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생활 VOL.13 에코×아트×비축
생태 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온 인플루언서 13인에게 문화비축기지에 초대하고 싶은 생태 예술을 물었다. 순수 예술부터 넷플릭스 다큐멘터리까지, 생태에 관한 당신의 인식을 바꿔놓을 13가지.
정리 정지민 | 그림 강명주
페인팅
“조나스 우드의 페인팅을 보고 있으면 나를 둘러싼 공간의 녹색을 다시 찾아보게 된다. 다양한 형태의 식물이 깊이가 다른 채도로 높낮이가 다양한 풍경을 만들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항상 주변에 존재해 간과하기 쉽지만, 새삼 자연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다채롭게 만드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인간도 결국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밖에 나가지 못하는 코로나 시대에 겸허히 떠올린다.”
일러스트레이터 윤예지 | 유머를 관찰하고 이야기와 추억을 그린다.
조각
“미국 플로리다주 포트로더데일 거리에 거대한 조각상이 가슴을 열어젖히고 있다. 고사리로 덮인 터널이 드러나고 그 아래로 사람들이 통과한다. 14톤의 유리섬유 강화 콘크리트로 만든 다니엘 포퍼의 ‘Thrive’다. 그는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 출신의 예술가로, 압도적인 스케일의 공공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하며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기획자 소란 | 퍼머컬처 디자이너. 전환마을은평 대표를 맡고 있다.
다큐멘터리
“드림이, 소울이와 함께 본 8부작짜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예요. 특히 드림이가 좋아해서 아껴두었다가 한 편씩 봤습니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자연을 느끼고 체험하기 힘든 시기죠. <우리의 지구>를 보고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많이 해소했어요. 다큐멘터리에 감명받아 자연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수한 아이들을 보며 저 자신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 또한 반성했어요. 영상에 담긴 경이로운 자연의 모습 사이로 인간의 이기심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 같이 보고 팬데믹 이후의 삶을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인 하하 | 세 아이의 아빠이자 24년 차 방송인.
설치
“정재철 작가는 2013년부터 해양 오염과 바다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예술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블루오션 프로젝트, ~2013’을 이어왔다. 전국의 해안을 다니며 쓰레기를 채집하고 경로를 추적하는 과정을 프로타주와 지도, 영상, 사진 등의 방법으로 기록했다. 전시 공간이라는 새로운 맥락에 배치된 해양 쓰레기는 우리 삶이 처한 상황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범지구적 문제 해결을 위해 예술이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 끊임없이 탐구한다. 전면이 유리로 된 T1에 ‘크라켄 부분-제주, 2019’를 놓는 상상을 해보았다. 매봉산이라는 배경에 놓인 바다 쓰레기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기대된다.”
프리다이버 변수빈 | 지속 가능한 바다의 미래를 고민하고 행동하는 제주의 프리다이빙 그룹 ‘디프다’를 이끈다. 나, 그리고 모두의 바다를 지키고 생명 다양성을 존중하는 그린 다이빙을 지향한다.
비디오아트
“당장 지구가 망한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일 것 같은 나날이다. 그래서일까.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한 철학자의 문장을 생각나게 하는 백남준의 ‘사과나무’가 떠올랐다. 33개의 TV 모니터가 나뭇잎처럼 반짝이는 형상을 한 이 작품은 작가의 미디어생태학에 대한 사유를 보여준다. 잘 알다시피 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저장하고 산소를 배출해 지구 생태계를 순환시킨다. 또 그 자체가 에너지 정보를 운반하는 미디어다. 텔레비전 역시 빛 에너지로 정보를 유통시키는 미디어다. 백남준은 우리를 둘러싼 중요한 환경 요소로 나무와 텔레비전을 꼽고, 이를 미디어로 해석했다. 인간은 기술과 자연을 구분하려 하지만, 실상 구조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간파하고 있던 듯 하다. 생태학적 사유를 선취한 백남준의 작품은 지금도 유효하고, 날마다 새롭다.
큐레이터 구정화 | 쌈지스페이스 큐레이터를 거쳐 경기문화재단에서 ‘열개의 이웃’, ‘새로운주문자’, ‘내일을 여는 책방’ 등의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2011년부터 백남준아트센터와 경기도미술관에서 전시와 공공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애니메이션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를 추천하고 싶다. 숲과 정령들을 지키고자 하는 산의 관점으로 보면, 숲을 파괴하는 에보시는 분명한 악인이다. 그러나 에보시의 입장 또한 간단히 잘라 말할 수는 없다. 여성과 병자, 노인이 자립하고 살아가는 마을을 건설하고자 하는 그로서는 인간이 파먹고 살 땅이 필요하니까. 인간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자연의 훼손으로 이어지는 걸까?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보아하니 미야자키 하야오도 뚜렷한 답을 찾은 것 같진 않다. 대신 모두가 오래 곱씹어봐야 할 질문을 남겼다.”
TV 칼럼니스트 이승한 | 글쟁이, TV 칼럼니스트, 비온뒤무지개재단 이사.
