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더닷츠
가까이 있으면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고들 한다. 반면 가까이 있는데도 아예 그런 게 있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 어느 순간 그의 존재를 알았을 때는 모른 채로 지나온 시간들이 아쉬워지는 것이다. 영화는 1년에 한두 번 볼까말까 했던 사람에게 다양성 영화의 세계가 그러했을 것이고, 인하대생에게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그러했을 것이다.
사실 동인천이라는 장소 자체가 내게는 그런 의미였다. 버스로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있지만 처음 갔던 건 스물다섯은 되어서였던 것 같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서쪽으로 쭉 가야 나오는 곳임에도, 심지어 가까이에 서해가 있음에도 동인천이라는 이름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동인천역에서 내리면 나보다 적어도 두 배의 인생을 사셨을 것 같은 어르신들을 가장 먼저 만난다. 지하철 1호선 대다수를 차지하는 어르신들이 종로 아니면 동인천에 모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주변을 둘러보면 동인천이라는 장소와 사람들이 함께 나이먹었다기보다는, 동인천이 살아있는 존재로 현현된 것이 여기 있는 어르신들처럼 느껴진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추억극장 미림이라는 곳이다. 고전 영화를 틀어주는 곳이다. 다소 산만하고 관람 환경이 크게 좋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상영작이 괜찮다. 우리가 고전 영화라고 부르는 것들이 미림 관객들에게는 당시의 흥행 영화였을 것이다. 지금이 돼서 젊었을 적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 추억의 영화를 보는 것일까 추억을 보는 것일까.
동인천역을 사이에 두고 미림의 반대쪽에, 그러니까 도원역 쪽으로 약간 오면 배다리 헌책방 거리가 있다. 대창서림, 집현전, 아벨서점, 한미서점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그 근처에 별안간 새 책방 커넥더닷츠가 생겼다.
커넥더닷츠는 약간의 가오픈 기간을 거쳐 2018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원래는 베풂책방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정식 오픈 때 커넥더닷츠로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우리의 경험을 점에 비유해 모든 경험들이 선으로 이어질 것이라던 스티브잡스의 말에서 영감을 받아, 책방을 운영하는 경험과 책방을 방문하는 이들이 큼지막한 점이 되어 훗날 선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Connect the Dots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헌책방 거리에서 새 책방이 생겨났다는 생각은 어딘가 낯설다. 그러나 스페이스 빔으로 들어가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가면 헌책방 거리의 정체성을 그대로 담은 듯한 책방 전경을 볼 수 있다. 책들은 물론이고 직접 만든 양초, 고무나무 등 식물들, 그리고 그밖에 앤티크한 소품들이 실내를 꽉 채우고 있다. 장솔비 대표는 "건물 자체가 워낙 오래된 건물이다보니 모던한 가구나 소품, 새것을 들이면 좀 이질감이 들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동인천이라는 공간이 어르신들과 세월을 같이 했다면, 헌책방 거리가 커넥더닷츠라는 작은 공간에 새로 등장한 것만 같다. 이는 전적으로 책방을 운영하는 장솔비 대표의 공이다. 그는 "최대한 이 건물의 오래된 매력을 살려보자는 생각 하나로 중고 가구와 소품을 모았는데 꾸며가다보니 을지로의 레트로 컨셉이 잘 어울렸다. 아버지께서 골동품 이것저것 모으는 것도 좋아하셔서 몇 개 가져다 놓다보니 완성됐다"라고 덧붙였다.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책방에 들여놓을 책도 직접 모두 읽어보고 선정한다. 스스로 읽어보아야 커넥더닷츠를 찾아주는 이들에게 추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제 취향이다. 이를테면 재즈 좋아하고, 프리다, 고흐 등 예술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철학 좋아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관한 책을 들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들인 책들은 장솔비 대표의 평과 함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소개된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의 외로움을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와 같은 신간은 물론이고 근처 아벨서점 등에서 들여온 철학 서적과 소설 등의 헌책들도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공간을 채우는 것은 책과 인테리어만이 아니다. Cigarettes After Sex, 이소라, 검정치마의 음악도 장 대표의 선곡을 거쳐 책방의 공기를 채운다. 노래를 들으며 레모네이드와 함께 책들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커넥더닷츠가 단순한 책방 이상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토록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공간 하나를 채울 수 있는 확고한 취향,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의심 없이 현실로 이루어낼 수 있는 추진력으로 이루어진 한 사람의 인생을 커넥더닷츠에서 본다.
커넥더닷츠는 2호점도 계획 중이다. 자리는 인하대 후문 굴다리 쪽의 약간은 후미진 곳이 될 것이라 한다. 1호점을 운영하며 인프라가 좀 갖춰진 상태이기에 6월 말에서 늦어도 7월 초 오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천 동구 서해대로513번길 15 2층. 운영 시간은 인스타그램에 공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