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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Nov 15. 2016

세월호에 대한 수천만개의 반성문

눈먼자들의 국가



'세월호'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하면, 우리는 자꾸만 반성문을 적게 된다.
그 날 우리는 얼마나 무심한 채 시간을 보냈으며, 그것은 얼마나 무지한 일이었는지.
무심함과 무지에 대한 반성은 '잘못했다'라는 말을 적기에 송구할 지경이다.

'전원구조'라는 뉴스의 자막만 믿고 싱겁게 웃었던 나의 표정이 어땠는지 나는 사진 찍어놓은 양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날로 돌아간다면 싱거운 웃음을 지은 채 뉴스화면을 외면하는 나를 몇대쯤 갈기고 싶다.

다시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날씨가 차가워질 즈음이었다. 나는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한없이 두려워했다.


세월호를 잊을까봐 두려웠다.
차가운 물속에 아무것도 모르고 가만히 죽어간 사람들을 잊고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 갈 내가 두려웠다.


그런 날이 올 것을 대비해서 이 책을 열어보기는 한없이 미루고 미루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핑계는 그 곳에 얼마나 많은 슬픔이 있을 지 읽지 않아도 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책 속에 숨어있던 것은 한없는 슬픔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우리 모두가 명백하게 알고 있어야할 진실에 대해, 소설에선 한없이 특이한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 박민규는 르포 기자가 된 것처럼 날짜별 일어난 사실을 적어내려간다.

'침몰해가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은 선장과 선원들이었다. 해경 123정은 기울어가는 배 주위를 돌기만 하다가 딱 한 번 접안을 하고 그들을 옮겨태웠다. 승객들의 출입구가 있는 선미로는 가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 몰랐다고는 했지만, 일반인의 출입이 원칙적으로 통제된 선수 쪽 조타실이었다. 아니, 그마저도 나중에 거짓임이 드러났다. 선원임을 알았고, 그들은 족집게처럼 476명이나 타고 있는 배에서 선원들만 빼내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접안하지 않았다.'

책 속 작가들의 문장은 모두 무기력하면서도 분노에 차 있다. 그 분노는 세월호를 '사건'으로 만든 모든 시스템과 책임자들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그 사건의 목격자임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스스로에 대한 분노일 것이다.

 '2012년의 한국인들은 아버지의, 그나마 평가가 엇갈리는 후광만이 정치적 자산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후보를 선거로 뽑은 것 아닌가? 과연 역사는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는가? 말했다시피 이건 나이가 든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은 지혜로워진다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착각이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질 수 없고, 그런 인간의 역사 역시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진보하지 않는다. 가만히 놔두면 인간은 나빠지며, 역사는 더 나쁘게 과거를 반복한다. (중략) "그대가 바로 그대가 찾고 있는 범인이란 말이오."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며,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만으로 역사는 진보한다고 우리가 착각하는 한, 점점 나빠지는 이 세계를 만든 범인은 우리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이디푸스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은 또한 우리의 것이기도 한다. 그러니 먼저 우리는 자신의 실수만을 선별적으로 잊어버리는 망각,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무지, 그리하여 시간이 흐를수록 나만은 나아진다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게 바로 자신의 힘으로 나아지는 길이다. 우리의 망각과 무지와 착각으로 선출한 권력은 자신을 개조할 권한 자체가 없다. 인간은 스스로 나아져야만 하며, 역사는 스스로 나아진 인간들의 슬기와 용기에 의해서만 진보한다.' - 김연수, 그러니 다시한번 말해보시오 테이레시아스여 中

책의 제목처럼, 지금 이 나라는 눈이 멀어 한치 앞의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물론 그 위험의 당사자가 나였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위험에 빠졌을 때, 미필적 고의의 외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이 책을 썼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책처럼 이 책을 읽고 또 읽어야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최소한으로 해야할 일은 눈을 뜨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작성했을 수천만개의 반성문은 반성으로 시작하였으나, 결심으로 끝맺어야 할 것이다.
언제든지 우리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는 것들로부터, 위험과 위험을 만들어내는 자들로부터 우리는 서로를 지킬 것이며,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 모든 일들을 잊지 않겠다는 결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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