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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Jun 26. 2017

영화 속 숨겨진 '사람'의 역사

영화 <박열>

영화 <박열>은 저돌적으로 시작한다. 사랑 영화인 양 첫씬부터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첫 만남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 <박열>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박열의 항일투쟁이나, 가네코 후미코의 아나키스트로서의 삶 역시 결코 그때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다. 20대 초반이었던 두 명의 청년들의 삶에는 그들 나름의 유구한 역사가 존재했다. 

박열은 열다섯 보통학교를 졸업하면서 조선인 선생님들이 “일본 교사는 형사”라는 고백에 충격을 받고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는 현재 경기고의 전신인 경성보통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박열은 3.1 운동 이후 일본인이 세운 학교를 다닐 수 없다며 학업을 포기한다.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던 박열은 결국 일본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기 시작하고 도쿄에서 저명한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찾아가 직접 교류하거나, 의혈단 등 조직을 조직하게 된다. 



가네코 후미코는 아버지가 이모와 몰래 정을 통해 집을 떠나간 후 엄마는 이곳저곳으로 이사를 다니며 대장장이, 항구의 하역꾼 등과 동거를 하고, 급기야는 가네코 후미코를 창기로 팔려고 한다. 엄마는 집세를 못내 야반도주를 하고, 동거하던 고바야시의 고향 산골까지 밀려가 살기도 한다. 이후 엄마와 함께 외갓집으로 돌아오지만, 엄마가 곧 재혼을 하여 엄마와 헤어지게 된다. 고모 집의 양녀가 될 것이라고 믿고 조선에 왔으나 양녀에서 밀려나고 열두세 살 때부터는 사실상 식모로 전락하여 한여름에 집에 다니러 온 할머니 친척의 애를 업고 그 친척 수행하는 것을 거절했다고 할머니에게 짓밟혀 집 밖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박열과 가네코의 이야기는 다른 듯 닮아있다. 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짧은 일생 내내 억압당한다. 박열의 출생이 당시 대한민국이라는 것이 그 이유라면, 가네코 후미코는 자신의 출생이 잘못된 부모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제국주의에 저항하고 아나키스트가 된다. 그들은 인간이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에 끊임없이 저항한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인생은 서로를 만나기 전에도, 후에도 충분히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한 예로, 영화는 박열의 23년 만의 석방 대회를 한 장의 사진으로 보여주지만, 그 대회에서 박열을 옥중에서 감시한 형무소 소장은 조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자신의 아들을 박열의 양자로 마쳐 이름 또한 박정진으로 개명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박열의 일대기가 아닌, 관동대지진에서부터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까지를 보여주는 이유는 이 영화가 한 인물을 통한 애국심 고취의 목적에서 조금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빛을 발할 때 역시 박열과 가네코가 언론탄압에 저항할 때가 아니라, 그 사이사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는 그들의 두려움의 순간 들이다. 동지로서 동거를 시작한 상대방이 모든 걸 자백했을까 두려워하는 순간, 동지였던 누군가가 관에도 묻히지 못하고 흙속에 아무렇게나 묻혀버린 시체를 수습하기 위해 하염없이 산을 헤매던 순간, 우리는 항일 애국단체나 아나키스트를 뛰어넘어 한 사람으로서의 고뇌를 마주한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것은 맹목적인 애국심이 아니라, 민중을 억압하려는 권력에 대한 저항심이다. 

그러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국인이냐, 일본인이냐가 아닌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엄한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평등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그 어떤 사람, 권력 혹은 이데올로기 앞에서 

한 마리 미친개가 되어 죽을 때까지 저항해야 하는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가 첫눈에 읽고 반했던 박열의 바로 그 시처럼.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내뿜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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