공예
“섬유 작가 김태연은 폐비닐로 다채로운 공예품을 선보인다. 생태를 강조하며 쓰고 버린 것을 활용해 예술 작업을 하는 이들은 그뿐만이 아니지만, 그가 미적인 부분을 놓치지 않는 작가라는 점이 좋다. 그
의 공예 작품에는 비닐의 광택과 감촉이 남아 있다. 단지 생태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닐 특유의 아름다움에 반해 작업을 이어가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사이클링 아트가 우선시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작가마다 철학이 다를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술 작품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쪽에 좀 더 끌린다.”
기획자 임성연 | 2009년부터 무소속연구소에서 예술의 사회적 개입에 관심을 갖고 활동 중이다. 2013년부터는 연희동에서 카페 보스토크와 전시 공간 공공연희를 운영하며 지역 문화를 연구해왔다.
건축
“전라남도 신안군의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 작업에 참여한 장 미셸 후비오를 추천한다. 특징 없던 섬이 길을 조성하며 조용히 사색하며 산책할 수 있는 힐링 여행지가 되었는데, 함께 지은 12개의 예술적인 건축물 가운데 그는 5번 필립의 집, 6번 바르톨로메오의 집,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을 맡았다. 굽은 나무 같은 현지 재료를 활용하는 등 그의 작품은 생태적인 느낌을 준다. 어부였던 야고보에서 착안해 물고기 모양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들고 성경에서 물고기가 상징하는 바를 건축물에 구현하기도 했는데, 뜯어볼 구석이 많다.”
여행 감독 고재열 | 어른의 여행을 고민하는 여행 감독. 재미로재미연구소에서 여행 불가 시대에 열심히 여행을 궁리 중이다. 캐리어도서관 프로젝트로 오지에 책 캐리어를 나르고 있다.
아티스트
“생태 예술가를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거장 영화감독으로서의 이명세가 아닌 서울환경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자 실천하는 예술가로서의 이명세를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환경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채식에 도전하는 등 그가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저 역시 생태 이슈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 작업을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실제 삶에서까지 생태적인 실천을 이어가는 진정성 있는 예술가는 의외로 흔치 않은 것 같아요. 후배 예술가로서, 예술과 삶이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 묻는다면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문화비축기지에서 그런 주제로 이명세 감독과 예술인 워크숍 같은 행사를 열어도 좋겠어요.”
가구 디자이너 문승지 | 기후 위기, 플라스틱 문제 등 생태와 관련한 여러 이슈에 디자이너의 관점으로 접근해 메시지를 담은 가구를 선보인다. 개인 브랜드 ‘MUN’과 아티스트 레이블 ‘팀바이럴스’ 이름으로 활동한다.
드로잉
“비자림로의 허무맹랑한 벌목을 본 많은 이들이 개탄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사라지는 나무를 100일간 도화지에 고이 옮겨 심었다. 다시 나무를 심고 있음을 숲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그곳에나무를심다’ 프로젝트의 작가 홍시야다. 생명을 대하는 삶의 태도가 예술과 만났을 때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그의 드로잉 100점으로 실감할 수 있다.”
에디터 최정순 | 제주에 머물며 로컬 매거진 <iiin>을 만든다.
시인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의 물질적 타락을 비판한 대표적인 생태주
의 예술가다. 그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꿈꿨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무 곳도 나가지
못하고 직장과 집을 분간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블레이크가 봤다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주에는 아직 타락하지 않은 곳이 엄연히 존재할 거라고. 그곳에서 세상은 아직 망가지지 않았고, 에덴동산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인류는 어리석고 엄격하기만 한 이성의 법칙이 아니라 마음과 직관의 지배를 받는다고. 사람들은 헛소리로 자기가 아는 것을 뽐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상상력을 발휘하며 놀라운 것을 창조하며 살 거라고. 그곳에서 우리는 뒤틀린 성장의 욕망도, 변화의 욕구도 뒤로한 채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만족하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며 행복해할 것이다.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닌 바로 지금, 이 순간일 것이다.”
기획자 김민성 | 합정동에서 종이잡지클럽을 운영한다.
설치
“전혜주 작가의 미세 입자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우리가 사회와 자연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자연이라고 하면 거대한 담론이나 스펙터클한 공간 경험을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풍경에 대한 기록을 세밀한 입자를 통해 제시한다. 보다 보
면 자연스레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묻게 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세계가 오히려 자연이 우리 가까이에 공생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기획자 김보현 |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예술 비평 잡지 <뭐뭐링>을 만든다. 요즘에는 접경지대, 한국성, 시선의 권력에 대한 전시를 기획 중이다.
건축
“조호건축의 이정훈을 추천합니다. 제가 머릿속에 떠올린 작품은 제주도 클럽나인브릿지에 있는 파고라입니다. 골프장 건설 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400여 년 된 팽나무를 중심 삼아 지은 건축물로, 자연과 건축의 공생 가능성을 타진한 사례입니다.”
건축가 우의정 | 메타건축사무소를 이끌며 늘 새로운 건축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