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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May 28. 2017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

영화 <노무현입니다>


2002년, 나는 투표권이 없었다. 

당시 나는 그저 좋은 대학교를 가기위해 미친듯이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알게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에 선출된 직후, 

대통령의 인생을 다루는 한 공중파의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선거가 끝난, 2002년 12월 20일 새벽으로 넘어가는 시간,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를 보면서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단순히 멋있는 사람으로 수식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아래에는 영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노무현 입니다>는 정치인 노무현이 어떻게 대통령이 되는지를, 

특히 경선 과정에 주목하여 보여준다.

 그리고 인상적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이 하고싶으시다니 

대통령을 시켜주자!하고 그야말로 덕후들처럼 힘을 모으는 노사모의 저력이다. 


노사모와 노무현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는 것은 

그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다.

그 인간적인 매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원칙과 정도를 걸으려는 고집스러움에 기인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누군가에게는 골치아픈 사람이 될 정도이다.


영화를 보니 노무현 대통령은 그야말로 골치아픈 사람이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는 제일의 목표는 지역갈등없는 동서화합이었다. 

그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 일번지라는 종로 지역구를 털어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그 모습을 보며 그의 정치인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나조차도 

수없이 ‘바보’라는 말을 되뇌였는데, 그의 측근들은 오죽했을까. 

노무현 대통령 본인도 스스로가 얼마나 바보인지를 알고 있었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를 다시 나가지 않고 다른 지역구를 가는 정치인은 

세계에서 자기 뿐인 거라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의에 항거한다. 

5.18 청문회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소리지를 때에도, 

김영삼 대통령이 3당합당 시에도, 그는 거대 권력 앞에 고민하지 않고 저항한다. 

심지어 경선 연설 중에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는 일반당원에게조차 

‘그러면 이인제 후보 지지율 떨어진다’는 쓴소리를 해야 속이 편한 사람인 것이다. 


그의 언어에는 진정성이 있다. 

영화에 나오는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감동을 위한 어려운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말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울리는 것은 

그 말들이 얼마나 진심인지 온몸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아내를 제가 버려야 합니까? 그렇다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자리에서 여러분께서 심판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인천 경선 영상 : https://youtu.be/tY19H-8Fjb0?t=48s)


지금이 아니라도,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 나 대신 정치에 참여해줄 것이라며 외면한채, 

그저 ‘대통령이 되었으니 알아서 하세요’라고 단순히 생각해 버린 것은 아닌지. 


대통령 노무현은 자신만의 소신으로 원칙적인 정치를 하며 

다른이들도 자신을 원칙적으로 대할것이라 생각했지만, 

검찰/정치인/언론 그 어느 하나 그를 원칙으로 대한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인간 노무현을 잃었다. 


투표권이 없다고 참정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루쯤 추모를 위해 쓴다고 시험에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가 인터넷 유행어가 되었을 때, 

나는 한번이라도 그들을 비난하는 댓글을 단 적이 있던가. 

그게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침묵하는 동조인일 뿐이었던 것이다, 나는. 

오로지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외면해왔던 내가 과연 타인을 향해 적폐라며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을까. 


충남 경선에서 모후보가 지역감정 이야기를 할 때, 

한 시민이 지역감정 조장하지 말라며 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노무현 대통령 처럼 되는 것이 감히 나의 목표는 되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큰 사람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그 고래고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굴하지 않고 목청을 높이던 시민을 떠올린다.  

나는 그 보통 시민처럼 체면과 이익을 가리지 않고 불의에 항거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없는 노무현의 시대가 올 때까지.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부채감이 조금은 덜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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