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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Nov 22. 2016

잊지 않기 위하여

<나의 한국 현대사> 유시민



미국에서 상영되는 영화에 3,000분의 1초마다 코카콜라 이미지를 삽입하며 만들어 6주간 상영한 결과 코카콜라의 매출이 약 20% 올랐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눈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도, 이미지에 노출되는 이상은 세뇌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이야기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노출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그 일이 세상에 없는 것처럼 의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주위에서 금방 찾을 수 있다.


중고등학교 내내 배웠던 국사 교과서에 광복 이후의 역사가 단 2,3페이지로 요약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마저도 교육과정이 바뀌며 국사가 교육과목에 필수가 아니게 된 이상 학생들은 우리의 역사를 안 배워도 되는 어이없는 권리를 가지게 되기도 했다. 얘기해주지 않으면 보고 듣지 않은 이상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는 단순히 시간별로 사건을 늘어뜨려 놓는 방법이 아닌 정치, 경제, 인권 등을 주제별로 우리 사회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였는지 에세이 식으로 재밌게 그려낸 책이다. 자신이 탄생한 해에는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과 함께 자라난 세대들은 어떤 일들을 보고 자랐는지 이야기처럼 써 내려가는 유시민의 필력을 보며 소리 내어 감탄하게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자주 든 생각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약 50여 년의 짧은 세월 속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다는 점이다. 항상 헬조선을 부르짖으며 현재를 비판하는 나에게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지난 세대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죽고, 고문을 받으며 만든 세상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통치자들은 그저 쉽게 자기 멋대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했지만, 스마트폰도, SNS도 없는 그 어두운 시절 속에서도 국민들은 억압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누군가는 현실에 침묵하며 조용히 투표지에 1번을 찍지만, 그중 누군가는 자신에게 겨누어지는 총앞에서도, 내가 사는 지역이 대한민국에서 고립되고 수백수천여 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결코 굴하지 않고 투쟁하여 만들어온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그 세상에서 내가 고작 하는 일이라고는 선거일에 투표를 하거나 인터넷 댓글에 공감을 누르는 것 외에는 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가 얼마나 하찮은 인간인지를 다시금 곱씹었다. 반백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며 여러 사건에 불을 지핀 사람들은 처음부터 위인이 아니었다. 그들도 나처럼 힘없고 빽 없는, 그러나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믿는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알게 된 사실은 학생들이 가진 행동력이다. 대학생들이 시작한 시위도 많지만 적지 않은 투쟁이 중고등학생들이 학교 밖으로 우르르 뛰쳐나오며 시작된다. 지금까지 중2병이라고 치부했던 청소년들이 가진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빛났던 우리의 역사를 보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나이로 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자유를 위해선 남들이 보기엔 오글거릴 만큼 주체적인 자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아마 이 책을 읽는다고 내가 갑자기 민주열사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열사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된다면  세상은 또 한 번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앞으로 내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것을 지난 역사를 보고 깨닫게 되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있던 시절은, 내가 책을 구간 반복해서 읽는 중인가 헷갈릴 만큼 비슷하다. 내가 살고 있는 시절은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선거 때에만 공약을 몇 개 읽어 보고 투표하는 사람에서 벗어나, 그 공약이 실제로 잘 실현되는지, 민주주의가 침해되고 있지 않은지 항상 정치에 눈을 떼지 않는 예민한 시민이 되어야겠다. 후세가 2016년을 역사가 세 번 반복된다고 기억하지 않도록 말이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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