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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해섭 Jun 09. 2019

다시 읽는다, 혐오의 시대에서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해리 포터 시리즈는 책 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2001년의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부터 시작해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까지 10년 동안 숱한 20대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해왔다. 당시 우리 또래였던 해리의 마법 학교 생활과 각종 신비한 생물들, 그리고 악의 축 볼드모트와의 싸움은 현실에서 쳇바퀴만 돌리고 있던 우리에게 마법의 환상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호그와트에서의 마법사들의 삶이 머글들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속 군상은 현실과 다르지 않았고, 작품 속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해준다.




말포이 부자는 순수 혈통이다. 대를 내려오며 그 누구의 피도 머글들과 섞이지 않았으며 재산도 많다. 그러나 주인공 삼총사는 다르다. 로널드 위즐리는 순수 혈통이지만 론의 아버지 아서는 머글의 물건에 대해 연구하고 벌이도 넉넉지 못하다.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해리 포터는 부모 중 한 명이 머글이고 한 명이 마법사인 ‘잡종’이다. 또한 해리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셔서 머글 친척들과 같이 지낸다. 어딘가 ‘불완전’한 주인공과 ‘완전’한 금수저와의 대결은 우리에겐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완전’의 이유가 혈통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도널드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인종 프로파일링까지 주장한 바 있다. 더 나아가 과거 나치는 순수 아리아인이 세계의 지배 인종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대인과 혼혈, 집시, 민주주의자 등을 열등 인류로 지정했다. 말포이 가의 입장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머글과 마법사 모두의 피가 섞인 헤르미온느와 해리는 물론이고 아버지가 머글과 어울릴 뿐인 론에게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순혈주의는 나치주의자들, 혹은 순수 혈통이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혼혈을 비롯한 소수자들을 천시하기 위해 만들어낸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비밀의 방이 열렸다. 후계자의 적들이여, 조심하라.” 살라자르 슬리데린은 고드릭 그리핀도르와의 의견차로 학교를 떠난 뒤 주로 머글과의 혼혈을 제거하기 위해 다른 창립자들 몰래 비밀의 방을 만들었다. 혼혈은 마법을 가르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열등한 학생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밤 호그와트 복도 벽에는 위와 같은 글이 나타난다. 이를 시작으로 호그와트에서는 계속해서 혼혈인 학생들이 공격당한다. 순수 혈통의 후계자가 풀어놓은 비밀의 방의 괴물이 그를 대신해 혐오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후계자의 적들이라 함은, 결국 순수 혈통이 아닌 헤르미온느와 해리 같은 나머지 모두를 지칭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극 중 상황은 소수 인종 등 소수자들에 대해 폭력을 휘두르는 네오 나치를 비롯한 극우주의자들의 행적과도 무관치 않다. 이들은 자신들을 ‘나치의 후계자’라 지칭하며 정치권에도 진출하는 등 무시하지 못할 세력이 된지 오래다. 그들이 먹고 사는 것은 나치에 대한 기억이다. 볼드모트, 다시 말해 톰 리들 역시 마찬가지다. 볼드모트의 사상을 추종하는 죽음을 먹는 자이기도 한 루시우스 말포이는 톰 리들의 일기장을 호그와트에 들어가게 한다. 그 안에 담겨있는 기억으로 어린 나이에 불과했던 지니 위즐리의 정신을 조종해 비밀의 방을 열어 혼혈을 공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혐오범죄는 잠재적 피해자들이기도 한 소수자들에 의해서 가로막힌다. 비밀의 방에서 나온 괴물을 죽인 것은 금세기 가장 위대한 마법사 덤블도어가 아니라, 12살 론과 해리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처럼 상대적 약자가 거대하고 포악한 괴물을 극적으로 처단하는 설정은 아주 오래되었지만, 여기서는 순수 혈통에게 차별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추가해 그 결을 달리 한다. 또한 눈여겨볼 점은, 해리 역시 볼드모트의 힘을 전해 받은 일종의 후계자라는 점이다. 아주 드문 능력인 뱀의 말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그 증거이다. 해리는 이 때문에 전작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서 슬리데린으로 배정받을 뻔 했다. 시리즈 내내 슬리데린은 다른 기숙사에 대해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고 자신들만이 우월하다 믿는 학생들이 있는 기숙사로 묘사된다. 그러나 해리는 스스로 모자의 배정을 거부했다. 슬리데린과 볼드모트의 또다른 후계자가 되어 다른 이를 밟고 올라설 수 있는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 동료들과 더불어 사는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은 어쩌면 역사상 가장 교육적 효과가 큰 영화일지도 모른다. 위에서 언급한 소수자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는 전세계의 아이들이 책으로 읽었거나 스크린으로 보았고, 지금까지도 그 명성이 이어져 어딘가에서는 또다른 어린이가 보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사회는 어느새 혐오로 가득 차 있다. 여성, 외국인, 특정 종교, 가족사 등 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이들과 다르면 ‘비정상’으로 취급하고 언어 폭력을 가한다. 여성과 멕시코인, 무슬림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멈추지 않은 트럼프가 세계 최강대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그래서 더욱 상징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혐오를 배척해야 한다는 것을 호그와트에서 배웠고, 해리처럼 우리가 직접 행동해야 할 때가 왔다. 도비가 인격체로 받아야 할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지 못했던 루시우스에게서 해방된 뒤 강펀치를 날렸던 것처럼 말이다. 해리가 비밀의 방에 살던 괴물을 처단할 수 있었던 것은, 비밀의 방이 열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마음 속 어딘가에서 곪아가던 혐오의 감정부터 스스로 내보이는 것이 그것을 도려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이제 비밀의 방은 열렸고, 바실리스크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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