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축생활 VOL.15 오! 영감의 탱크
6개의 탱크로 구성된 문화비축기지는 석유를 비축하던 공간에서 문화를 담는 일상으로 변모한 담대한 장소가 됐다. 유형화된 구조를 벗어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술을 경험케 한다.
글 우의정(건축사사무소 메타 대표이사)
문화비축기지는 축조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6개의 탱크는 서로 다른 언어와 구법으로 조성됐다. 석유파동 이후 1976년 마포구의 산지에 유류 탱크를 구축하기 위해 구릉에 길을 내고, 협곡을 만들어 그 틈에 탱크를 묻었다. 거대한 금속 덩어리를 놓은 뒤, 협곡과 길에 다시 흙을 덮어 눈에 띄지 않게 숨겼다. 석유 기지를 문화비축기지로 다시금 설계한 건축가는 그 당시 건축의 기억을 복기하듯 협곡을 들어내고 다시금 틈을 내 일상의 공간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줬다. 문화비축기지는 최소한의 개입을 통해 과거의 기억에 현재의 새로움을 더한 ‘혼성의 풍경’을 이룬다. 일상의 영역에 존재하는 비일상의 장소는 특별한 전시 공간이 됐다. 일반적으로 성격이 서로 다른 장소를 연결할 때, 경험의 연속성을 위해 두 영역 사이에 전이 공간을 두어 자연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유도한다. 문화비축기지의 전시 공간은 다른 태도를 취한다. 여러 탱크를 연결하는 일상의 길을 걷다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입구를 따라 걸어가면 조금 전 자리했던 등 뒤의 일상과는 전혀 다른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순간적인 새로움과 놀라움의 경험을 주는 방식은 꽤 매력적이다. 탱크 내부를 경험하는 방식도 다르다. 공간의 성격이나 동선 체계를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기에 기획자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공간의 질서가 이용자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오고, 일상적이지 않은 구조와 재료는 관객을 잠시나마 의외의 장소에 놓이게 한다.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는 분야가 있다. 공간이 사람의 신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분석해 사람을 위한 건축을 고민하는 학문이다.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이 인간의 심리를 유형화한 연구는 공간의 형태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건축가들은 공간의 특성을 건축으로 변환해 타이폴로지(typology, 유형화)를 만들어왔다. 문화비축기지의 공간은 전시장 타이폴로지의 범주를 벗어났다. 진입 방식을 비롯해 공간의 넓이와 높이의 비례가 다르고, 창이 있을 법한 곳에 창 대신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빛을 끌어들였다. 공간의 지닌 힘 덕분일까, 전통적인 방식의 전시나 공연은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 탱크는 고정적인 요소를 최소화해 기획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개방 정도, 밝기, 진입 방식에 차등을 두어 조건이 서로 다른 환경으로 다양한 공간을 갖추고 있다. 기획자는 자연스럽게 장소에 잘 어울리는 콘텐츠를 연구하게 되고, 이러한 자유로운 상상으로 새로운 공간에 새로운 콘텐츠가 더해지니 문화비축기지를 경험하는 시민에게 도달하는 특별함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공간의 구조가 인과관계가 분명하고 엄정한 질서를 갖추는 건축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매력을 지닌다. 필요에 의한 증축이 기존 건축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중심이 이동하거나 영역이 확장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진행형 건축이다. 이는 비유전적 요소의 문화적 전파를 의미하는 밈meme에 익숙한 젊은 세대가 건축을 경험하는 방식에 잘 어울린다. 남은 과제는 이 장소가 사회와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원활한 대중교통으로 접근성을 개선하고, 주차 공간을 확대하며, 의미 있는 행사를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면 시민의 일상에 놓인 문화 공간이라는 인식이 더욱 커질 테다.
우의정 건축사사무소 메타 대표이사 겸 한양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다. 2014년부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며 국토교통부 건축사 자격심의위원회 위원, 서울시 공공건축심의 위원, 서울시 건축문화사업 진흥위원 등을 겸하고 있다. 2014년 마로니에 공원으로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2018년 대한민국 공공주택 설계 공모 대전에서 국토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이외에 한강 노들섬예술센터, 통영 윤이상음악당, 국립중앙박물관 설립 관련 컨설팅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