕분에 검색으로 만나지 못했던 아름다운 장소들을 만나기도 했다. 



기대를 한껏 초월하는 팟타이와 오렌지 주스


그 밖에도 우린 면세점에서 바보짓하기, 대화에 취해 하마터면 공항 가는 길에 늦을 뻔 하기 등 많은 성취(?)를 이루었으나, 아직 방콕에선 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다. 예를 들면, 호텔 수영장에서 밤수영을 즐기기, 나에게 배영을 가르쳐주기, 매일이 아니라 끼니마다 팟타이 먹기, 루프탑 바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말을 걸기, 기타 등등. 짐을 모두 챙기고 공항으로 나선 택시 안에서야 못해본 것들이 떠오르면서 나는 아직 떠나지도 못한 방콕에 다시 돌아오리란 맹세를 했다. 나를 실망시키는 커녕 내가 돈을 벌어야 할 이유를 만드는 방콕에 다시 돌아올 때에는 돈을 조금 더 벌어서, 비즈니스 석을 타는 것부터 시작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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