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어떤 책이 세계문학전집의 1권을 차지하느냐의 문제는 내게 항상 호기심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첫번째의 영광을 안은 안나카레니나는 한손에 잡히지 않는 세권 분량으로 읽기 전부터 나를 위협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읽고 나니 그 의미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책 자체가 인간의 삶
사람들은 막장드라마를 보면서 욕하지만, 그럼에도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자극적인 소재는 사람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니 불륜이라는 주제가 시대를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고 지켜봐왔던 주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끝까지 파고든다.
특히 안나와 키티에 대한 심리 묘사를 읽으면서 여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여성의 심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감수성이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경우 감수성이 선천적으로 부여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라면 톨스토이는 열번쯤은 다시 태어나야 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어떤 문장들은 그대로 드라마에 넣어도 멋진 장면이 될 것 같은 글귀들도 있었다.
"어째서 돌아가느냐구요?" 그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되물었다.
"내가 당신이 계시는 곳에 있고 싶어서 왔다는 것은 아실텐데요. 난 이제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 마침 바람은 마치 모든 장애물을 이겨내기라도 한 듯 열차의 지붕에 쌓인 눈을 휙 하고 흩날리며 찢어진 생철조각을 불어 날렸다.
-p206
톨스토이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주변 상황과 조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앞 문장에서 바람이 세차게 부는 배경과 브론스키와 안나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도 그러하고 다음 레빈이 키티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도 그렇다.
이 세상에서 그에게 생의 광명과 의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였다. 바로 키티였다. (중략)
하늘은 파랗게 걷히고 밝아졌다. 그리고 한결같은 부드러움으로, 그러나 여전히 아득하게 먼 곳에서 그의 의혹에 찬 눈동자에 대꾸하고 있었다. "아니다"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 소박한 노동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난 이제 그리 돌아갈 수는 없다.
난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
사랑에 대한 확신이라는 같은 주제를 가진 장면에서 한 쪽은 세차게 부는 바람을, 다른 쪽은 하늘에서 구름이 걷히는 장면을 사용하여 그들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한다.
톨스토이가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시집을 갔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한 여성을 가련하고 죄 없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의 바램대로 비록 작품 속 사회에서는 지탄의 대상이 될 지언정, 안나 카레니나는 문학작품의 등장인물로서 가장 불쌍한 캐릭터로 남아 사람들의 동정도 함께 받는다.
행불행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불행이 극적으로 완성될 때에는 사람들의 그릇된 사리분별과 실수가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행동을 자초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랑했던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미묘한 눈빛과 표정 변화에 의해 우리의 행불행은 맥없이 조종당하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악을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악에 감춰진 면모에 대해 궁금해하고, 언제든지 연민을 느낄 준비가 되어있다.
책을 덮으며 안나 카레니나가 나쁜 여자라는 걸 알면서도 알 수 없는 동정에 휩싸여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안나 카레니나가 내 곁에 살아 있다면, 그녀에게 다른 책에서 읽었던 한 구절을 들려주고 싶었다.
인생은 하나의 얼굴로만 사는 것도 아니며,
주사위를 한번 던져서
원하는 눈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체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깨닫기 시작했다.
도시의 냉혹한 심장으로 끌려 들어간 인생이
아무리 불충분하고 덧없고 절망적이라 할 지라도,
우리는 그 인생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강물은 흘러간다.
다시 바다로,
사람들을 떼어놓는 끝없는 바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