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생활 VOL.13 에코×아트×비축
삶과 사회를 바꾸는 예술의 힘은 더 이상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제프 보이스가 미술관 문턱을 넘어 오크나무를 심은 것처럼, 세상이 변하길 바란다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글 김민
2019년 12월, 나는 영국의 갤러리와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휴가철을 맞은 중산층이 몰려드는 콘월 미술 시장과 영국 미술의 최전선인 런던을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런던의 유서 깊은 공공 미술관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큐레이터, 로라 스미스를 만난 것도 이 때다. 그가 테이트 모던에서 기획한 <버지니아 울프: 그의 삶과 글에서 영감을 얻은 전시>에 관해 인터뷰하며 요즘 관심사를 물었다. “미술관은 언제나 당대 가장 진보적인 사고에 관심을 갖기 마련이죠. 요즘 제게 중요한 이슈는 기후변화와 생태입니다. 2020년에는 100% 재활용 가능한 전시를 기획 중이에요.”
인류세와 기후변화는 실로 지난해 미술계의 빅 이슈였다.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은 전시장 하나를 마치 쓰레기가 떠다니는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이 나도록 구성했다. 황금사자상을 받은 리투아니아관은 기후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을 오페라 형태로 꼬집었다. 국내 미술관에서도 생태를 키워드로 여러 기획을 선보였다. 버섯을 건축의 한 형태로 보고 고찰하거나 문어의 관점에서 바라본 세상을 보여주고, 느닷없이 미술관에서 막걸리를 담그기도 했다. 이런 작품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와 7000그루의 오크나무가 떠올랐다.
1982년, 독일 카셀의 국제 미술제 ‘도쿠멘타7’에서 보이스는 ‘7000그루 오크나무(이하 오크나무)’를 발표했다. ‘도시 행정을 대신하는 도시 숲 만들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역사에 남을 프로젝트가 된다. 생태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을 생태 예술이라 한다면, 보이스의 이 작품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프로젝트는 미술관 앞마당에 놓인 7000개의 돌덩어리에서 시작됐다. 이 돌은 카셀시에 나무를 한 그루 심을 때마다 미술관에서 탈출해 그 옆에 세워졌다. 총 700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미술관 앞마당이 공터가 되는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돌무덤을 치우기 위해 가정부터 지역 협의회, 학교, 유치원까지 도시의 모두가 힘을 합해 나무를 위한 자리를 내주었고, 많은 이들의 자발적 참여로 5년 뒤 카셀에는 나무 7000그루가 생겼다. 이것만으로도 오크나무를 생태 예술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도시에 나무가 늘어난 것보다 더 큰 변화가 있었으니, 바로 작품에 참여한 사람들의 의지와 인식이었다. 보이스는 “나무 심기는 단순히 환경보호 차원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무를 심으며 사람들의 인식을 깨운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이스의 오크나무가 벌써 40년 전 프로젝트임을 생각하면, 최근 미술관을 점령한 생태를 내건 작품들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게 된다. 오크나무 이상의 사회적·미학적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반세기 전 제시된 예술 형태를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을까. 게다가 당연했던 일상이 코로나19 사태로 한 치 앞도 모르게 불안정해진 지금, 1년 전 생태 예술에 쏟아진 관심 역시 미술계의 한때 유행에 불과했던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사실 생태적인 메시지만으로 생태 예술이라는 장르를 구획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예술 작품은 다양한 의미에서 해석되는 것이 기본이다. 구호에 그치는 ‘예술’이라면 그보다 ‘캠페인’을 벌이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어떤 것은 생태 예술이 되고, 어떤 것은 생태 캠페인에 그칠까. 보이스의 오크나무에서 중요했던 또 하나는 프로젝트의 부제 ‘도시 행정을 대신하는 도시 숲 만들기’다. 상명 하달식 행정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나무 심기가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숲 만들기가 생태에 대한 인식을 높인다는 함의를 담고 있어서다. 산업혁명의 산물인 낡은 관료제와 모더니즘이 저물고, 개별성과 창의성이 펼쳐지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보이스는 예견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체가 되라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이런 메시지를 보이스는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이라는 개념을 통해 더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사회 조각이란 말 그대로 사회 자체가 조각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행정을 비롯해 삶의 모든 측면이 마찬가지다. 우리가 창조적으로 접근하면 그 자체가 예술이다. 보이스는 오크나무에서 한 그루 한 그루가 개인의 일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장소에 심은 나무가 모두 다르게 자라듯, 개인의 삶도 그 자체로 온전한 세계다. 보이스의 사회 조각을 한국식으로 변주하면,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에 가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발상으로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것 자체가 예술이라는 이야기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미 개인의 삶은 사회가 빚어내는 작품이다. 큰 조직에서만 가능하던 일을 이제는 1인 유튜버나 스타트업이 해내는 것을 목격한다. 이런 맥락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을 조각하는 예술가로서 잠재력이 있다. 자신의 삶과 이를 둘러싼 환경을 깊이 사유한다면, 기후변화에 민감해지고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보이스의 프로젝트는 이 대목에서 나무 심기 운동을 넘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나무를 통해 삶과 지구를 이야기하고, 들판의 나무처럼 개인의 삶이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미술관과 예술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예술의 경계 또한 시민과 사회로 확장시켰다.
2019년 이후의 생태 예술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보이스의 사회 조각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등교 거부 운동으로 기후 위기에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그레타 툰베리의 삶이 가장 멋진 생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과 사회를 바꾸는 예술의 힘은 더 이상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어떤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세상에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은 미술관에 있더라도 예술이라 하기 어려울 것이다. 보이스가 미술관 문턱을 넘어 오크나무를 심은 것처럼, 우리도 울타리를 넘어 예술가의 마음으로 용기 내 목소리를 높여보면 어떨까.
김민│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관념이 아닌 삶과 몸에서 나오는 예술의 힘을 믿는다. 예술에 관한 글도 그렇게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