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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Feb 26. 2018

경제학의 '공정함'을 돌아보기

존 러스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변호사 간디는 이 책을 읽고 마하트마 간디가 되었다.


라는 소개를 읽고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이 책은 존러스킨이 콘힐 매거진이라는 잡지에서 칼럼을 쓰다가 여론의 맹렬한 반대로 4편에서 마무리된 비운의 글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이다. 경제학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이 뒷받침된다면 더욱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었을텐데, 경제학 울렁증이 있는 사람이 읽고 독후감까지 쓰려니, 나의 밑천이 드러날까봐 벌써부터 두려워진다.

이 책은 경제학 책이라고는 하나, -사람들은 수요 공급 법칙에 따라 상품을 가장 싼 값에 구입하여, 비싼값에 판다는- 경제학의 원리가 무려 '망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사회는 절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존 러스킨은 경제학의 근간에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부를 홀대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그 부에 가치를 부여하는 동물로 그것을 잘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의 노동력은 상품처럼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애정이라는 것은 단순히 나보다 가난한 사람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무작정 퍼주고, 기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애정은 사랑보다는 믿음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법률가나 의사를 존경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역시 그들의 자기 희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위대한 법률가의 학식과 두뇌가 어떻든 간에 우리가 그를 존경하는 것은, 그를 일단 재판관 자리에 앉혀 놓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뇌물을 받고 불공정한 판결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기 위해 그 명석한 두뇌와 법률 지식을 이용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다면, 그에게 아무리 위대한 지성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결코 우리의 존경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p72


그는 실제 생활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한 내용을 토대로 주장하기 때문에, 일반 경제학보다도 더 실용적으로 접근한다. 이런 법률가나 의사 앞에서 우리는 경제학이 인간에게 바라듯이 가장 싼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나, 가장 싼 진찰료를 받는 의사를 찾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할거라 믿고, 우리가 내는 가치가 정당할 거라고 '믿는'다. 이것은 단순히 고급노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일반 상인에게도 해당된다고 존 러스킨은 주장한다.



  (상인은) 자기가 파는 물건을 어떻게 하면 가장 완전하고 값싸게 생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그 물건의 생산이나 수송과 관련된 다양한 업무에서 어떻게 하면 고용인들에게 가장 유리하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도 늘 고려하는 것이 상인의 의무 라는 것이다. -p79


이러한 존 러스킨의 주장은 공자의 정명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왕은 왕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자신의 존재이유에 맞게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상대방을 신뢰하면서 상품을 사고팔든, 노동력을 사고팔든 그것에 대한 가치를 기꺼이 지불하지, 무조건 가장 싼 노동력을 구하려고 하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책의 제목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인용된 것이다.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느 포도밭 주인과 같다. 그는 하루에 1데나리우스를 주기로 일꾼들과 합의하고, 그들을 포도밭으로 보냈다. -중략-  처음에 와서 일을 한 사람들은 은근히 좀 더 받으려니 하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1데나리우스씩을 받았다. 그들은 받고나서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말하기를 <마지막에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찌는 더위 속에서 온종일 수고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를 하시는군요>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했다. <친구여, 나는 너를 부당하게 대한 것이 아니다. 너는 나와 1데나리우스로 합의하지 않았느냐. 너의 품삯이나 받아 가지고 돌아가라.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너에게 준 것과 똑같이 주는 게 내 뜻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냐. 내가 후하기 때문에, 그게 너의 눈에 거슬리느냐?>


이는 노동은 동일한 질에 동일한 가격으로 매겨지는 것이 공정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정당한 만큼이라고 믿고 주는' 절대적인 가치만큼이 공정한 것이라는 책의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대학교 시절, 경제학원론을 들으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경제의 모습을 저마다의 이야기로 풀어가는데, 거기서 인용되는 전제가 현실에서 불가능한 -완전경쟁이라든가, 부대비용이 전혀 없다든가 하는- 것들이어서, 도대체 경제학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혼란스러워 한 기억이 있다.


존 러스킨이 주장하는 바 역시 우리사회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제학 이론에 때로는 보충이 되어주기도, 때로는 근간이 되어주기도 한다면 우리는 경제학이라는 이론이 우리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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