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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Dec 12. 2016

특별했던 사랑에 대한 헌사

영화 <라라랜드>

지나간 사랑마다 점수를 매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어떤 사랑은 다른 것보다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나의 꿈을 북돋워주고 한없이 용기를 주었던 사람. 이를테면 세바스찬과 미아가 그랬던 것처럼. 


세바스찬은 미아를 다시 만나기 위해 워너 브라더스 내의 카페를 찾아간다. 영화를 만드는 공장 같은 곳에서 세바스찬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카사블랑카의 배경에서부터 미아가 영화를 시작하게 된  개인적인 이야기까지-을 듣게 된다. 미아 역시 세바스찬과 함께 라이트하우스 카페를 찾는다. 재즈를 싫어했던 그녀는 세바스찬을 만나, 라이트하우스 카페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재즈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들은 기꺼이 서로에 대해 배워가면서 서로의 꿈을 응원한다. 

LA를 환상적인 라라랜드로 만드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렉의 형이 말하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너무 춥지 않으면 너무 더운 낡은’ 공간으로 치부되는 리알토 극장도 미아와 세바스찬이 함께하면 낭만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영화를 보다가 필름이 타버려도 그들의 무드는 깨지지 않는다. 낮에 오니 별로라던 현실(천문대)에서도 그들은 기꺼이 서로의 꿈을 향해 상대방을 밀어 올리고 그 속에서 둘만의 춤을 춘다. 


그들의 사랑이 특별한 것은 서로가 각자의 꿈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바스찬이 메신저스에 들어가 성공하게 된 첫걸음은 미아가 자신의 엄마와 통화하는 것을 들으면서부터 이다. 미아가 영화배우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캐스팅 디렉터의 전화를 받은 세바스찬이 미아를 찾아와 격려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이 결국 서로를 헤어지게 만들었을지언정, 그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세바스찬이 미아와 함께 워너 브라더스 근처를 거닐 때, 그는 미아에게 극본을 써보라고 제안한 뒤 농담하듯 말한다. 

내 할 일은 끝났네. My work is done.

이렇듯 둘의 결말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새드엔딩은 종종 암시된다. 세바스찬이 미아를 만난 후 콧노래를 부르는 City of Stars에서도 세바스찬은 말한다.


이것이 새로운 시작일까, 

아니면 이루지 못할 꿈일 뿐일까 

Is this the start of something wonderful and new?

Or one more dream, that I cannot make true.

그 질문의 답이 후자라는 것을 알기에 세바스찬의 설렘은 더욱 처연하게 느껴진다.


시간은 흐르고 리알토 극장은 문을 닫으며, 미아와 세바스찬도 헤어진다. 그들이 헤어진 직접적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 이야기에서 결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는 말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현재를 극복하고 꿈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세바스찬은 고전적인 재즈 플레이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식의 재즈가 인기를 끈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성공한다. 미아의 1인극 제목은 본인이 살던 동네로부터 작별인 <안녕, 불더시티 Goodbye Boulder City>이며, 미아는 결국 이 연극을 통해 파리로 떠나 성공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바스찬이 오디션 후 미아에게 말했던 것처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며, 슬프게도 그 ‘모든 것’에는 사랑 또한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5년 후 세바스찬이 셉스에서 미아를 위해 치는 곡은 지금의 우리를 있게 만든 과거의 우리에 대한 헌사이다. 그 속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삶의 과정에서 하지 못했던 선택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가정에 기인한다. 그리고 이 가정은 관객들 또한 지나간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질문 중 하나이다.  


‘우리가 그때 서로를 놓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행복했을까.’  



감독은 그 질문에 우리에게 대답 대신, 선물을 준다. 현실에선 결코 재현될 수 없는 지난 사랑에 대한 가정법이라는 선물을, 그것도 영화 전체를 통틀어 특히 공들여서 말이다. 아무도 그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되뇌며 과거를 더듬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그까짓 비현실쯤은 얼마든지 부풀릴 수 있다는 감독의 마음씨는 세바스찬이 미아를 향한 맹목적인 믿음과 응원과 오버랩되며, 세바스찬의 연주와 하모니를 이룬다.


그리고 그 선물에 위로받은 우리는 비로소 삶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것이다. 

다음 곡도 들을래? 하는 남편에게 이제 됐다고 말하는 미아처럼.

미아를 바라보다 숨을 고르고 하나, 둘, 셋. 다음 곡을 시작하려는 세바스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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