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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Sep 09. 2019

최초의 프로파일러 또한 흔한 회사원일 뿐

미드 <마인드 헌터>



회사를 n년쯤 다니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학교에서 줄곧 시켰던 인적성 검사란

내 직업과 하등 쓸모없다는 사실이다.
과연 세상에 인적성에 맞춰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그저 본능적으로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거나,
누군가는 생계에 휩쓸려 직업을 선택 '당한다'

그 직업인의 옷을 입고 몇 년이 흐르면

없던 적성도 생긴다는 게 나의 결론이다.



셰익스피어는 성격이 운명이라고 했지만,
나는 감히 직업이 운명이라고 말하고 싶다.
1월~3월에 주로 밤샘근무를 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모 직업군은 주로 겨울에 연인과 많이 헤어진다.
그들은 연인 때문에, 또는 고갈될 체력 때문에
가을바람이 쌀쌀해질 때부터

벌써 다가올 내년을 두려워한다.

<마인드 헌터>를 보면서 나는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꼈다.
연쇄살인이라는 단어가 생겨나기도 전,
살인범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리 일어날 살인을 막는 프로파일러.

그들은 자신의 직업과 삶을

분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래에는 마인드헌터 시즌 1,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홀든. 그 이름은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과 같다.
둘 다 자신은 무척이나 성장한 어른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이야기 속에서 타인들에게 둘러싸여

상처와 보호를 동시에 받는 존재다.

마인드 헌터의 홀든은

프로파일링의 신세계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는 조력자 홀트, 애나와 함께

연쇄 살인범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심리를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홀든의 열정은 변질된다.
성공과 돈보다는 범죄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홀든은
살인범들과 인터뷰를 하며,

그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이

그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한다.
이러한 착각은 단순히 프로파일러인 홀든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태도와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바에서 처음 만난 똑똑한 여자 친구는

어느새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방해물처럼 느끼고,
원칙과 절차 따윈 자신의 목적 앞에

쉽게 버릴 수 있는 쓰레기쯤으로 여긴다.


그런 홀든이 시즌 1 마지막화에서

연쇄살인범 에드 켐퍼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시즌 2에선 홀트와 애나의

뒤치다꺼리 대상이 되는 모습을 보면
이 드라마는 단순히

프로파일러의 프로페셔널함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함에 숨겨진 그림자를

드러내는 드라마임을 깨닫게 된다.

시즌 2는 시즌 1,2에서보다

홀트와 애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펼쳐진다.



부인과 입양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홀트.
그는 연쇄살인범 인터뷰를 위해

장기출장이 불가피 하지만,
업무가 진행될수록 자신의 아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 살인사건에서 그의 아들이 저지른 충격적인 행동은

가족 구성원 전체를 허물어버린다.


애나 역시 일과 사랑을 동시에 가꾸는 것에 힘이 부친다.
자신과 반대의 자유분방함에 매력을 느꼈던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 취급을 받은 애나.
프로파일러로서 자신의 역할까지

은근히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자
애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이렇게 <마인드 헌터>는 직업 따로 사랑 따로가 아니라
직업이 우리의 사사로운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회사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개인사가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준다.


장기출장에 지쳐 밥보다는 잠을 택하는 빌의 모습.
매일매일 똑같은 잠복근무와

같은 음식을 먹는 홀든의 모습은
출장지에서 피곤에 찌든 내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멋지고 멋진 프로파일러들의 완벽함이 아닌
찌들고 찌든 직장인들의 권태와 고뇌.
이 드라마를 보며

CSI보다 미생을 더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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