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잔혹한 세상에도 한줄기 희망은 있지
자막에 뜨는 문장을 메모장에 구겨넣으며, 이 영화에는 여러가지 취향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포일러 주의!!!
1) 오드 파 나쉬, 향수
향수란 어떤 사람들은평생 한번도 안쓰고 살수 있지만
무슈 구스타브는 죽고 못사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
탈옥을 하고나서 가장 먼저 찾는 아이템이 ‘오 드 파나쉬’라면 향수에 대한 그의 애정을 더 수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인도에 꼭 가져가야 하는 아이템을 고른다면 향수를 고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무슈 구스타브라면 세상 혼자 남게 되어도 ‘오 드 파나쉬’와 함께 무인도를 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향수를 다 쓰게 되면 엉엉 울며 슬퍼할 것 같다.
물론, 금방 다른 인생의 즐거움을 찾아내겠지만!
2) 멘델스, 케이크
보기만 해도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비주얼과
달달한 맛을 가진 케이크.
무슈 구스타브는 이 멘델스로 사람들을 꾀어낸다.
군인들마저 초토화시키는 핑크색 케이크가 칙칙한 군인 들 사이에 하나씩 놓여지면 왠지 모르게 군인들 마저도 조금씩 귀여워진 느낌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핑크색으로 된 상자는 전부다 멘델스 박스로 보이며, 달달한 뭔가를 한입 먹고싶은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영화 끝나고 나오는 시간에 멘델스 박스에 케이크를 판매한다면 매출이 팝콘보다 더 나올지도 모르겠다.
3) 사과를 든 소년, 그림
사람들이 '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작품을 대하는 자세는 두 가지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화이거나, 아니면 아주 비싼 물건이거나.
아주 비싼 물건이라고 생각하고 쫓아가는 드미트리의 손에 박살나는 에곤쉴레 그림을 바라보며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뻔 했다.
아름다운 것들은 그것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사필귀정 덕분에 이 영화는 한층 더 동화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 같다.
1)+2)+3) = ?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 무슈 구스타브다.
그는 오감을 통해 매순간 인생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의 취향은 분명하다.
지금 막 먼길을 떠나려는 사람을 앞에 두고 굳이
‘당신의 매니큐어 색은 소름끼친다’고 말할만큼.
그리고 죽은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당신이 바른 화장품이 뭔지 궁금해요'라고 말할만큼.
까다로운 그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그 매력 때문에 그는 언제나 사람을 몰고 다닌다.
그는 여자들을 사랑하고, 여자들도 그를 사랑한다.
"나는 모든 친구들과 잠을 자요."
이 얘기를 듣고 먼저 느껴진 것은 그의 바람기보다는
박애주의였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가 곤경에 빠져있다하면 수십다리를 건너서라도 위기에서 구해준다. 구스타브의 모험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모습을 여러번 볼 수 있다. 사람들이 구스타브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장면을 보고나선, 구스타브 역시 그 이상으로
도움을 원할 때 진심을 다해서 그들을 도울 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서로를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 도와가면서 인생을 쌓아 '올린다'.
죽음의 위기에서 제로를 구해주고, 멋진 인생을 살수 있게 도와주는 구스타브는 내게 있어 희망, 그 자체이다. 희망에 실체가 있다면 그는 무슈 구스타브처럼 엄청나게 아름다울 것이 분명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몇번이나 뭉클해진다.
우리가 소홀히 여기는 그 무수한 것들이
우리의 삶을 반짝이게 만든다고 이 영화가 말한다.
앞으로 이 세상의 모든 쓸데없는 것들 -예뻐서 차마 쓰지도 못하고 모으는 쇼핑백들, 쓸모라고는 전혀 없지만 사지 않으면 안될것 같은 자그만 인테리어 소품들, 수십개의 텀블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뻐서 산 또 하나의 텀블러 같은 것들- 을 더 사랑해야겠다.
비록 세상은 가끔 믿을 수 없을만큼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윤동주가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만의 파나쉬와 멘델스를
만들고 또 사랑하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