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생활 VOL.13 에코×아트×비축
산업혁명 이래 눈부신 기술 발전은 언제나 환경 파괴를 동반했다. 인류가 지구를 망가뜨리는 데는 10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반성하고 생태계를 지속 가능하게 보존하려는 움직임 또한 꾸준했다. 어둠을 밝히는 또 다른 빛, 생태 운동과 예술의 역사.
산업혁명의 영광과 생태학의 시작
1851년, 런던 수정궁에서 세계박람회의 효시가 된 ‘만국산업박람회’가 열린다. 전시장을 채운 자동 방적기와 방직기, 선박 엔진과 기중기 등은 당대 과학기술의 성과를 드러내는 상징물이었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해 유럽 전체로 확산된 산업혁명은 놀라운 기술 발전과 함께 자연에 대한 파괴적 개발과 광범위한 환경문제를 가져왔다. 이에 맞서 자연을 서로 연결된 전체로 인식하고 보호하려는 움직임 또한 이 시기에 가시화된다.
<종의 기원> 출간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확신하며 신의 위치에 올라서려던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돌려놓은 것이 다윈의 진화론이었다. 인간 또한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진화를 통해 탄생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인식은 이후 생태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생태학’의 탄생
독일의 진화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 새로운 과학을 지칭하기 위해 ‘생태학ecology’이라는 용어를 제안했다. 그는 생태학을 “자연계의 질서와 조직에 관한 전체 지식”으로 정의하며, 이 학문이 개별 생명이 세계 전체와 맺는 ‘관계’에 대한 과학임을 분명히 했다.
초기 환경 단체의 등장
1865년 설립된 공유지보전협회와 1892년 창립한 시에라클럽은 각각 영국과 미국에서 최초로 생긴 환경 단체였다. 이들은 파괴적 개발에 맞서 ‘자연 보호’를 주장했다.
달 탐사 시대와 생태주의 운동의 대두
생태 미술Eco Art이란 용어가 정립되기 전이지만, 현대적인 의미의 생태 운동이 시작되고 생태 예술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미술계의 움직임이 포착되는 시기다. 1960년대 후반은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성공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축적한 과학기술이 정점을 찍은 때였다. 인류의 무한한 가능성에 고양되는 한편, 기술 문명을 반성적으로 바라보며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흐름이 뚜렷이 나타났다.
<침묵의 봄> 출간
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당시 무분별하게 쓰이던 DDT 살충제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파헤친 책.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과학기술이 다른 동식물은 물론,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이후 급진적인 생태 운동을 촉발했다.
생태주의 운동의 본격화
지금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는 환경 단체인 그린피스(1972), 시셰퍼드(1977), 페타(1980) 등이 이 시기에 등장한다. 이들은 자연과 미래 세대에 대한 생태적 책임감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행동주의를 채택했다. 같은 시기 정치적 의사 결정에 생태주의가 개입할 것을 주장하며 등장한 녹색당은 1979년 스위스에서 처음으로 의석을 확보했고, 1983년 독일에서 원내 교섭단체 규모로 성장했다.
요제프 보이스의 7000그루 오크나무
당대의 혁신적이고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미술계에서는 화이트 큐브로 상징되는 미술관을 벗어나고자 다양한 실험이 일어났다. 돌무더기를 미술관 마당에 부러 놓고 도시에 나무가 한 그루 심길 때마다 그 옆으로 옮긴 요제프 보이스의 혁신적인 시도 또한 이러한 흐름 속에 있다.
기후 위기와 실천하는 생태 예술
1980년대 이후 기온이 꾸준히 상승해 20세기 후반은 최근 1000년 간 가장 기온이 높은 시기였다. 전에 없는 기온 상승과 점점 더 잦아지는 이상 기온 현상이 1990년대에 이르면 ‘기후변화’라는 명칭으로 의제화된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과 함께 전 지구적 사태에 맞서 생태적 실천을 시도하는 예술이 부각된다. 모든 존재는 상호 의존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태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미적 체험을 통한 인식의 전환을 추구한다. 2000년대 이후 파리에서 열린 <클라이막스>(2003),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예술과 기후>(2006) 등의 전시는 위기감 심화에 따른 예술계의 대응을 보여주는 예다.
셸리삭스 ‘교환 가치: 보이지 않는 삶의 이미지들’
자본주의하의 연결과 상호 의존성에 주목한 작품이다. 1970년대부터 바나나 껍질을 말려 시트를 만드는 작업을 해온 삭스가 농부가 생산한 바나나가 자신에게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됐
다. 유통 과정을 거슬러 카리브해의 바나나 농부를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이 전시장의 바나나 박스에서 흘러나오도록 했다.
데이비드 버클랜드의 ‘케이프 페어웰 프로젝트’
버클랜드는 탐사 팀을 꾸려 기후 위기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스피츠버그군도로 탐사를 떠났다. 참가자의 결과물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개됐는데, 그는 ‘가라앉는 얼음’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발표했다. 무너지기 직전의 빙산을 촬영한 그의 영상은 한번 보기 시작하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다.
마르쿠츠 베른리의 ‘아쿠아포밍 마스’
한국화학연구원이 진행한 기획전 <기후변화 대응 화학 특별 예술전: 화성에서 온 메시지>에서 마르쿠츠 베른리는 관람객을 상상 속 화성으로 초대한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화성에 가 식량 문제를 고민한다는 설정으로, 전시실은 소변을 이용한 수경 재배 실험실이다.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된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흥미로운 방식으로 관객들에게 인지시킨다.
참고 I
유현주, ‘삶을 위한 예술, 생태 예술들의 탐험’, 2020
정헌이, ‘통섭학으로서의 생태 미술: 생태주의 미학의 새로운 전망’,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