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조경사 김봉찬의 정원 보는 법
인투 더 와일드

비축생활 VOL.13 에코×아트×비축

by 문화비축기지

그의 정원은 하나의 생태계다. 물이 흐르고 미생물이 번식하며 곤충이 찾아든다. 갑작스레 낯선 곳으로 옮겨진 식물도 이내 뿌리를 내리고 새 삶을 받아들인다. 생태 조경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전인 1990년대부터 생태학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어온 생태 조경사 김봉찬과 문화비축기지를 걸었다. 그가 말하는 문화비축기지 디자인과 생태 정원.


글 정지민 | 그림 강명주




① 조감(鳥瞰)하라

“문화비축기지의 디자인을 감상하는 첫 번째 포인트는 위에서 보는 것이다. 뒤스부르크나 하이라인 공원 같은 다른 산업 유산 재생 사례와 기지를 차별화하는 지점은 산을 파내고 탱크를 심었다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산을 파낸 절단면이나 땅속의 질감을 볼 수 있다. 탱크 외벽을 유리로 교체한 T1이 가장 단적인 예다. 안에서 보면 뚫고 내려간 지형 속으로 빛과 바람, 비가 들어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 탱크 하나하나가 각자의 어둠을 품고 있다. 매봉산 정상이든, 높은 곳에 올라가 그 어둠을 가장 먼저 감상해야 한다.”


② 탱크의 압력

“기본적으로 산업 유산 재생 공간이 주는 감동이 있다. 산업용 건축물에는 집이나 사무실 같은 일상적인 공간은 줄 수 없는 육중함과 압도하는 느낌이 있다. 거대한 덩어리가 주는 압력과 팽창하는 느낌, 특유의 거친 질감 등은 그 공간이 완전히 다른 맥락에서 열렸을 때 뜻밖의 감동을 준다. 문화비축기지도 마찬가지인데, 건축이 그 점을 제대로 살렸다. 탱크마다 개성이 있으며, 전체가 조화를 이룬다.”


③ 두 세계의 만남

“산업 유산 재생 공간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동의 핵심을 정의하면 두 세계의 만남이 아닐까. 전혀 다른 두 세계의 만남에는 예술적인 구석이 있다. 사람과 산업 유산의 만남은 오히려 부차적이다. 매봉산의 절단면과 그곳에 자란 풀, 탱크와 하늘, 비바람과 콘크리트 구조물 등 자연과 산업 유산의 만남이야말로 공간을 감동적으로 만든다. 버려진 공장 지대는 그대로 두면 의외로 빠르게 종 다양성이 높은 야생으로 변한다. 사람이 떠나면 갖은 잡초와 쥐, 고양이, 메뚜기 등 여러 생명이 그곳에 움튼다. T4 시멘트 외벽 틈에서 자라난 오동나무는 그렇게 찾아 들어 살아 남은 독립군이다. 석유비축기지 자체가 육중한 디자인의 공간이기에 크고 작은 독립군을 넉넉히 품을 수 있다.”


④ 생태 조경의 관점

“가장 아름다운 건 탱크에서 바라본 매봉산 절단면의 칡덩굴이었다. 생태 조경의 관점에서 아쉬웠던 건 이곳에 보이지 않는 철책이 있다는 점이었다. 이 철책은 일정 범위 이상으로 덩굴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공간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예 걷어내진 않았지만, 잘 닦인 길과 주위를 덮은 잔디가 주를 이루고 칡덩굴의 자리는 철책 밖으로 정해져 있는 듯했다. DMZ를 방문했을 때 가장 감동적이었던 것 역시 울타리를 넘어온 이름 모를 풀들이었다. 건너편 세계에서 목숨을 걸고 온 상징적인 존재다. 정원에 대한 우리 고정 관념이 이 생명을 넘어오지 못하게 철책 밖으로 밀어낸다.”


⑤ 야생 정원의 꿈

“이렇게 탈출하고 도주한 생명, 위반하고 경계를 넘어온 생명으로 이루어진 정원을 꿈꾼다. 칡덩굴 역시 디자인이 될 수 있다. 사람이 빠져나간 공간에 가장 먼저 가지를 뻗는 칡 같은 덩굴류는 숲의 일생에서 말하자면 사춘기다. 덩굴의 시기를 넘어야 종 다양성이 높아지고, 무성한 원시 숲으로 갈 수 있다. 그러므로 경계를 넘어 뻗어오는 덩굴은 걷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식생을 정돈해 땅으로 길을 내지 않고 탱크와 탱크를 다리로 잇는 상상을 한다. 아래는 내버려두고, 야생이 꿈틀거리고 점점 짙어져 그들 나름의 속도로 발전하는 것을 위에서 지켜본다. 석유 탱크를 묻을 때 매봉산의 자연 식생은 사람에 의해 훼손됐다. 탱크를 연결하는 다리는 그 이후 야생이 어떻게 다시 복귀하는지 고스란히 볼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⑥ 숲은 민주적이다

“문화비축기지는 나름의 미학이 있고, 그건 지금도 잘 살아 있다. 매봉산 절단면의 칡덩굴에서 이어진 단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따름이다. 원래 숲은 민주적이다. 수많은 생명이 그 속에서 질서를 지키며 공생한다. 꽃이 나비를 부르고, 그 도움을 받아 씨를 뿌리듯 생명은 생명을 부른다. 서로를 부르고 불러 여러 생명이 더불어 사는 것을 생태계라 한다. 생명을 쫓아낸 인공적인 정원에 맞서 새와 곤충, 미생물에까지 민주적 질서를 확대하고 함께 잘 살 방법을 고민한 것이 생태 정원의 출발이었다. 생태 조경의 관점에서 더 무성하고 야성적인 문화비축기지를 잠시 상상해보았다.”

KakaoTalk_20210125_144327964.png




김봉찬 | 2002년 포천 평강식물원, 2007년 제주 비오토피아, 2015년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2019년 아모레 성수 등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로 국내에 생태 조경을 선보여왔다. 2018년에는 오름과 습지 등 제주의 자연을 모티브로 아버지의 귤밭을 정원 카페 ‘베케’로 탈바꿈시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삿포로 모에레누마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