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드 보통 <무신론자를 위한 종교>
풍요로운 삶을 원하는 무신론자를 위한 지침서
세상에서 합의점을 찾기 힘든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교이다. 사람들은 사적인 자리에서는 종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다루기 힘든 문제에 대해서 알랭드 보통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준다. 알랭드보통은 종교의 진위여부에 대해 논하려고 이 책을 쓴것이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종교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신론자인 나에게 이 책은 인상적인 문구에 붙이는 포스트잇이 책을 뒤덮어 버렸을 정도로 새로운 시각에서 종교를 바라볼 수 있게 한다. 그 중 인상깊었던 몇가지 구절을 소개하려 한다.
1) 종교는 불행에 주목한다.
루브르박물관이나, 로마의 바티칸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중세 미술의 종교화는 대게 고난의 모습을 다룬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화는 배경또한 어두운 경우가 많다.
종교화는 도대체 왜 이렇게 진지하고 무겁기만 할까 의문이 들었는데, 그것은 내가 철저히 그 그림을 무신론자인 미술관 관람객의 입장에서 그림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교회'에 보았을 종교인들의 입장에서 그것은 천국을 그린 그림보다도 위안을 줄 수 있다.
알랭드 보통은 자신의 다른 책 '우리는 사랑일까'에서 직접 언급하기도 한다. '행복을 배타적이지만, 불행은 끌어안는다' 고. 현대의 우리들 역시 각종 SNS에 올려진 타인들의 행복한 시간을 바라보면, 한없이 외로워지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그 불행은 행복한 순간만을 공유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번져간다. 그러나 종교는 글과 그림으로 말한다. 이세상에서 불행한 것은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스도 이야기가 지닌 위력은 그리스도가 이제껏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었다는 주장으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그는 질병과 슬픔으로 고통받는 인류를 향해서, 그런 상황에 있는 것은 단지 그들만이 아니라는 명백한 증거를 제공한 것이었다. -p236
2) 종교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인정한다.
종교는 교육(특히, 대학교의 교육)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인다. 대학교에서 스무살은 성장한 한명의 어른이다. 대학교은 학생들을 의식과 교양이 있는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수많은 자유를 부여한다. 학생들은 수강과목, 동아리 , 자신의 진로까지 온전히 자신이 선택하게 된다. 우리는 교수님과 학생들이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게되며, 교수님들은 이런 양상을 제자들이 성장하는 계기로 생각하며 기꺼이 받아들인다.
반면, 종교는 여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어리석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리석기에 시간을 내어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타인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종교는 인간을 어리석기에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기 때문에 사람들은 용서를 받아야 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한다.
달력의 검은날이면 아침일찍 출근하여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살가운 표정을 지으며 10시간씩 '버텨내고' 난 후, 우리가 휴일에 듣고 싶은 말은 "너는 어른이기 때문에 네가 선택한 일에 책임을 져라"는 말이 아니라, "길잃은 어린양아, 방황하지 말고 내품으로 오라"인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각자의 모든 감정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는 상당히 현명하다. -p66
3) 종교는 사소한 것을 중요시 한다.
매일 비슷한 생활을 살다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질병이라든가, 충격적인 사건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당연하지 않았던 사실들에 감사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건강이라는 것이 당연히 내 곁에 있는 것은 아님을, 그리고 건강이 우리의 행복중에서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우리의 곁에서 항상 함께 식사를 하고 잠을 자는 사람이 언제나 내 옆에 있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종교는 이러한 사소한 당연함에 매사 감사하는 태도를 유지하도록 종용한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우리가 자신의 인생을 얼마든지 좌우할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 겸손함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다.
유대교 통합 회중파의 기도서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기도를 제안한다. 하나는 "한 해에 처음으로 제철 과일을 먹을 때"에 드리는 기도이고, 또 하나는 "새 옷을 얻었을 때"에 드리는 기도이다. -p204
4) 종교는 제도를 만든다.
책을 읽거나, 공연을 관람하거나, 또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다가 우리는 종종 이전에 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우리가 깨달았던 훌륭한 기억중 많은 부분들은 세월속에 완전히 잊혀져 버린다.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써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그 글을 반복적으로 읽지 않는 이상 순간의 깨달음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쉽게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종교는 다르다. 종교는 정기적으로 나가서 누군가에게 교훈을 얻고 온다. 또한 성경과 경전은 세상의 그 어떤 책보다도 반복되어 읽힌다. 사람들이 모두 완벽해서 한번 마음먹은 결심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다. 종교는 인간의 이러한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생각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든다. 또한 그러한 규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이끌어낸다.
종교는 자칫하면 항상 작고 무작위적이고 사적인 순간으로만 남을 수 있는 일에 규모와 일관성과 사회적인 힘을 준다. -p313
이 책을 읽고 무신론자가 종교인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비판적이기만 했던 시각이 누그러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리고 순기능을 가진 종교에 대해서 적어도 조금 더 알아보고 싶을 만큼의 관심을 갖게 될 지도 모른다.
알랭 드 보통은 이 책을 쓰면서, 아마 종교가 가지고 있는 순기능을 종교가 없는 사람들과 나눌 방법에 대해서 고민했던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가 이 책을 쓴 후 집필한 '영혼의 미술관'과 '인생 학교' 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얻고 싶어하는 위안을 인생학교라는 제도, 미술관이라는 장소, 그리고 책이라는 사물를 통해 얻을 수 있도록 힘쓰는 그의 노력에 감탄하며, 그의 책을 열심히 읽는 것으로 박수를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