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의 시선으로 읽는 환경문제

비축생활 VOL.16 기지가 사는 세상

by 문화비축기지

자연이 사회에게 전하는 함의

생태의 시선으로 읽는 환경문제

아이가 아토피를 심하게 앓아 가족 모두 힘든 시간을 겪었다.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과 항생제가 함유된 연고를 처방하는데, 아토피로 고생해본 사람은 익히 알고 있다. 병원의 처방은 증상이 심할 때 임시방편이 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집 안 습도와 먼지 조절은 물론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아우르며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는, 매우 고되고 불편한 절차 없이 아토피 문제를 해결하기란 어렵다.


글 강호정




지난 수백 년 사이, 인류는 어느 시대에도 이루지 못한 물질적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하지만 그 뒷면에는 고통스러운 문제가 숨어 있다. 화석연료의 과한 사용과 온난화 등으로 불거진 기후변화는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겪는 현실이 됐고, 생물 다양성의 파괴는 어느 지질시대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구 전체를 혼란의 도가니로 만든 코비드 문제의 근본은 박쥐의 서식지와 인간이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인데, 이는 기후변화로 야생 동물의 분포가 변화한 까닭이다.

이처럼 이제 자연 파괴는 인간의 번영을 위해 감내해야 할 부수적인 요인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위협하는 위기로 다가온다. 피부염에 스테로이드를 처방하듯, 일부 전문가는 인간의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한다. 기후변화의 해결 방안으로 원자력을 이용해 온난화 기체 발생량을 감소시킨다거나, 생물 다양성 파괴의 해결책으로 멸종 위기종 유전자를 모아 보관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이 그러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오늘날 ‘생태학’, 특히 ‘생태계’라는 과학적 개념이 우리 사회에 전달하는 함의는 무엇일까. 생태계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물질 순환’이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성분은 영구적으로 한자리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육상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매년 120Pg*의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흡수해 유기물로 바꾸는데, 절반은 식물 자체의 호흡으로, 나머지 절반은 미생물 분해를 통해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으로 되돌린다. 이런 이유로 엄청난 양의 탄소가 지구상에서 순환해왔으며, 인간이 간섭하기 전까지는 균형이 유지돼왔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땅속의 석유와 석탄을 캐냈고, 매년 약 11Pg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배출하자 균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최근 논의 중인 ‘탄소 중립 사회’는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최소화하고 불가피하게 발생한 탄소량은 따로 보관해 순환의 균형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앞서 말한 원자력발전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일 수는 있지만, 발전의 산물인 폐기물을 순환시킬 안전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자연의 탄소 순환을 이용하는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탄소를 더 많이 보유할 수 있는 생태계를 보전·복원하는 방법이다. 탄소뿐 아니다. 해마다 화두로 떠오르는 부영양화(하천과 호수에 유기물과 영양소가 들어와 물속 영양분이 많아지는 것)는 농경지와 하수에서 유출된 ‘인’과 ‘질소’가 정상적으로 순환하지 못하고 과량 공급돼 일어나는 일이다. 농경지에서는 인과 질소 비료를 비싼 값을 치르고 첨가하지만, 자연 순환에서 누락된 잉여분은 빗물을 통해 하천과 호수로 흘러들어 환경문제를 일으킨다. 과량의 질소가 작은 시내로 흐르고, 큰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에 모여 심각한 부영양화를 일으키면 수십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면적이 일순간에 죽음의 바다로 변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오염 물질을 정화하는 수 처리 시설을 더 많이 만들면 금방 해결될 문제라고 ‘잘못’된 지적을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곳이 수 처리 시설이 없는 빈국이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한국같이 환경 공학 기술이 매우 발전한 국가라는 점이다. 자연에서 순환하는 질소의 흐름을 정상화하지 않는 한 뾰족한 해결 방법이 없는, 난제 중의 난제다.


생태계 연구가 알려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다양성의 가치다. 인간 문명의 발달 과정은 생태계의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방향과 일치한다. 농업은 인류가 원하는 단일 품종의 식물, 특히 몇 가지 유전적 다양성을 지닌 종자를 키우는 과정의 반복이다. 도시의 발전은 대규모 벌목과 콘크리트라는 단일 물질을 뒤덮어 버리는 기술과 맥을 같이한다. 황폐한 산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는 활동조차 빨리, 크게 자라는 나무 몇 종을 집중해 심는 경우가 많다.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방식이 보편화 된 이유는 단일 혹은 소수 종으로 구성된 재배 시스템의 효율이 높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단기적인 효과다. 육상 생태계를 실험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생의 구성이 단순한 것보다 다양할 때 식물 전체의 양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성이 많은 곳에서 식물은 잘 자라고, 유해 환경의 영향을 덜 받으며, 피해를 입더라도 높은 회복력으로 금세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농업을 유지하려면 여러 품종과 종자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전해야 한다. 도시 역시 녹지와 물이 투과할 수 있는 투수성을 최대한으로 보유하는 것이 온도 상승이나 가뭄에 견딜 수 있는 방법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숲이 자생적으로 회복해 식물의 다양성이 증대될 수 있도록 산림을 가꿔야 한다.


우리가 구성하고 있는 사회와 경제 체제가 과연 건강한 순환을 유지하고 있는지, 시스템이 장기적인 효율성과 외부 충격에 견딜 수 있는 다양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다시 살펴야 할 시점이다. 현재 향유하는 생활을 후대에도 보장하려면 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심한 아토피 피부염에는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을 처방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지만 생태학이 보여준 교훈에 따라 지금의 경제·사회 체제를 바꾸지 못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은 있을 수 없다. 의식주를 바꾸지 않으면 아토피 피부염에 대한 지속적 관리가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Pg은 Peta gram(페타 그램)의 약자로 1 x 1015g을 의미한다.




강호정 생태계를 연구하는 생태학자로 내륙습지를 비롯해 연안습지, 산림, 영구동토층, 사막, 농경지 등 다양한 생태계의 토양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기후변화의 관계를 연결 짓는 연구를 수행하며 1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중과 과학의 소통을 돕는 데 관심이 많아 주요 일간지에 과학 칼럼을 장기간 연재했다.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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