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에 빠지다
드라이브 인 서커스

비축생활 VOL.12 포스트플라스틱 서바이벌

by 문화비축기지

이번엔 '드라이브 인 서커스'다. 착석부터 퇴장까지, 자동차에 탄 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서커스 공연이 문화비축기지 마당에서 열렸다. 시민 기자 김경원이 보내온 서커스 캬라반 체험기.

글 김경원 | 사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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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에서 언택트 방식으로 서커스 공연을 연다는 소식에 긴장된 마음으로 티케팅에 도전했다. 인기가 높아 예약하기 쉽지 않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온 터였다. 과연 손 써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표가 매진됐다. 취소 표를 줍는 행운이 없었다면 공연은 보지 못 했을 것이다. 그렇게 9월 25일 금요일 저녁, '서커스 캬라반' 공연을 보게 됐다.


오랜만에 문화생활을 즐길 생각에 퇴근하는 발걸음이 가뿐했다. 입장 시각인 공연 시작 30분 전에 맞춰 비축기지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차량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름을 확인하고 체온을 측정한 뒤 기념품이 든 봉투를 수령했다. 봉투 안에는 기념 배지 외에도 손 소독제, 리플릿, 손목 밴드, 볼펜, 문진표와 설문지 등이 들어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문진표를 작성했다.


이윽고 공연을 관람할 렌터카로 안내받았다. 예약할 때 '자가용 미사용' 옵션을 선택했기 때문에 공연장에 마련된 렌터카를 이용하게 됐다. 차가 없는 사람도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주최 측의 배려였다. 차량은 무대를 중심으로 부채꼴로 배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공연을 감상할 때 다른 차에 시야가 방해받는 불편함이 없었다. 옆 차와는 지그재그로 사선을 이루도록 했는데, 사람들이 차량을 드나들 때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안전에 대한 염려를 크게 덜고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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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작품은 ‘화이트 큐브 프로젝트’의 <조타;Steer>이었다. 무대 중앙에 설치된 커다란 화이트 큐브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큐브를 쌓아 올리거나 해체하며 구조물을 활용해 다양한 연출을 보여줬다. 말없이 봉을 던지고 받는 묘기와 폭력을 형상화한 무용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의 의미를 고민하게 했다. 한편 대사나 노래를 통해 직접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힘들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좋아질 테니 바로 지금, 여기서 원하던 그곳을 향한 항해를 시작하자는 메시지가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작품 후반부, 출연자들이 회전하는 봉 위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항해하는 모습을 표현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조명 바깥의 검은 어둠이 바다처럼 느껴져 밤 공연에 어울리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작품은 '서커스 디 랩'의 <날갯짓>이었다. 크레인으로 들어 올린 무대가 공중에서 등장해 무대 교체 과정이 지루하지 않았다. 중국 요요인 '디아볼로'를 활용해 이별과 사랑을 표현한 감성 서커스 작품이었다. 줄 위에서 흘러 다니는 디아볼로는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를 연상하게 했다. 디아볼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아티스트의 모습에 박수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줄과 줄 사이를 이동하며 엮어나가던 줄을 가위로 끊는 장면으로 시작된 작품은 한옥순 시인의 '나비가 앉았던 자리' 낭송으로 마무리됐다.


흔히 서커스라 하면 깜짝 놀랄 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토록 철학적인 메시지와 서정적인 서사가 담긴 서커스라니, 신선했다. 1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가 준비한 이번 공연은 원래 '서커스 캬바레'란 이름으로 문화비축기지에서 2018년부터 열던 서커스 축제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많은 인파가 몰리는 축제 대신 드라이브 인 방식의 공연으로 진행했다는데, 문득 축제의 풍경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공연은 막을 내렸다. 퇴장 역시 차례로 질서 있게 진행됐다.



김경원

비축기지의 이웃 동네, 상암동 주민이자 마포구고용복지센터의 청년 활동가. 비축기지와 근처 공원을 도는 '45분 따릉이 코스'를 개발했으며, 마포구민이 사랑하는 동네 공원을 <비축생활>에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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