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포로
모에레누마 공원

비축생활 VOL.13 에코×아트×비축

by 문화비축기지

눈의 계절이 왔다. 이맘때면 하얀 눈옷을 입은 채 육중한 몸집을 드러내던 삿포로 모에레누마 공원(モエレ沼公園)의 모에레야마(モエレ山)를 떠올린다.


글·사진 김정화




공원을 찾은 건 2016년 1월 하순이었다. 당시 삿포로는 눈 축제를 앞두고 있었다. 시내 곳곳에 쌓여 있던 성인 키 높이의 눈은 공원이라고 예외를 두지 않았다. 나와 일행은 털모자와 장갑, 두꺼운 양말과 부츠로 단단히 무장한 채 공원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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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땅에서 공원으로


모에레누마 공원은 서울의 월드컵공원과 닮은꼴이다. 두 곳 모두 쓰레기 매립지에서 공원으로 변화한 역사를 갖고 있다. 모에레누마 공원은 1978년부터 1990년까지 삿포로에서 발생한 쓰레기 270만여 톤을, 월드컵공원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8.5톤 트럭 1300만 대분의 쓰레기를 받아 처리했다. 월드컵공원은 2002년, 모에레누마 공원은 2005년 시민에게 개방되는 등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시기가 거의 같거니와, 크기 또한 엇비슷하다. 노을공원, 하늘공원, 평화의공원 등 4개 공원으로 이루어진 월드컵공원의 부지는 230만m2고, 모에레누마 공원은 그보다 조금 모자란 190만m2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공통점은 두 공원의 탄생 배경이다. 도시의 부산물을 처리하던 쓰레기장은 도시 녹지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재발견되었다. 100m 높이의 쓰레기 더미였던 난지도는 2002년 한일 월드컵 개최를 위한 서울시의 ‘상암 새천년 신도시 계획’에 따라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모에레누마 공원 부지에 있던 쓰레기 매립지는 도시를 공원과 녹지의 연속된 띠로 둘러싸려는 삿포로의 1982년 ‘환상 그린벨트 구상’의 핵심 공원으로 기획됐다. 그 결과 공원은 남서부와 달리 녹지가 부족했던 삿포로 북동부에서 가장 큰 녹지로 자리 잡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쓰레기 매립지에서 변신한 공원들은 ‘환경 재생 공원’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악취와 메탄가스로 가득했던 죽음의 땅에서 동식물이 살 수 있는 생명의 땅으로 되살아났다는 의미를 강조한 이름이다. 그러나 모에레누마 공원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는 출생의 비밀도, 환경 재생이라는 착한 의도도 아니었다. 공원 입구에서 마주한, 산이라고 해도 될 만큼 높은 언덕 ‘모에레야마’의 생동감이었다. 이 언덕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의 풍경이 한겨울 삿포로의 공기만큼이나 내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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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더미 위에 빚은 산, 바다, 숲


쓰레기와 건설 잔토로 만든 높이 52m의 인공 산 모에레야마는 일본계 미국인 조각가 이사무 노구치의 유작이다. 조각가가 디자인한 공원이라고 해서 곳곳에 조각품이 서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이사무 노구치는 공원을 조각품의 배경으로 대하지 않았다. 조경가이기도 했던 그가 빚어낸 것은 지역 사람들의 삶을 담을 수 있는 산과 바다, 숲 같은 지형이었다. 삿포로 북동부의 유일한 산 모에레야마가 도시 전망대이자 겨울 스포츠를 위한 언덕이라면, 산호로 포장된 둥근 그릇 모양의 얕은 연못인 모에레비치는 여름이 되면 해변 역할을 한다. 모에레비치 옆 1900여 그루의 벚나무와 126개 구조물로 만든 사쿠라노모리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로 가득한 모험의 숲이다.


아쉽게도 이 중 진면목을 확인한 것은 모에레야마뿐이다. 한겨울, 공원을 찾은 삿포로 시민들은 간간이 스키를 즐기며 눈 위에 길을 만들거나 썰매를 타기 위해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벚꽃 사이로 아이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지고,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로 모에레비치의 물결이 일렁이는 다른 계절의 공원 역시 보고 싶어졌다. 이사무 노구치의 숲과 바다가 생동하는 풍경을 만나기 위해 아무래도 다시 공원을 찾아야 할 것 같다.




김정화 | 근현대 정원과 공원에서 식물·아이디어·제도의 국제 교류를 연구하며 조경학을 가르친다. 도시경관연구회 보라(BoLA)의 멤버이며, 2021년부터 이탈리아의 막스플랑크예술사연구소Kunsthistorisches Institut in Florenz-Max-Planck-Institut에서 연구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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