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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Feb 14. 2018

똘레랑스, 지성인 볼테르의 관용

볼테르 <관용론>

누군가의 마음을 결코 구속하려 하지 말라, 그러면 누구라도 당신에게 설복될 것이다. -p57  


18세기, 인간은 스스로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종교의 지배하에 살던 이들이 스스로에게 자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란 쉽지 않다.


지금이야 과학 이론들을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300여년 전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이념은 종교였다. 종교에 반감을 가지면 어떠한 잔인한 일도 자행될 수 있었다는 과거를 들을 때마다 놀라게 된다. <관용론>은 그런 시대에 발간되었다. 지금은 고전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그 당시 가장 뜨거운 이슈를 끄집어내 쓴 화제의 도서였을 것이다.


볼테르가 <관용론>을 집필하게 된 사건은 프랑스에 일어난 일명 '칼라스 사건'이다. 1871년, 구교와 신교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하려 했던 칼라스의 아들이 자살한다. 신교를 박해하던 시민들은 신교도인 칼라스를 아들을 죽인 살인자로 누명을 씌워 참혹한 거열형에 처한다. 후에 볼테르는 수년전 일어난 이 잔인한 사건의 비합리성을 고발하고 결국 칼라스의 무죄와 복권을 이끌어낸다.   


민주주의와 인권이 중요시되는 21세기에도 <관용론>처럼  한가지 사건에 대해 정부와 강압적인 시민들의 행위를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사는 시대가 아무리 미개할 지언정, 몇백년 전과 비해서 인권 측면에서만큼은 훨씬 나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그럼에도 아직도 나아가야 할 먼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볼테르가 칼라스 사건을 통해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개인이 아니라, 시대에 뿌리박혀 있는 잘못된 맹신과 그에 따른 폭력성이다. 그의 문체는 누군가를 비판한다기에 너무나 신사적이다. 그가 책을 쓰면서까지 알리고 싶은 것은 잘못된 선택을 내린 누군가가 아니라, 그 시대가 왜 그러한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이다. 그리고 볼테르는 해결방안으로 ‘관용’을 주장한다.   


형이상학적 문제에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주 터무니없는 욕심일 것이다. 한 마을에 사는 모든 사람의 정신을 예속시키고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무력으로 세계를 굴복시키는 편이 훨씬 쉬우리라. -p201


우리가 보기에는 참으로 불균등하지만 당신이 보기에는 똑같은 처지와 조건들 사이에 놓여있는 작은 차이들, 즉 인간이라 불리는 티끌들을 구별하는 이 모든 사소한 차이들이 증오와 박해의 구실이 되지 않도록 해주소서.-p214  


볼테르는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누구보다 성서를 자세하게 읽고 인용한다. 그는 단순한 종교에 대한 비난이 아닌,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맹신에 따른 인권박해에 대해 되묻는다. '그것이 과연 신이 원하는 방식이나 결과입니까?' 라고 말이다.


당대의 구교의 성서만이 아니라, 로마 시대나 그리스인들의 종교관, 그리고 더 나아가 아시아의 종교를 실례로 들며, 종교가 가져야 할 관용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용은 가장 겸손한 형태의 인간에 대한 사랑이며, 개인이 자신의 한계를 이겨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 관용의 실현을 위해서는 우리 내부의 이기적 욕망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다. -p22   


볼테르가 주장하는 이성과 관용은 볼테르 그 자체이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본인의 삶으로 보여줌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합리적인 이성과 관용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그의 노력은 그시대 프랑스인 들은 물론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계몽주의 시대의 몇몇 지식인 들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합리성과 관용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상의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인식하고 살아갈 수 있게끔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전보다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관용론>은 한 사람의 '지식의 실천'이 주변은 물론 시대를 초월하여 세계가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읽고 나서 깨달은 바가 없다면 그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관용론>이 실천의 표상인 만큼 나 역시 한 권의 독서를 뛰어넘어 더 관용을 가진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으로 독후감을 대신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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